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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진 첫째날 일지(3월 22일)]
무려 23일간 진행해온 천막농성을 마치고 천막을 철거했습니다.
3시 풍물굿패 우리마당의 길놀이로 '고난의행진'출정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마당의 풍물공연,이지상.서기상의 노래공연등으로 양심수 석방의 마음을 함께 다졌습니다.
오후 5시,드디어 서울구치소를 떠나 고난의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40여명의 행진단은 3시간30분가량 첫번째 행선지인 분당을 향해 발걸음을 내딧었습니다.
자식의 석방을 위해 천리길을 마다않고 나선 하영옥씨와 임태열씨의 어머님, 자궁암판정을 받고도 기어이 시작을 함께한 하영옥씨의 부인 김소중씨와 가족들 , 외대왕산 학생, 전국기행연합 학생,구로청년회,금천청년회 ,경기민청 청년등 40여명이 첫날의 행진에 함께했습니다.
3시간여 행진을 벌여 분당시내로 들어서자 민주노동당 분당지구당 당원들이 현수막을 들고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풍성한 저녁식사까지 준비해주었습니다.
첫날이라 아직 적응이 덜되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양심수가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길이 힘차게 열리고 있습니다.
첫날 행진거리는 13.5KM 였습니다.
[고난의 행진 둘째날 일지(3월23일)]
따뜻한 분당푸른학교에서의 첫날밤을 마치고 일어나 최진수 단장님의 지도로 스트레칭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분당에서 떠나 성남시가지를 거쳐 문정동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천호대교를 건너 워커힐을 지나 구리시에 도착했습니다. 둘째날 행진거리는 32km였습니다.
구리남양주시민모임,구리YMCA,민주노동당구리시지구당,개혁당구리시지구당등에서 환영인사와 저녁식사를 제공했습니다.
식사후 구리지역 제단체 회원20여명과 순례단이 함께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둘째날 행진에는 기행연합학생 10여명 , 양심수가족10여명 , 김미라 성남시의원과 청년단체회원등 약25명이 참여했습니다.
내일일정은 아침 8시 구리에서 출발하여 의정부교도소앞에서 12시에 집회및 특별면회를 마치고 춘천쪽으로 다시 행진하는 일정입니다.
[고난의 행진 3일째 일지(3월24일)]
서울구치소에서 분당, 잠실, 구리 의정부교도소까지 걸어왔습니다.
40여일동안 전국교도소를 순례하는 순례단원들에 비하면 짧은 일주일이지만 함께 순례를 시작하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상의 자유를 지키며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양심수 그리고 고통속에 하루 하루를 보내는 그의 가족 그리고 거리에서 치열한 삶을 살고있는 정치수배자를 생각하며 교도소순례를 시작하여 이제 2박3일 약65키로의 여정을 이곳 의정부 교도소 앞에서 하룻밤을 지세게 되었습니다.
오늘 구치소 앞의 집회에서 최진수 단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투쟁의 동력은 슬픔에서 나온다. 슬픔도 힘으로 만드는 우리를 누가 당해 낼 수 있겠는가?"
오늘 아침 김소중(하영옥씨 처)씨가 3일동안의 일정을 함께하고 병원으로 향하였습니다. 농성을 시작한 후 아버님의 뇌졸중 그리고 김소중씨 암선고 연이어 찿아온 슬픔이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며 하고 싶었던 교도소 순례를 뒤로하고 1차 암선고 이후 정밀조사를 위해 병원으로 향하였습니다.
"오진이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하였습니다.
임태열씨 어머님, 하영옥씨 어머님과 함께 도보를 시작하였습니다. 삼일째 연이은 도보행진으로 인해 발에 물집이 생기기도 하고 관절염으로 무릅수술한지 3년된 하영옥선배님 어머님은 그래도 아들을 위해 하는건데 하시며 미안해하는 어머님모습을 보며 이 투쟁은 꼭 승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세상어디에도 사상을 단죄하는 악법은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양심수가 되지 않았다면 감방생활 뒷바라지로 병을 얻는 아내가 없을 것이며 감옥에 있는 아빠를 그리워는 아이가 구치소를 연구소로으로 생각하게 하는 슬픈 현실도 없을 것입니다.
