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투수 럼스펠드의 실패, 구원투수 파웰의 성공

-럼스펠드식의 전격전을 대신한 파웰식의 기습작전이 전승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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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진(ohngbear)등록 2003.04.10 13:04
바그다드가 결국 함락됐다.
개전 초기, 미군을 괴롭히며 꽤 오랬동안 전쟁을 끌어 갈 것으로 보였던 후세인은 지금 생사조차 불확실한 상황이 됐고, 이라크는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여기서 우리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왜 이렇게 전세가 바뀌었다는 말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먼저 개전 초기로 돌아가 보자. 개전 초기 미군은 막대한 폭격을 퍼 부으면서, 기갑부대의 기동력을 이용해 빠르게 이라크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그러나 바그다드 인근과 주요 대도시에 병력을 집중시키면서 시가전을 준비하고 있던 이라크군은 미군을 앞마당으로 깊숙이 끌어 온 뒤, 보급로를 끊고 곳곳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며 미군을 괴롭혔다.

이렇게 되자 미군은 상당한 위기에 처하게 됐다. ‘기름먹는 하마’인 전차는 연료가 없어 움직이지 못하고, 사막의 폭염 속에서 식수를 구하지 못한 미군병사들은 지쳐갔다. 게다가 화생방전에 대비해 화생방 보호의를 입고 있던 연합군에게 더위는 치명적이었다.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화생방 보호의를 입고 뙤악볕 아래서 완전군장을 한 채 행군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지옥이 어디겠는가?)

개전 초기 미군의 작전은 미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주도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충격과 공포’라고 명명된 이 작전은 기존의 미군 작전개념과는 많이 달랐다.

미군은 지금까지 공중전력을 통해 공습을 퍼부으면서 적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힌 뒤, 충분한 보급로를 확보하면서 진격했다. 진격 시기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으며, 그 전까지는 진격시점에 대해서 철저히 연막을 치며, 언론이 엉뚱한 진격시점을 예측하도록 유도해 적을 자연스럽게 기만해왔다.

즉, 우세한 전력을 활용해 적에게 충분한 타격을 가하면서, 언론 매체를 적절히 사용하는 공보작전을 통해 적을 기만한 뒤, 기습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식...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 국무장관 파월식 작전이다. 파월은 이미 지난 91년 걸프전때 이런 작전을 썼다.

그러나, 럼스펠드는 마치 2차 대전 때, 롬멜과 같은 방법을 썼다. 우세한 공중전력을 활용하긴 했지만, 기갑부대의 빠른 진격으로 적지 종심부를 향해 빠르게 진격했다. 마치 우리 군에서 구상하고 있는 입체고속기동전과 유사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런 작전은 전선이 형성되지 않은데다, 적이 전력을 철저히 위장하고 은폐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작전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개전 초기 전황이 미군측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자, 미군은 작전을 바꾸었다. 럼스펠드 식을 버리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돌아온 것이다.

미군은 일단 진격을 중지하고 보급로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주요 도시를 장악하기 위해 병력을 추가로 파견했다. 그렇다고 해서, 초기 작전의 성과물을 버리지는 않았다. 미군은 이라크 깊숙이 진격했고, 이것은 위험요소일수도 있으나, 반대로 적에게 치명상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미국은 보급로를 확보하면서, 바그다드를 포위 압박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다음 작전을 준비한 것이다.

다음 작전을 위해서 미군은 먼저 연막작전을 폈다. 당시 전 세계의 관심은... 심지어 후세인 조차 미국이 언제 바그다드에 진입할 것인가에 매달려 있었다. 이때 미국은 미 제4보병 사단의 투입을 거론하며, 바그다드 진입은 그 후가 될 것이라고 기만전술을 폈다.

그러면서 바그다드에 대한 폭격을 강화해, 이라크 군의 약화를 꾀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미군은 과감하게 사담국제공항을 공격했다.
사담 국제공항 공격은 다용도 포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공항을 확보하면 미군은 유용한 보급로를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투기들의 중간 기착지로 활용할 경우 다양한 방면에서 이라크를 괴롭힐 수 있다.

또한, 전략적으로 중요한 만큼, 이라크 군의 반격을 유도해서 숨어있는 이라크 군이 스스로 걸어나와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세울 수도 있다.

사담 국제공항 공격전에 있었던 바그다그 진입과 대통령궁 공격 역시, 이라크 군을 끌어 내기 위한 전술이었을 것이다. 마치 축구에서 수비위주의 전술을 펴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상대 선수들을 외곽으로 유도한 뒤, 문전으로 긴 패스를 이어 주면서 결정적인 기회를 노리는 방법과 같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바그다드에 대한 본격적인 진입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이라크 공보장관은 본의 아니게 미군에게 말려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거리를 활보하고 기자들 앞에 수시로 나와서 ‘바그다드에는 미군이 없다’고 큰 소리 쳤다. 언론들은 미군의 주장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미군의 바그다드 진입은 미 제 4사단이 도착한 이후가 될 것이라고 대대적인 오보를 내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보작전’이다. 심리전이나 홍보활동과는 전혀 다르다. 심리전은 적의 사기를 떨어뜨려서 적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지만, 공보작전은 언론을 작전의 일부로 활용해 적을 기만하거나, 위협하는 것이다. 심리전의 효과도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전술’개념이 포함돼 있다)

그 뒤, 미군은 후세인이 있다고 보고된 건물을 폭격하고, 즉각 대대적인 바그다드 공격에 들어갔다. 이라크 군은 순식간에 붕괴되었고 이라크 핵심부는 통제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전세는 급격히 기울어 버렸다.

물론 아직까지 전쟁이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후세인이나 그 핵심측근 인물이 살아 있다면 미국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게릴라전에 괴롭힘을 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후세인은 많은 것을 잃었다. 이것을 회복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물론, 이것도 후세인의 전략이었다면 또 다르겠지만.... )

이번 이라크 전을 계기로 언론은 반성해야 할 것이 있다. 언론이 의도한 바도 아니고, 인지하지도 못한 것이지만, 언론은 미군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했고, 그들이 기만전술을 펼 수 있도록 유용한 토대를 마련했으며, 본의 아니게 이라크 군에게 타격을 입힌 꼴이 됐다. 이것은 모두 속보경쟁, 특종 경쟁, 그리고 신중하지 못한 예측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런 사례가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언론은 스스로 반성하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철저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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