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시로 재구성한 영화 <질투는 나의 힘>

검토 완료

이종열(suzaku)등록 2003.04.22 11:15

아주 작았지만 무슨 소리가 들린 듯도 하여 무심코 커튼을 걷었을 때, 청년은 사랑 잃었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건만, 무너질 것이 남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는 듯 청년은 미친 듯이 또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래 내버려두라. 뭐든지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아름답지 않은가?

가장 멋진 연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던 청년은 그러나 또 마구 비틀거렸다. 그렇다고 쉽사리 물러설 수는 없었다. 사랑을 목 발질하며 살던 청년에겐 많은 사건이 있었고, 그때마다 콘크리트처럼 그는 잘 참아냈다. 그러나 얼굴이 한 폭 낮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그는 주어(主語)를 잃고 헤매는 가지 잘린 나무가 되었다. 청년에겐 더 이상 헤어질 여력이 남아 있어있지 않았고, 누군가 그를 망가뜨리는 걸 그냥 두었다. 그렇게 그는 살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후에 이렇게 회고할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오후 4시의 희망, 植木祭, 그집 앞, 빈집, 病, 廢鑛村, 비가2-붉은달, 쥐불놀이-겨울 版畵 5, 소리1. 그리고 질투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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