선별적 사면이 아닌 양심수 전원석방이 진정한 개혁이라했던 권오헌 회장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오늘 의정부 앞의 집회는 김소중씨의 소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지만 오늘 정부의 준법서약서를 폐지의 약속을 보며 우리의 투쟁은 승리할 것이며 그 날이 멀지 않았음을 생각했습니다.
지금 현재 6명의 순례단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숙소와 음식대접으로 함께 하여주셨고 부분적인 도보결합도 하며 따듯한 동지애를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의정부교도소앞 농성에 함께하여 주신분들
박용진어머님, 하영옥씨어머님, 임태열씨어머님,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 회장님, 민주노동당 의정부 지구당 목영대위원장님, 민주노동당 강북을 지구당 김윤한 부위원장, 의정부 청년회 홍석규 회장 및 회원, 전교조 경기지부 부지부장 심우근. 진보영상 전야(김소중씨 취재함께함)
[고난의 행진 4일째 일지(3월25일)]
어제 집회가 끝나고 의정부 교도소 앞에 천막을 쳤습니다.
순례에 나서며 서울 구치소앞 투명했던 비닐 천막대신 새로 장만한 천막을 치고 바닥에 비닐을 깔고 가스난로를 설치하니 아담한 천막이 되었습니다.
보라색 '양심수 전원석방'이라는 보라 빛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 플랭을 간판으로 달았습니다.
의정부 청년회 회원들이 고생한다며 직접만든 꽃게탕을 가지고 와서 여독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그 꽃게탕을 보니 동지들의 사랑으로 피곤이 말끔히 가신는것 같았습니다.
새로 함께한 이정태(민족무예 경당) 선배님이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썰렁한 농담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습니다.
저녁 10시에 김소중씨가 사람들이 보고파서 달려왔다며 한손에는 횟감 한손에는 매운탕거리를 가지고 오셔서 내일 암센타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자신이 농성당 주인이었는데 이제 손님이 된것 같다며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단장님에게 문자를 보내며 의정부 교도소 앞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김소중씨의 모습을 보며 남아있는 우리가 열심히 투쟁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어제 순례단의 춘천교도소로 가는 발걸음을 잡는 일이 있었습니다.
의정부 교도소 측에서 집단적으로 실력행사를 하며 접견을 요구하는 것은 해 줄수 없으며 천막을 철거하지 않는다면 접견은 불가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오늘 박용진(민주노동당강북을)씨를 접견하였는데 또 하나 분노스러운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교정국에서 순례단이 오면 특별접견을 하지말라는 지침이 있었다는것입니다.
고난의 행진에는 고된 행진보다 우리 분노스럽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현실이었습니다.
교도소장에게 부여된 재량권마저 침해하는 교정국과 청와대, 법무부에 항의 글을 부탁합니다.
저녁에는 일산 암센터에 입원한 김소중씨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수술여부는 이번주에 더 검사를 한 이후에 정해진다고 합니다. 너무나 밝은 모습으로 오히려 면회간 이들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오늘 함께 하여주신분들>
여중생범대위 자원봉사자 6인(인터넷 실천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민주노동당하남지구당,하남청년회에서 5인이 방문해 반찬까지 주셨습니다.
[고난의 행진 5일째 일지 (3월 26일)]
벌써 의정부 교도소 천막 삼일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교도소 앞 스탠리부대 미군들이 아침 도보 구령소리에 아침을 시작하였습니다.
천막 앞 "Stop the war"이라는 피켓을 보며 미군들의 행열이 지나갑니다.
분단, 국가보안법,양심수 그리고 미군.
한국사회의 굴곡을 볼수있는 곳 바로 의정부 교도소 앞이었습니다.
