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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는 차세대 대형 스트라이커 감 3명을 한번에 맞이한다. 현재 광주 상무에서 뛰고 있는 이동국 , 대전 시티즌의 간판 스트라이커 김은중 그리고 벨기에 안더헤르트에서 뛰고 있는 설기현 이렇게 3명이 그들이었다.
4년이 지난 2002년 안방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설기현은 16강 이탈리아 전 동점 골을 비롯해서 대표팀의 왼쪽 공격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나 설기현을 제외한 이동국과 김은중은 부상과 부진으로 출전선수명단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1979년생 삼총사 설기현 이동국 김은중 이 세 선수의 활약은 5년 전인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세 선수들은 청소년 대표 소속으로 1999년 나이지리아 청소년 대회 예선 전을 겸해서 태국에서 열린 제31회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에서 활약을 펼친다. 1996년 한국에서 열린 30회 대회에 이어 2연패의 성적을 달성하였으며 숙적 일본을 꺽고 우승 함으로써 청소년 대표 만큼은 일본에게 밀린다는 그 당시 축구계의 편견을 보여준다.
특히 이 대회에서 보여준 이동국의 플레이는 청소년 대표급의 모습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특히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마르세유에서 열린 네덜란드 전에서 활약보인 이동국은 대표팀 급의 기량을 선보였다. 일본전에서 기록한 180도 몸을 젖히며 때린 슈팅은 그 당시 국가 대표 선수급의 슈팅이었다.
설기현은 어떠한가? 당시 오른쪽 윙에서 뛰었던 설기현은 윙에서 부터 돌파해 들어가 정확한 센터링을 이동국과 김은중에게 연결하는 능력을 과시하여 설바우도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또한 1999년 나이지리아 대회 본선에서 김은중과 이동국이 무득점과 1득점으로 부진한 가운데 한국 선수중 최다골인 2골을 성공 시켜 국제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은중 또한 황선홍이후 볼 수 없었던 공간을 이용하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 이후 설기현은 허리부상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본선에 출전하지 못한 아픔을 겪은 것을 제외하고는 벨기에서의 활약과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오른쪽 윙겸 스트라이커로 활동하고 있다.
반면 이동국은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아시안 컵에서 득점왕에 오르고 독일 분데스리가 브레멘 팀에 진출하나 아시안 컵 당시 입은 무릅 부상 후유증과 연습 부족과 기량 부진으로 결국 2002년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불운을 겪는다. 특히 포항스틸러스 시절 최순호 감독으로부터 정신력이 헤이하다는 지적을 자주 들었을 만큼 자기 관리에 헛점을 드러냈고 올해초 상무팀으로 입대하였다.
김은중은 소속팀의 성적 부진과 2000년 아시안컵 예선에서 입은 무릅 부상 후유증으로 부진에 빠졌으며 특히 히딩크 號에서는 초기 멤버에서 부터 제외되는 아픔을 겪게된다.
부진의 늪에 빠져 허우적 되던 두 선수가 부활의 날개를 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을 김은중의 부활이다. 김은중은 K리그에서의 활약으로 만년 꼴찌로 지목되던 대전을 2위로 이끌고 있다. 특히 지난 16일 축구회관에서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코엘류 감독은 4-2-3-1 시스템의 원톱을 이끌 스트라이커로 김은중을 지목했다. 국가대표팀의 교체 멤버로 활동하던 김은중이 붙박이 스트라이커로 나설 수 있을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잇달은 A매치에서의 부진과 광주 상무 팀에서도 부진을 보이던 이동국은 올 시시즌 2번째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1998~1999 당시 전성기 때의 기량을 선보인 이동국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것인지 주목된다.
1979년 생 3총사의 대두와 한국축구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올것인가? 이 세 선수의 비상을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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