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1학년이 있는 미술실 풍경

수업현장 소개

검토 완료

신종봉(afbug)등록 2003.06.07 13:01
여고 1학년이 있는 미술실 풍경


오늘은 지난 3월 4월, 두 달 동안 부모님 얼굴 그린 것을 평가하는 날이다.
말이 두 달이지 7차 교육과정에 따라 미술 수업이 일주일에 한 시간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소풍이니 시험, 무슨 적성검사, 지능검사 따위로 생겨난 수업 결손을 빼고 나면 불과 4-5시간만에 그린 셈이 된다.
그것도 부모님 사진 스캔하느라 한 시간, 스캔한 사진파일을 규격에 맞게 출력해주느라 걸린 시간까지 빼고 나면 두 달이 아니라 불과 서너 시간동안 그린 것이다.
어쨌든 '최초로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써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부모님을 한번 감동시켜보자'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5월 8일 어버이날 아침에 부모님 초상화를 보여드리는 깜짝쇼를 신학기 초에 설정하였다.

"울 엄마는 그림 보여드렸더니 울었어."

미술실에 들어서는 아이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울 아빤 엄마만 그렸다고 삐쳤어."

안타까운 일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을 다 그리기엔 7차 교육과정이 규정하고 있는 미술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철이 든 녀석이라면 다음엔 꼭 아버지를 그려드린다고 약속을 했을 것이다. 초상화 뒷면에 부모님의 소감이 적힌 스케치북을 전부 제출하게 한 다음, 소란을 피우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척추!'를 외쳤다. '자, 바로 앉아라!' 따위의 명령으로는 씨도 안 먹힌다. 뭔가 참신하고 새로운 명령어를 개발해야 한다. 손에 들린 쇠꼬챙이( LCD 스크린을 잡아당겨 내릴 때 쓰는......)를 수직으로 세우면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아, 척추!'하며 등뼈를 바로 세운다. 그것도, 등뼈를 구부리고 앉는 버릇이 3년간 몸에 배면 훗날 자신의 결혼식장에 등뼈가 굽은 신부가 입장하는 엽기적인 미래를 예로 들어 협박한 끝에 얻어낸 반응이다.

"나는 이번 부모님 그리기를 하는 동안에........."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몇 몇 녀석이 떠들기 시작한다. 한 학급 40여명 중에는 대학생에 가까운 아이도 있고 아직 초등학생 수준의 이해력에 머무는 아이도 있다. 자연히 산만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다. 수업이 힘드는 것은 바로 이런 구조적인 조건에서 비롯된다. 산만한 아이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또 다시 엽기적인 협박이 필요하다.

"아, 지금 미술실 정물대에 놓아 둘 싱싱한 팔이나 다리가 하나 필요한데........누구의 팔다리가 적당할까.........옳지! 저기 떠들고 있는 아이가 있네? 어때? 불구자로 한번 살아볼래? 네 팔 그거, 내가 당장 압수할까?"

아이들은 꺄르륵 넘어간다. 어쨌거나 떠들었던 아이도 당장 바로 앉는다.
방금 한 소리를 누군가 휴대폰으로 녹음하여 관계기관에 신고하면 교사가 수업 중 사용해선 안될 어휘를 구사한 혐의로 나는 체포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즈음의 이 생기발랄한 아이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선 과연 어떤 어휘들이 효과가 있을 것인가?
고함을 지르고 몽둥이로 교탁을 치면 억지로나마 주의는 한순간 집중될 것이다. 그러나 수업은 교사와 학생간의 미묘한 정서적 피드백(feed back)이다. 어느 한 쪽에서 화가 나면 피드백은 죽어버린다. 그렇다고 마냥 온화한 표정에다 점잖은 용어만 사용하면 아이들은 살판난 듯이 떠들어 제낄 것은 뻔한 일, 이래저래 분위기가 경직되지 않으면서도 집중의 효과가 있는 엽기적인 협박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번 부모님 그리기를 통하여 많은 아이들이 예쁜 어머니와 잘생긴 아버지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출한 부모님 사진을 스캔하기 위해 LCD 스크린에다 미리보기(preview) 화면을 띄우면 미술실 전면에는 각자의 부모님 얼굴이 나열된다. 색다른 경험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도 부모님의 얼굴을 대할 기회는 흔하지 않다.

'니 엄마 참 예쁘시네? 전지현 닮았네?'
'니는 하필이면 아빠를 닮았니?'

엄마가 전지현 닮았다는 아이는 어깨가 으쓱하고 하필이면 못생긴 아빠를 닮았다고 지적을 받은 아이는 그만 풀이 죽는다.
부모의 그 어떤 능력도 외모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순간이다. 비단 이 아이들뿐이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 나라가 예쁘고 잘생긴 얼굴에 미쳐있다. 오죽했으면 대권 후보가 이마 주름을 펴준다는 보톡스 주사를 맞아야 했을까.....

"그래서 오늘은 얼굴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자신의 얼굴은 이 세상에서 몇 번째로 예쁠까요?"

동화 백설공주의 백미는 계모의 독백이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아이들의 심리적 밑바닥에도 계모의 질문과 같은 의문이 깔려 있을 것이다. 틈만 나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텔런트의 외모의 순서매김을 즐겨하는 이 아이들은, 냄새를 잘 맡는 주먹코보다는 냄새는 못 맡아도 잘생긴 코를 원한다. 그러나 잘 생긴 이목구비보다도 보고 듣고 맡고 맛을 아는, 이목구비 본연의 기능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여러분, 15센티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져 본 일이 있습니까?"

절벽인데 높이가 15센티란다.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런 절벽도 있나. 그러나 떨어지는 순간의 충격은 100미터 절벽이나 마찬가지다.