어제 밝은 얼굴로 맞아준 김소중씨가 생각이 났습니다. 의정부 교도소 특별접견 불가소식에 최진수 단장님과 걱정어린 얼굴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랜만에 박정훈선생님내외, 그리고 김소중씨 언니,남동생.. 그리고 순례단 일행. 일산 암센터는 김소중씨 입원 첫밤을 걱정하는 동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이며 환한 마음을 전달해 주는 김소중씨의 모습이 아름다워보였습니다.
그리고 하영옥씨가 김소중씨의 암진단 소식에 걱정을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 김소중씨는 오히려 남편 걱정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배여있었습니다.
오늘은 슬픔과 교정국의 부당한 처사에 올바른 교도행정을 위해 투쟁을 다짐하는 순례단에게 기쁜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시사저널, iTV,한겨레21에서 순례단의 고난의 행진에대한 취재요청의 전화가 쇄도하였습니다.
iTV리얼다큐에서는 토요일까지 순례단 밀착취재 일정을 오늘 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겨레 21의 기자분은 5만원의 참가비를 내고 삼일동안 체험수기를 기록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리 순례단은 양심수 전원석방! 청치수배해제를 위해 교도소와의 싸움을 뒤로하고 순례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걷고싶다.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졌습니다.
내일 춘천교도소를 출발하기위해 삼일동안의 먹거리를 사고 짐을 정리하고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되어있는 양심수중 박용진씨를 접견하였습니다.
"안에있는 사람들은 편한데 순례하시는 분이 걱정입니다. 그리고 김소중씨의 병이 하영옥씨에게 힘겹지 않을까 걱정됩니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접견이 되지않은 두분에게는 접견서진을 보내고 내일 춘천으로 향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다시 힘이 솓아납니다.
양심수 전원석방! 정치수배해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집니다.
하영옥씨가 석방되고 김소중씨의 병이 완쾌되길...
오늘 함께한 사람들
허은미(동화작가), 엄경희- 후원금을 주셨습니다.
민주노총 북부지구협 송정현
의정부 청년회 안은성, 노은성, 홍석규-밑반찬, 쌀
의정부 YMCA 배승룡, 시사저널, iTV,한겨레21
[고난의 행진 6일째 일지(3월 27일)]
2박3일간의 의정부교도소앞 일정을 마치고 아침6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춘천으로의 행진을 준비하였습니다.
간밤에 내린비로 침낭과 이불이 흥건하게 젖었습니다. 우리의 활동을 영상에 담느라 고군분투하는 막둥이가 '간밤에 쉬하는 꿈을 꿨어요'라고 해 순례단에 큰웃음을 주었습니다.
젖은 천막을 일일이 손걸레로 닦는 단원들의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20여곳의 전국 교도소 순례를 마치기 전에 양심수 석방이 되어야 하는데 다시한번 소망해 보았습니다.
어제저녁부터 한겨레 21 김수병기자님이 '기자가 바라본 세상'이라는 코너를 위해 3박4일간의 일정에 함께하였습니다.
8시 의정부교도소를 뒤로하고 춘천에서 우리를 맞이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길을 떠났습니다.
지금 기억나는것은 걷고 또걷고 잠시 쉬다 또걷는 것이었습니다. 이틀간의 휴식으로 기운이 넘치던 우리는 점심식사전에 22km를 단숨에 걸어왔습니다.점심은 휴게소 근처에서 짜파게티를 끓여먹었는데 그맛은 그무엇과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무리한 탓인지 오후에는 눈에띄게 속도가 느려졌지만 오늘 무려 38km나 걸으며 기록을 경신했다.
