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정치수배자들의 건강상태 심각, 조속한 치료 필요해

"수배가 저를 이렇게 망가지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검토 완료

류종수(fromryu)등록 2003.04.08 18:14

검진을 실시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소속 의사들과 한총련 수배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류종수

수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관련 정치수배자들의 건강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진단(설문조사 및 건강검진)을 실시한 의료진과 보건노조대표, 한총련 수배자, 수배자녀를 둔 학부모 등은 7일 연세대 학생회관 푸른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히고 조속한 수배해제를 촉구했다.

이번 건강진단은 서울, 경기지역에서 지난 3월 9일과 16일에 2차례에 걸쳐 건강권실현을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과 원진녹색병원, 한총련 정치수배해제를 위한 모임이 총 107명의 한총련 수배자를 대상으로 공동으로 실시했다.

설문조사는 107명 모두를 대상으로, 건강검진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1명을 제외한 106명에게 의학적 검진과 한의학적 검진, 치의학적 검진 등 3가지가 실시됐다.

검진을 실시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참된의료실현을위한청년한의사회·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전국보건의료노조)은 '수배자 상당수가 수배상태와 관련되어 유발 또는 악화된 건강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지속적인 의료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현재 이상소견을 보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지금과 같은 스트레스와 생활 불안정 등의 위험요인이 계속될 경우 새로운 발병자가 계속하여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전체적의 검진결과를 밝혔다.

"우리는 이라크의 어린이 못지 않게 이들에게도 죄 짓는 것 아닌가"

지난 6년 동안 한 해에 400여명의 한총련 관련 정치수배자들이 양산됐고 현재에도 186명이 수배 상태다. 최소 9개월에서 길게는 7년까지 수배(송승훈, 제5기 한총련 간부·목포과학대)를 받아 온 한총련 수배자들은 주로 각 대학 학생회관 등의 작은 생활방에서 잠자리를 대신해 왔다.

검진결과를 발표하기 앞서 최인순 보건의료단체연합 집행위원장은 "우리의 동생들이 그 동안 얼마나 외롭고 병들어 갔는가를 이제서야 부끄럽게 알게됐다"면서 "이들을 지금처럼 계속 방치하는 것은 이라크 어린이 못지 않게 큰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검진 결과를 발표한 의료진은 "수배자들이 이런 환경 속에서 규칙적인 식사를 하지 못하거나 수배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허리디스크, 위장병, 비염, 탈모 등의 증상을 겪고 있었음에도 경찰의 검거 때문에 공개적인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병을 더 악화시켰다"고 밝혔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몸이 아플 때 병원을 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힘들었다, 거의 불가능했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81명으로 전체 응답자 중 90%에 달했고 이중 78명이 '경찰에 검거될까봐서', 4명은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갈 수 없었다고 답했다.

MMPI(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를 이용한 정신심리 평가에서도 한가지라도 이상수준을 보인 사람은 총 48명이 나왔고 이들 중 19명을 선정하여 정신과 진찰한 결과 7명은 '불안감 및 우울감을 수반한 정신심리적 이상상태'가 확인됐으며,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견이 제출되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병든 수배자 하루빨리 안정적 치료가 필요

내과 건강진단에 의해 최종적으로 확인된 질병으로는 위장관계 질환이 총 52건이었고 이어 근골격계 질환이 50건, 호흡기계 질환이 25건, 심혈관계 질환이 12건, 간장 질환이 8건으로 확인됐다.

한의학적 검진에서도 '근골격계 질환과 마음의 손상이라고 할 수 있는 칠정상, 만성적 소화불량 등 정상적인 일상생활 속에서는 낮은 비율로 나타나는 증상들이 수배자들에게 매우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는 결과가 나왔으며 '극도의 긴장감, 불안정한 주거, 과중한 압박감등 수배로 인한 갖가지 제약들이 그 원인으로 제시됐다.

한의학적 검진을 발표한 한창호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정책국장은 "사상과 이념을 뛰어넘어 모든 생명의 존귀함을 생각할 때 이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그 어떤 약과 치료보다 중요하다"면서 "정치적 신념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이 정말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치아에도 문제가 많았다. 개인 평균 4.26개의 충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어떤 방법으로든 이들에게 치과로의 방문을 통하여 적절한 시점에 안정적 진료가 보장되어야만 한다'는 정달현 인도주의실현치과의사회 서경지부사업국장의 소견이 발표됐다.

