나무할베와 야초총각의 만남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와 <야생초 편지>를 읽고..

검토 완료

민은실(hsta22)등록 2003.04.01 10:12

황대권 작가의 <야생초 편지> ⓒ 민은실

전우익 작가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민은실

촉촉한 비가 내리는 소담풀 사이로 달팽이가 고개를 내미는 상상을 해본다. 암흑세계와 같은 껍질 속에서 꼭꼭 숨어 있다가 흙에 묻힌 풀 냄새와 세잎 클로바 위에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릴 때쯤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달팽이를 말이다.

한 때 "감옥"이라는 암흑 속에서 칠흙 같은 시간들을 보냈고, 지금은 나무와 야생초의 소리에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이며 세상의 진리를 알아 가는 달팽이 같은 두 사람이 있다. 바로 고집쟁이 농사꾼 전우익 할아버지(애칭:나무할베)와 들풀일지의 주인공인 황대권 아저씨(애칭:야초총각)이다. 자연에 더부살이로 살아가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 2% 부족한 듯 #

민기자: 책을 통해서 두 분을 만났어요. 솔직히 페이지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두려웠어요. 늘 가지려고만 하고 자연 속에 묻혀 살지만 자연을 '늘 그 자리에 있는 것' 이라고 치부하며 살았던 저에게 '그렇게 살아서 뭐 할려고?' 라는 메시지를 던져주었거든요. 점이 되어버리고 싶었답니다.

야초총각: 현대인들이 너무 풍요롭기 때문에 소박함과 검소함의 미학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따뜻한 가슴이 점점 식어 가는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정말로 더 큰 문제는 갖은 것들에 대한 감사함보다는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들만 싸안고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겠지요.

나무할베: 얼마 전에 내한한 팃낙한 스님이 어린이들을 비롯한 수 백명의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걸으며, '보행 명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더. 왜 그걸 했겠는겨?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겨? 한 걸음만 천천히 걷다보면 길가에 핀 꽃들도 보게되고, 나무 위에 앉은 새들과도 눈을 마주칠 수 있게 될겁니더.

민기자: 두 분은 '자연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야초총각: 자연인이라는 것은 자연을 지배하거나 혹은 속박 당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동지로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 야생초와 친구처럼 대화하고 또 시들시들하면 괜히 눈물이 날 정도로 마음이 아파오고 하니, 그런 의미에서 자연인인라고 할 수 있겠죠.

나무할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지만, 자연보다 못한 것 또한 인간이 아닙니껴? 벌거벗은 겨울나무와 조금 추워졌다고 한층 움츠러드는 겨울 인간의 모습만 보더라도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도 미안해 집니더.

민기자: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 속에 떠올랐던 단어가 "무소유"였습니다. 특히 전우익 할아버지께서 '쓰레기'에 대해 말씀하실 땐 조금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검소한 생활이 때론 불편하지 않으세요?

나무할베: 불편함과 편함의 기준이 뭡니꺼? 요일마다 무지개색깔로 옷을 갈아입으면 편한겁니꺼?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방안에서 TV를 보면 편한겁니꺼? 소유한 사람들은 버릴것이 없고 하나만 없어져도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것처럼 호들갑이지만 버릴 줄 아는 사람들은 진정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들을 압니더. 몸 가릴 옷가지와 배고프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있으면 나머지는 군더더기 아니겠는겨? 텔레비전 보니까 2% 부족한 음료수도 나왔던데, 인생에 있어서 소유하는 것들에 대해 2% 부족한 마음만 갖어도 쓰레기는 줄어들 겁니더.

야초총각: 나무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저 역시 소유하고자 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감옥이라는 자유가 구속된 공간에서는 무소유라기보다는 '박탈'이라고 표현해야 적절할 거예요. 죄인에게 호의적일 수 없는 곳이기에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죠. 나중엔 아쉬워하는 마음마저 퇴색되어 버린답니다. 하지만 제가 유일하게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야생초들이었습니다.

저는 비옥한 땅속을 뚫고 나와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그 풀들을 닮고 싶었고 구석구석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좋았어요. 그리고 만성기관지염을 고치는 최고의 약이었으며 철마다 색다르게 맛 볼 수 있는 물김치도 매력적이었지요.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씨앗을 구했고, 야생초들을 길렀으며 감방 안에도 갖다놓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야생초에 집착을 했던 것 같고, 무소유보다는 소유에 더 기울어져 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깨달음의 소리 #

민기자: 두 분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고 평범하지 않은 생각으로 평범하지 않게 살아가시는 분들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무할베: 나에게는 평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하지 않지 않게 보이나 봅니더. 어떤 사람은 진정한 농사꾼이라고 칭송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시대착오주의자가 아니냐고 비아냥 거리기도 합니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뭐라고 뭐라구 궁시렁거리든 나는 내 삶이 평범하고 좋다는 것입니더.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청정하게 살아가는 내 자신이 전쟁이다, 파병이다, 우루과이 라운드다, WTO 교육개방이다..등으로 시끌벅적한 사회 굴레속에서 혼자만 평온하고 사는 것 같아 미안해지기도 합니더.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것은 죽을 때에 비로소 된다고, 죽음을 보면서 그 사람의 일생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내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나무와 더불어 농작물들과 더불어 지나치게 조용하게 살았지만 그와 내가 하나로 일치해서 살았다는 점에서 후회는 없을 것 같습니더.