청평.현리입구의 율전교회앞에 천막을 쳤다. 목사님과 마을 이장님의 배려로 별무리없이 천막을 치고 수도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밤엔 최진수단장님의 경당 동료였던 봉근씨가 삼겹살을 사와 체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춘신씨는 처음 물집이 잡힌곳 외에도 또 커다랗게 물집이 잡혔고 최진수 단장님,이정태씨,나 모두 발에 물집이 생겨 고생이 많았지만 그래도 병원에 있는 김소중씨나 감옥에 있는 양심수를 생각하면 이정도 고통이야 비길수 있겠습니까? 요즘 최진수 단장님이 밤잠을 못이루시는것 같아 이정태선배님이 걱정이 많은 모습을 보며 경당에서 인연을 맺은 두사람은 깊은 애정이 담겨있었습니다.
내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갈 수 있을지...
이틀을 더가야 춘천교도소이지만 가는길 험난해도 감옥에 있는 양심수와 그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우리는 내일도 고난의 행진을 계속할 것입니다.
[고난의 행진 7일째 일지(3월 28일)]
어제 추운 날씨에 간밤을 세웠다.
날씨가 추운지 아침에는 유난히 텐트에 물기가 가득고여 간혹은 얼굴에 떨어져 선잠을 자기도 했다. 단장님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일어나 여기저기를 살피는 모습, 그리고 사람들에게 김치찌개를 해주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중에 뒷풀이 자리에서 들으니 교도소에서 5시에 잠깨는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어 그렇다고 하셨다. 오늘 아침 무리한 도보행진, 선잠으로 전날밤 목사님이 길러준 찬물에 세면하는 것이 힘겹게 느껴졌다.
"고난의 행군" 참 생각하면 할수록 이 행진에 어울리는 말이다. 고생을 자처해서 우리가 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금 생각해본다. 단장님께서 김소정씨가 4월 1일에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전이가 되지 않았다면 수술해서 경과가 좋아 완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겨레 김수병기자님과 iTV기자분도 순례단원과 함께 율곡리에서 남이섬까지 37km의 도보순례를 하였다.
춘신씨는 발바닥에 물집에 잡히고 갈라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동지를 위해 우리가 고난의 행진을 하면 할수록 많은 동지들이 함께해주고 힘을 모아 감옥의 양심수를 가족의 품으로 보낼수 있는 날이 멀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보험노조 가평지부장이신 박영순님이 반가이 우리를 민박집으로 묵게하고 저녁까지 대접하여주셨다. 가평 남이섬에서 오랜만에 몸을 풀고 따듯한 동지들의 배려로 재충전 할 수 있었다. 청평에서 이곳 남이섬까지 MT철이라 많은 학생들이 북적거렸다. 우리까지 모꼬지에 온 기분이 들었다.
저녁에 물품지원을 담당해준 한용진 선배님이 오셨는데 가평에 있던 누님 이야기를 하셨다.
"자궁경부암으로 세상을 떠난 누님이 돌아가시던 날 누님의 운명소식 알지도 못했는데 눈물이 이유없이 막 흘렀습니다. 나중에 아버님이 네 누이 떠났다 그러셨어요." 선배님의 이야기에 마음이 쓰려왔습니다.
한용진선배님은 하영옥씨와 같은 사건으로 구속되었는데 공안기관의 수배와 감시로 누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것이 마음에 아픔으로 남아 있는것 같았습니다.
밤에는 경기대,한경대 학생3인 ,기행연합 학생 3인이 숙소로 찾아와 내일 함께 걷기로 했다.
내일도 우리는 다시 걸을 것입니다.
못 다한 동지를 대신해서, 잃어버린 동지를 생각하며...
내일은 14명의 사람들이 함께 순례를 할 예정이며 춘천교도소에서 민중대회에 함께한 동지들을 만날것입니다.
오늘 함께해주신분
민주노총 공공연맹 가평지부장 박영순선생님-숙식을 제공해주셨습니다. 전교조 강호철님, 민주노동당 구리지구당 청년위원장. 사무국장님,
한용진, 최진미 양심수가족
[고난의 행진 8일째 일지 (3월 29일)]
다른 날의 기상 시간 보다 1시간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이틀의 강행군으로 모두들 지쳐 있기도 하였지만 어제 저녁 식사와 잠자리까지 마련해 준 박영순님께서 아침 식사를 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셔서 그만큼의 시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민주 노총 가평군 협의회 회장이신 박영순님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순례 길에 오른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다.