"자유로운 캠퍼스가 우리에겐 감옥입니다"

단대 회장이 되던 99년부터 학내 강의실과 건물 옥상을 옮겨다니며 학내에서의 생활을 지금까지 해온 윤영조(2002년 부산대 총학생회장)씨는 기자회견 중에도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는 "몸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위장을 하고 서울에서 검진을 받은 결과 심장질환이 있다는 소견이 내려졌고 뼈도 휘어졌다고 해서 한의원을 다니고 있다"면서 "웬만한 병이 아니며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한총련 수배자들은 20대 청년 시기를 초반에는 병자로, 후반에는 투병하는 요양자로 살아야할 처지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한총련은 강금실 장관이 밝힌 '자수하면 불구속 수사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서도 거부의 의사를 확실히 했다.

한총련대책위 강위원(33) 집행국장은 "강 장관의 제안은 '불구속 수사를 하지만 기소는 가능하다'는 기존의 공안 검사와 입장이 동일하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기소도 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 달라는 것이다"고 밝혔다.

한총련 정치수배해제 모임은 이번 결과를 접하면서 "이 같은 수배자들의 건강 상태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비인도적인 수배생활 강요로 인한 국가 인권문제다"면서 "4월 10일에 수배자중 질병 유형별로 5명을 선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회원로와 각계인사들, 양심수 석방과 한총련 수배 해제 촉구하고 나서

쫓기다 숨어 들어온 골방, 아무도 모르는 골방에/ 혼자 있습니다/ 이름도 숨기고 얼굴도 가린 골방에서/ 어둠에 눌려 혼자입니다/...중략 / 새벽은 깊어가고, 외로움과 그리움에 치를 떨며/ 이른 봄, 제법 쌀쌀한 밤공기의 외풍을 견뎌내며 또 다른 하루/ 자유를 위해 자유가 유폐당한 다 다른 하루를 기다립니다
송용한(7년째 한총련 정치 수배자)

사회원로, 각계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양심수 전원 석방과 한총련 정치수배 전면 해제를 촉구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시민단체, 재야 사회단체, 각 종교 단체, 노조 대표 100여명은 8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많은 사람의 인간적 고통을 내포하고 있는 양심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 어떤 개혁과제보다 우선해야 한다"면서 "이제 진정으로 감옥담 안팎으로 양심수가 한 명도 없는 인권과 희망이 꽃피는 날을 만드는데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45명의 양심수와 186명의 한총련 관련 정치수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양심수와 정치수배자들에 대한 특별사면 조치가 역사와 시대의 요구에 맞게 대승적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한 '대통령 특별사면에 즈음한 사회원로, 각계인사 성명서'에는 권영길 민노당 대표를 비롯해 총 550명이 동참했다.

기자회견 시작 전 "아빠가 너무 보고싶으니까 너무 밉다"는 양심수 아버지를 둔 어린 딸의 모습과 수배 중에 사망한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한 한총련 수배자의 모습 등이 담긴 '양심수, 정치수배자 영상보고'가 있어 양심수와 수배자를 둔 가족들의 아픔까지 보여주었다.

인사말에서 박형규 목사는 "양심수와 정치수배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 활기차고 희망찬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새 정부는 이런 저런 토를 달아서 이 문제를 비켜가려 한다는 의심을 씻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송영길 의원은 "냉전의 벽이 허물어 졌음에도 대한민국의 포용력은 아직 너무 작아 보인다"며 "이들의 뜨거운 애국심을 받아 안을 수 있도록 하루 빨리 사면이 이뤄져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새 정부 출범 후 양심수, 정치수배 문제 해결을 위해 벌인 활동에는 부산교도소와 서울구치소 앞에서 양심수 석방과 수배해제를 위한 한달 가량의 천막 농성이 있었고 도보로 이뤄지고 있는 양심수와 수배자 가족의 '전국교도소 순례'는 지난 3월 22일에 시작돼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 류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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