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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가 군 수뇌부가 서해교전의 진실을 왜곡했다는 합참 기밀문건을 보도한 지 3일이 지났지만, 여타 언론사들은 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 28일 합참 기밀문서를 근거로 "서해교전을 우발사고라고 규정한 군 정보당국의 결론을 국방부와 합참이 '의도적 도발'로 뒤집었다"고 보도해 국방부 내외에 파문을 일으켰다.
국방부는 <한국> 보도에 대해 "교전 발생 직후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 작년 7월2일부터 4일까지 한미합동으로 조사를 실시, 북한군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의도적 공격이었다고 결론 내렸다"고 반박했고, 이 같은 입장은 27일 밤 YTN에도 보도됐다.
그러나 각 언론사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하나같이 이번 사안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은 아리송한 대목이다. 통상 유사한 사안의 경우 "이 같은 논란이 있지만, 당사자는 부인했다"는 식의 간단한 해명보도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국방부의 한 출입기자는 30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 보도를 그대로 인용할 수는 없고, 나름대로 확인을 해야 하는데, 사안 자체가 확인이 굉장히 힘든 내용이었다. 국방부가 보도를 하지말라고 압력을 넣은 것은 아니고, 출입기자들 사이에 담합이 있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6월말에 있었다는 군 정보당국 회의가 감지되지 않고, 김대중 정부 입장에서는 햇볕정책을 지키기 위해 '우발사건'으로 규정하는 게 용이했을 것임에도 거꾸로 <한국> 보도는 햇볕정책을 위해 '계획도발'로 뒤집었다는 대목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한국>은 29일 "서해교전을 '북한의 계획도발'로 바꾸도록 지시한 군 수뇌부는 이남신 당시 합참의장과 이상희 작전본부장(현 3군사령관) 등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들이 7월초 정보당국의 결론을 보고 받은 뒤 불과 몇 시간만에 권영재 정보본부장을 통해 '계획된 도발로 바꾸라'고 지시했다"고 기사화해 당초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더 나아가 기사를 쓴 김정호 기자는 같은날 <기자수첩>에서 "국방부가 엉뚱하게도 기자에게 취재수첩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한편 군사기밀 누출 용의자 색출에 혈안이 돼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김 기자는 "서해교전에 대한 '진실 찾기'는 의외로 간단하다. 북한군이 정말 전투태세를 완비하고 확전을 벼르고 있었는지, 북한 해군 8전대 지휘부는 왜 문책을 받았는지 등의 기초사실부터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진위를 가리는 데 소극적인 국방부를 질타하기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www.ccdm.or.kr, 이하 민언련)은 30일 성명을 발표해 "당시 대부분의 언론이 '북한의 의도적 도발'로 몰아가 남북관계까지 위태롭게 했지만, <한국> 보도로 진실이 밝혀졌다"고 평가했다. 민언련은 언론들의 침묵에 대해 "언론은 정부나 정치권의 잘못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를 외치며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민언련의 성명서 전문.
서해교전의 진실 앞에 언론은 부끄럽지 않은가
한국일보는 5월 28일 지난해 발생한 서해교전이 '북한의 의도적 도발'이 아니라는 합참의 기밀문건을 공개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서해교전은 우리 어선들이 어로저지선 밖까지 진출해 꽃게잡이 조업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 해군이 '충돌을 불사하듯 고속으로 북한측에 접근'해 북한의 우발적인 대응을 불러일으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는 뒤늦게나마 서해교전의 진실이 밝혀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를 보도한 한국일보 김정호 기자의 기자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과 방송이 서해교전을 북한의 의도적 도발로 섣부르게 단정하고, 이를 근거로 남북관계까지 위태롭게 했던 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은 국방부와 합참의 발표에 의존해 지난해 6월 29일 발생한 서해교전을 '북한의 의도적인 도발'로 몰고 갔다. 초기보도에서부터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당시 남북간의 무력충돌을 '북의 도발'로 규정했다. 반면 경향신문, 한국일보, 한겨레신문은 '교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차이를 보였다. 이후에도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수구언론들은 서해교전이 발발한 원인을 햇볕정책에서 찾으며 대북 대화 채널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등 남북관계마저 냉각시키려 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격침에는 실패했다""군 당국이 소극적인 대응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등 격침시키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듯한 냉전적 사고마저 드러냈다.
7월 1일 MBC에 의해 우리 어선 일부가 어업통제선과 적색선을 넘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들은 이를 외면하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7월 4일 사설 <우리 어선 탓이라니...>에서 "이러한 시각들은 결과적으로 '남한의 원인제공'과 '북한 도발의 우발적 성격'을 부각시킴으로써 북한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이를 보도한 언론에 오히려 책임을 물었다.
중앙일보 역시 남측 책임론 발언을 '파문'으로 표현하며 <"어선 월선이 북공격 빌미라니 …" /일부 방송 보도에 분개-연평도 어민표정>라는 제목으로 MBC 보도를 비난했다. 동아일보는 "NLL로 인해 언제든지 남북 분쟁이 재연될 수 있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며 NLL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등 신중한 태도를 보였으나 그 이상의 진전된 보도는 없었다.
방송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MBC가 연평도 현지 어부와 부상병사들의 인터뷰를 통해 "당일 어부들이 금지수역을 월선했다"는 보도를 내보냈으나, KBS는 오히려 이 진실보도를 외면, 북쪽의 계획적 도발을 기정사실화 하는 방향으로 보도를 내보냈다. SBS도 한국방송과 다르지 않았다.
MBC의 '특종'은 서해교전사태의 진실을 밝힐 중요한 실마리였으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과 방송은 이를 '폄하하거나' '딴죽걸기'에 바빴고, 우리사회는 서해교전 진실 찾기에 실패했다. 심지어 조선일보와 같은 수구언론의 북에 대한 강경 보도로 한 동안 남북관계가 냉각기를 거쳐야 했다.
한국일보의 보도로 서해교전의 원인이 밝혀졌으며, 국방부와 합참 등 군 수뇌부와 청와대까지 개입해 서해교전의 원인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묵묵부답이다. 서해교전 당시 가장 강하게 북한을 비난하고 MBC '특종'을 비난했던 조선일보도 침묵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KBS와 SBS도 이를 보도하지 않고 있다.
언론은 정부나 정치권의 잘못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를 외치며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수구언론들은 서해교전과 같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들의 위기의식을 부추기며 이를 자사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해 왔다. 지난 서해교전 당시 수구언론이 보여준 태도는 어떠한 말로도 설명할 도리가 없다. 대통령조차도 잘못이 있으면 국민 앞에 사과하는 마당에 이 같은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 일부 언론의 오만함에 우리는 '사실보도'의 이름으로 돌팔매를 던진다.
언론은 서해교전 관련 보도에 대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국민 앞에 참회하라. 또한 이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북 보도 수칙을 사회적 합의 하에 마련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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