감사한 마음을 뒤로 하고 8시에 출발을 하여 오전 내내 열심히 걸었건만 오후 1시가 다 되도록 우리가 걸어온 길은 16km에 불과했다. 전날까지는 오전에 주파한 거리가 20km였는데 이전의 강행군으로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다리의 상태도 다들 말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대열이 늘었났는데 여성들이 많다 보니 속도는 좀처럼 붙지를 않았다.
등선폭포에서 우리는 점심으로 춘천의 명물인 막국수를 먹었다. 오늘의 이탈자( 우리는 도보 행진에서 빠지는 사람을 이렇게 부른다. )인 한겨레21의 김수병 기자가 점심을 꼭 사겠다고 하여 푸짐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길을 떠나려는데 등산객 한 분이 좋은 일을 한다며 더덕구이와 소주를 거의 강제로 권하여 하는 수 없이(?) 마시고 계속되는 행진 길에 올랐다.
2시 30분 경에 춘천 초입의 농민 주유소 앞에 도착한 우리 행진단 일행은 마중 나온 춘천 시민 10분의 환영을 받으며 춘천에 첫 발을 디뎠다. 그분들 모두 최진수 단장의 옛 동지들이라 하였다. 농민 주유소는 춘천시 농민회에서 재정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주유소인데 흑자 경영을 하여 농민회에 막대한 공을 쌓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물을 마시고 우리는 민중대회가 열리고 있는 춘천 시청앞 광장으로 향하였다.
우리 순례단이 민중대회 장소에 도착한 시간은 예정보다 조금 늦은 3시 50분경 이었다.
500여명이 넘는 춘천시민들의 말 그대로 뜨겁고 열렬한 환호와 박수 속에 행사장으로 들어 선 우리는 사회자의 소개로 도보단 전원이 단상으로 올라 가 인사를 하였다. 대표로 최진수 단장이 양심수 석방의 필요성과 우리가 도보 순례에 나선 의의에 대하여 연설을 하였다. 어느 새 우리 모두가 주문처럼 외우는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며 양심수는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 갈 것이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단상을 내려 왔다.
춘천 연합 사무실에 여정을 푼 우리는 미리 준비된 저녁 식사를 하였는데 춘천의 이름에 걸맞게 닭물이 함께 나왔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오늘의 이탈자들을 보내는 정리의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미라 시의원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돌아 가서 더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고 사이버 실천등 중앙에서 할 수 있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였다. 세 명의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 가 적극적으로 양심수 문제를 알리는 일에 나서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마지막 이탈자인 김수병 기자는 본인은 기자로서 온 것이 아니고 순례단의 자격으로 참가한 것이며 최진수 단장을 비롯한 순례단 전체에 대한 깊은 인상을 가슴에 담고 떠난다며 반드시 시간을 만들어 고난의 행진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 번 합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항시 짧은 만남 뒤의 긴이별 끝에 어찌 눈물이 빠지겠는가?
민주 노총 소속의 조합원들과 강원대 학생들이 지지 방문을 위하여 우리의 숙소를 찾았고 다음 날 걷기에 함께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돌아 갔다.
밤 10시경 기쁜 소식을 가지고 김소중동지가 이곳 춘천까지 왔다. 염려했던 병이 수술로 완치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왔다는 말에 다들 한시름 걱정을 던 표정이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집에 간다며 거짓말을 하고 병원에서 하고 있는 환자 팔찌를 한 체로 `급해서 양말도 못 신고 왔다'며 온 것이다. 뭐가 그리 좋은 지 연실 푼수처럼 해실거린다.
[고난의 행진 9일째 일지 (3월 30일)]
6시20분 - 서울로 올라가는 일행을 데리고 가기위해 김소중씨는 몇몇 사람들을 깨웠다.