야초총각: 유학생 중 학원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젊은 시절의 아까운 청춘 13년 가까이를 감옥이라는 답답하다 못해 미칠 것 같은 공간에서 지냈습니다. 그건 분명 평범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감옥행이었습니다.

눈뜬 죽음과도 같은 시간들 속에서 출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 노릇입니다. 지금은 보고싶은 식구들과 함께 따뜻한 방에서 텔레비전도 보고 친구들과 만나 건아하게 술 한잔도 기울이며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평범하지 않은 일에 뛰어들 생각이예요. 감옥생활에서 터득한 잡초 철학을 바탕으로 한 생태공동체의 실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민기자: 두 분 모두 대단하시네요. 겸손함의 미덕을 갖춘 나무할베와 흔하지 않은 일에 뛰어들어 열정을 쏟고 계신 야초총각 모두 삶 자체가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무를 보며 풀들을 보며 세상의 진리를 터득할 수 있나요?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내내 궁금했습니다. 나름대로의 자기 명상법 내지는 자연 훈육법이 있나요?

야초총각: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사는 것이지요. 어떤 일이 이뤄질 때 인간의 의지가 기여하는 부분은 작고 미약하다고 생각해요. 산다는 것은 결국 '흐름'을 읽는 것이고, 그것은 나를 버릴 때 가능합니다. 나를 버리고 자연에 의지하게 되면 그들의 순리를 알게되고 그 순리 속에서 숙연해지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의 인생 역시 자연의 순리대로 살다보면 문제가 없거늘 자연을 잊고 정복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 속에 담긴 오묘한 삶의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 거예요. 정신과 몸이 만신창이가 된 감옥에서 유일하게 깨달은 것은 그것입니다.

나무할베: 총각 말이 맞습니더. 인생(人生)과 목생(木生)이 얼마나 닮았습니꺼? 그건 나무와 함께 숨쉬며 살아본 농부들만이 알 겁니더. 딱딱한 겨울 땅을 뚫고 나오는 새 싹과 봄이 되어도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하는 가엾은 나무와 가을마다 거추장스러운 나뭇가지를 털어버리는 나무들. 모두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만나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껴? 그저 자연의 이치를 과학이라는 조그만 책 속에 적힌 몇 자의 글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더. 요즘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불쌍한지 체험 농장학습이라는 것들도 생겨났다고 하는데, 아주 좋은 일입니더. 흙과 풀과 나무, 자연은 지식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손과 코와 눈과 마음으로 만날 때만이 진정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때야 비로소 그 속에 담긴 삶의 진리를 떠올릴 수 있는거 아닙니꺼?


# 사랑면허증 #

민기자: 나무할베와 야초총각의 말씀을 들으니 자연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어요. 인간을 너무 작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가? 라는 거예요.

야초총각: 처음에도 말씀 드렸듯이 저는 인간이 자연의 예속물이 아니라 동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인간이 좀더 지능적이고 활동적이기 때문에 야생초를 보살펴주는 것 뿐이지요. 우리가 나무와 풀과 야생초들을 아끼고 사랑하듯이 그들도 우리에게 열매와 약초와 아름다움을 제공해주지 않습니까? 인간과 자연은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쌍방적인 사랑을 해야합니다. 아마 세상에 "야생초 사랑 면허증"이 있다면 꼭 따고 말았을 겁니다.

나무할베: 내가 인간 자체가 쓰레기라느니, 나무보다 못하다느니 라는 얘기를 거침없이 하니 인간이 하찮은 존재라는 잘못된 오해를 낳은 것 같습니더. 나는 나무를 보며 내가 지니지 못한 강인함을 부러워하는 것이지 인간은 다 없어져야 할 쓰레기라고 한 건 아닙니더. 작은 씨앗을 통해 민족해방, 인간 해방을 말하고 싶었고, 도랑물을 통해 인간의 멈춰있는 생각들을 꼬집어보고 싶었던 것 뿐 인간을 비하한 건 아닙니더.

민기자: 책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두 분과의 대화를 통해 더욱 부끄러워짐을 느꼈습니다. 화려한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맛있는 음식만 골라 먹으며, 멋진 기자가 되자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저는 책을 읽으면서 자존심이 상해서 폈다 덮었다를 반복하며 변명할 명분이 궁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기에 내가 있고 자연이 있기에 내가 여기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나 혼자 잘 나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교만함이 나무 할베와 야초 총각의 소박한 자연주의 앞에서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자연 앞에서 숙연해질 수 있다는 것은 나를 낮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오만가지 욕심들로 가득 찬 인간들의 공해로 인해 머지 않아 지구 전체가 병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그 병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자연들의 소리와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워 진리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