그것을 곧 모든 순례단에 기상을 말함이었다.
6시 30분 - 김소중씨와 함께 전야에서 결합하여 8일간 같이 했던 류춘신 동지가 몸을 추스르기위해 함께 떠났다. 김소중씨는 4월 1일에 있는 수술을 위해 금식을 하고 그리운 동지들 을 찾아서 들른 길이었다. 김소중씨의 가는 모습을 보며 빠른 쾌유를 바라면서 다시 우리와 함께 하리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랜다.
김소중씨와의 배웅을 뒤로하고 민주노총 강원본부 사무처장 남만진님이 사주신 아침을 먹고 다시 한번 지역 동지들의 풋풋한 정을 느끼면서 힘차게 춘천교도소를 향해 출발을 했다.
9시 40분 - 춘천교도소에 도착 하여 면회를 신청하였다. 10분 뒤 육중한 교도소 철문이 열리면서 지난 2002년 6월 12일 집시법위반으로 구속 수감된 강성철 동지를 30여분간 접견하였다. 접견을 끝내고 나오면서 강성철 동지가 하였던 말이 지금도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강성철 동지는 이땅엔 양심수가 하나도 없다는 신임 송광수 검찰청장의 말에 몹시 분개하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을 다잡게 하고 우리의 행진을 더욱 다그치게 하는 채찍질로 생각하기로 했다.
10시 40분 - 접견을 끝내고 춘천지역 동지들과 집회를 진행하였다. 집회를 마치고 홍천을 향해 떠나는 우리에게 춘천지역 동지들은 뜨거운 박수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춘천지역 동지들 두 분이 함께 행진에 결합하면서 행진길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13시 25분 - 약간의 착오로 인해 점심을 늦게 먹게 되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조금은 지친 발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진 후 20km남은 홍천을 향해 출발을 했다. 강원도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가파르면서 오르막이 계속되는 그런 구간을 지났다. 내리막에는 약간의 서늘함과 오르막에서는 초여름같은 더움을 느끼면서 그렇게 홍천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오르막을 오르면서 바라본 주위에 풍광은 양심수 전원석방과 수배해제를 위한 우리의 행진이 끝날 무렵이면 온 산하가 푸른 옷으로 갈아입고 있으리란 생각을 해봤다.
17시 50분 - 홍천군 농민회 분들과 숙소를 제공하시기로 하신 동면교회 목사님께서 봉고차로 마중을 나오셨다. 참으로 착하고 그러면서도 내면엔 뜨거운 열정이 불타는 사람들 같다.
19시 - 이틀동안 같이해주신 학생 두 분이 저녁 막차를 타기 위해 저녁도 먹기 전에 출발을 하였다. 그들의 젊음이 순례단의 행진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 넣었는데, 늘 이별은 아쉬움을 남긴다. 하루 낮 밤이었지만 진한 추억을 남기고 그들은 떠났다. 다시 돌아 오마는 기약을 남기고...
그들과 이별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 언제나 달콤한 밥맛을 느끼며 이 땅의 모든 양심수들이 그들의 가족과 함께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을 그려 보았다.
21시 20분 - 홍천 지역 동지들과 함께 순례단은 간담회와 간단한 술자리로 오늘 하루의 피로와 다리와 발바닥에서 전해오는 기분 나쁜 자극들을 잊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홍천 지역 동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최진수 단장님은 양심수들이 모두 석방되고 정치수배해제가 이루어지면 우리가 다시 이곳에 내려와 이런 융숭한 대접들을 갚을 그 날이 올 것이라고 그 날이 오면 반드시 그 때는 차를 타고 내려와 서울이든 어디든 모셔서 다시 대접하리라는 말을 하신다. 바늘 꽂을 땅 한 뼘 없이 어렵게 농촌을 지키는 단장님의 후배들이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여비를 건네 줄때면 참으로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다.
춘천이 단장님의 고향이어서일까 가는 곳마다 격려금이 쇄도하고 있다. 단장님께선 우리 순례단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행진이 끝나는 날이면 이 땅의 모든 생물들도 새로운 생명을 더더욱 푸르고 아름답게 피워내리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그 날은 이 땅의 모든 양심수가 석방되고 그 가족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날이 될 것을 확신하면서 우리는 내일도 걸을 것이다.
우리의 투쟁이 승리하는 그 날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씩 힘차게.....
[고난의 행진 10일째(3월 31일)]
행진 10일째입니다.
10일째 되다보니까 지나온 날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이날과 저날의 기억이 섞여서 뒤죽박죽입니다. ‘고난의 행진’이 힘들긴 힘든가 봅니다.
오늘은 그동안의 행진중에 가장 힘든날이었습니다.
행진 초반에 너무 강행군을 했습니다. 시간당 7-8Km를 걸었으니 말입니다. 기행을 전문적으로 하는 대학생 기행연합 친구들도 시간당 4Km를 가는게 정상이라고 합니다.
물집이 잡히는 수준은 이미 지났고, 물집잡힌 자리 안으로 고름까지 고이게 되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이 고통스러운 진짜 말그대로 ‘고난의 행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어도, 일단 발동이 걸리기 시작하면 아픈것도 잊어버리고 휘적휘적 걸어갑니다. 그러다가 쉬고 난 다음 다시 걸으려고 하면 그때에는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오늘 제일 고생한 사람은 단장님입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부분일정으로 결합해서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었지만, 단장님은 10일동안 계속 걸었기 때문에 특히나 힘들었습니다. 도착지에 거의 다 와서는 부축을 받으면서 오셨습니다.
오늘도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하루였습니다.
그동안 ‘삶은........ 달걀’과 같은 오묘한 농담으로 순례단원의 더위를 식혀 주셨던 정태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지 기자님이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셨습니다. 순례를 하다보면 하루가 한달처럼 길게 느껴집니다. 함께 했던 날이 며칠 안되지만 몇 달을 같이 지냈던 사람처럼 정이 들어 버렸습니다. 보내는 사람도 그렇고 떠나는 사람도 그렇고 몹시 아쉬웠습니다.
대신 새로운 얼굴들이 찾아왔습니다.
용인대학교 오존학번 새내기들과, 사회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입니다. 용인대학교 새내기들은 아주 씩씩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어제 순례단원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주신 동면교회 목사님과 지지방문을 와주신 한겨레신문 지국장님, 그리고 어제 저녁에 방문해주신 박종석님이 반나절 동안 순례단과 함께 행진을 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전 나절의 발걸음이 무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시루봉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있을때였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비닐봉지에 음료수를 가득 담아서 순례단원에게 주시는 겁니다. 홍천군 농민회 회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아주머니는 지나가다가 순례단원의 차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이렇게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 공간을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녁에는 횡성지역 시민사회단체와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순례단원들에게 대접한다고 횡성의 명물인 더덕주를 내주셨지만, 순례단원들이 워낙 피곤해서 성의를 받지 못했습니다.
[고난의 행진 11일째 (4월 1일)]
오늘은 김소중님이 수술을 받는 날입니다. 행진단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김소중님에게 문자부터 보냈습니다. 한 친구는 "여기는 횡성입니다. 완쾌를 빕니다."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단장님이 "그렇게 무미건조 하니까 니가 애인이 없는거야"라고 하셨습니다. 단장님이 보낸 문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준비는 철저히 되셨겠지요."라고 보냈다고 합니다.
횡성군 농민회장님과 농민회원들이 원주로 떠나는 길목까지 배웅을 해주셨습니다. 농번기로 한참 바쁠텐데도 손님을 맞이하는 농민분들의 인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는길에 횡성의 명물인 버섯도 한보따리 싸주셨습니다.
오늘의 목표는 원주교도소까지입니다. 횡성에서 20Km거리입니다. 횡성에서 원주로 가는길은 온통 군부대입니다. 가다가 널찍한 자리가 있어서 쉬었더니 하필이면 그곳이 미군기지 앞이었습니다. 순례단원이 미군기지 앞에서 쉬고 있으니까 정문을 지키고 있었던 한국경찰이 긴장을 하더군요.
원주교도소에 도착하니 하영옥님의 어머님과 임태열님의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대표단이 면회하러 들어간 사이에 원주교도소 앞에서는 약식 집회가 열렸습니다. 집회에는 연세대학교 학생들, 만도기계 조합원들, 원주청년회 회원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사회를 본 민노당 연세대학교 학생위원장님은 작년에 한총련 대의원으로 원주교도소에 수감되셨던 분이었습니다.
원주교도소에는 1년동안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범청학련 사무국장 김혜신 동지가 있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원주지역에 있는 동지들도 원주교도소에 양심수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춘천교도소에서도 그랬습니다. 면회를 마치고 나온 단장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양심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입니다.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서 사람의 양심을 구속하는 자들이 결코 윤리적이지 못한것처럼 운동의 대의와 동지애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감옥에 있는 동지에 대한 의리를 다하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원주교도소 앞을 숙소로 정하고 천막을 쳤습니다. 저녁엔 김소중님 동생 내외가 지자방문을 오셨습니다. 두분 모두 의사이기 때문에 순례단원중에 이러저러한 부상으로 고생하던 사람들을 모두 치료해주셨습니다. 단장님 사용하라고 목발까지 가져오셨습니다.
저녁이 되니까 지지방문을 와주시는 분들이 늘어났습니다. 낮에 같이 집회를 했던 단체분들이 모두 와주셨습니다. 지금 원주교도소 앞에는 원주와 그외 지역에서 지지방문을 오신 분들의 차로 주차장이 꽉 차있습니다.
지지방문 : 만도기계 조합원과 당원, 원주청년회, 원주지역 민주노동당 당원동지들, 전교조 강원지부, 공원노조 강원지부, 모둣골 동지들, 강총련 학생들.
김소중씨 동생내외(의약품과 목발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참가자 : 6명
행진거리 : 20Km
[고난의 행진 12일째 (4월 2일)]
완연한 봄입니다. 행진을 하다 보니 계절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집니다.
감옥안에서는 세월이 가는 것을 계절로 느낀답니다. 순례단원들도 계절의 변화를 통해서 세월의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길섶에 있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을 보니 오늘이 벌써 4월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 빨리 양심수 가족에게도 봄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오늘은 단촐한 숫자로 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은 진보영상 '전야'동지들이 순례단의 절반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분들은 다큐를 제작하기 위해서 동행하고 있지만, 지금은 거의 같은 식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촬영이 목적이지만, 순례단 운영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깃발 들어주는 것부터 홈페이지에 그날그날의 사진을 찍고 올려주는 일까지......
다른 사람들은 걷기만 하면 되지만, 이분들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서 순례단 주변을 뛰어 다니면서 촬영해야 합니다. 이분들은 촬영보 다 양심수석방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목표는 원주교도소에서 귀래까지 입니다. 약 25km거리입니다. 귀례까지 가는 길에 고개가 하나 있습니다. 고개 이름이 양안치입니다. 양안치 고개를 넘어 3km가는 길에 새로운 사람이 참가했습니다. 민주노동당 하남시지구당 문천관씨입니다. 오늘부터 1주일동안 우리와 함께 걷겠다고 하셨습니다. 다니던 직장은 어떻게 했냐고 물어 보니까 휴가를 내고 오셨다고 합니다.
오늘 순례단에 숙소를 마련해주신 분은 원주 지역에서 대안학교 운동을 하고 계신 한경호 목사님입니다. 저녁식사를 먹으면서 목사님은 귀래지역의 유례와 세상 돌아가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녁에는 단장님이 일산을 가셨습니다. 밤 11시경에 출발했으니까 아마 새벽이 되어야 숙소로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행진거리 : 24Km
도보행진 :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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