"계단이 끝난 줄 알고 발을 헛디뎠을 때, 순간 죽는 기분이 아니었습니까?"

폭소와 함께 아이들은 가슴을 치며 공감한다.

"15센티 절벽이라도 하루에 서너 번씩만 떨어지면 스트레스가 쌓여 일주일도 못 가서 죽을 겁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절벽에 함부로 떨어져 죽지 않는다. 끝나지 않은 계단을 확인할 수 있는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중에 앞이 안 보이는 학생 있습니까? 없죠? 다행입니다. 아마 여러분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도 앞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닌 덕분일 것입니다."

일단은 눈의 본질적 기능은 전달되었다. 다음은 귀의 소중함을 깨우칠 차례이다.

"나는 운전 중에, 귀에다 이어폰을 끼고 가는 아이가 제일 무섭습니다. 언제 자동차 앞으로 뛰어들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어폰을 끼고 갈 적에는 3초 간격으로 뒤를 돌아보도록 합시다."

3초 간격으로 뒤를 돌아다보는 흉내를 내면 아이들은 또 한번 박장대소한다. 사실이 그렇다. 가뜩이나 비좁은 등하교길, 뒤에서 다가오는 자동차의 엔진소리를 듣지 못하는 상태는 얼마나 위험한가.

"냄새 정도는 못 맡아도 설마 죽는 일이야 없겠지요?'

일단 거짓 유도성 질문을 던져본다. 냄새 잘 맡는 주먹코보다 냄새는 못 맡아도 잘생긴 코를 원하는 아이들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누군가가 나즈막하게 중얼거린다.

연탄가스.....

학생이 정답에 접근한 듯한 낌새가 보이면 교사는 즉시로 맞장구를 쳐주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맞습니다. 독가스인줄 모르고 마시면 즉시로 죽습니다. 썩은 생선이 악취를 풍기는 것은 먹으면 죽는다는 신호 아닙니까?"

향기보다는 오히려 악취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필요한 신호인지를 좀 더 명확하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만약에 똥이 향기를 풍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억지에 가까운 가정법이지만 상상력을 키우는데는 효과적이다.
당장 응접실이나 책상 위에는 향을 피우기 위한 똥을 담은 예쁜 그릇이 놓여질 것이다. 벽에도 똥을 발라서 향내를 피울 것이고 특별히 독특한 향내를 풍기는 똥을 누는 학생은 화장실 갈 적마다 똥을 얻기 위한 열성 팬들이 줄을 설 것이다.

"결국 생활환경은 위생 상태가 엉망이 되어 질병이 만연하여 인간은 멸종될 것입니다."

일개 냄새기관의 이상이 인류의 멸종에 이르는 중대한 관건이 되는 순간이다. 사실 우리 몸의 그 어느 감각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맛을 보는 혀가 있어서 몸에 이로운 것만 골라서 먹게 하고 찔리면 아프고 뜨거우면 자신도 모르게 움츠리는 촉감이 있어 우리의 육신은 온전하게 보전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은 큰일났습니다."

가끔, 교사의 너스레는 아이들의 주의력을 집중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갑자기 경직된 교사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이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주목을 하기 마련이다.

" 내가 보기엔 여러분들의 눈과 귀, 심지어 코나 혀까지 심각한 중병에 걸려 있습니다."

새파란 10대들인 자기네를 두고 중병에 걸렸다고 단언하는 교사를 아이들은 바라본다.

"이 중엔 아마도 머리 염색을 하기 위해 올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몇 몇 아이가 움찔하는 낌새가 느껴진다. 많은 아이들은 방학만 되면 새까만 머리를 노랑이나 빨강색으로 물들인다. 한동안 머리 염색 풍조는 온 나라를 휩쓸었다. 몽골리언의 특징인 검은머리가 하루아침에 앵글로색슨을 비롯한 다양한 종족의 머리카락으로 변모하였다. 심지어는 검은 눈동자마저 파란눈으로 바꾸는 연예인들마저 나타났다.
서양인의 모습이 멋져 보이는 시각이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는 이야기이다.

"여러분이 결혼을 하여 첫 아기를 낳았을 때, 자신이 낳은 아기가 노란 머리카락에다 파란 눈을 하고 있으면, 옳다구나! 내 아이는 머리 염색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며 정말로 반가와 할 수 있을까요?

잠시, 아이들은 생각에 잠긴다. 아무리 노란 머리가 보기 좋아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어머나...... 내 아이가 어째서 이런 모양을 하고 있을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을까요? "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현상, 그것이 바로 숨길 수 없는 자신의 아이덴티티이다. 이 세상 그 누구든 자신의 본질을 외면할 배짱은 없다. 그런데도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눈동자 색상마저 바꾸어보려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풍조, 비록 그것이 일시적이긴 하나 병든 시각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병든 청각의 실태는 더욱 심각하다.

"나는 올 3월초에 우리나라에서 현재 활동하고 그룹의 이름을 조사하다가 그만 두 손들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HOT나 GOD가 물꼬를 트기 시작하더니,

크라잉 넛(crying nut),
블랙비트(black beat),
에즈 완(As one),
샤프(sharp),
스페이스 에이(space A),
파이브(F-iV),
씨비 매스(CB Mass),
케이 팝(K pop),
제이티엘(JTL),
오션(5 tion),
데자부(dejavu),
쥬얼리(jewerly),
엔알지(NRG)............
................
..............

끝없이 이어지는 국적불명의 그룹 이름들........조사하는 자체가 무의미하였다. 외래어, 특히 영어로 된 이름이 아니면 소위 촌스럽게 들려서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다는 현상이리라. 우리말로 된 그룹도 있긴 있었다. 유리상자, 부활, 노을, 자탄풍(?)-자전거 탄 풍경................. 그러나 외래어로 작명된 숫자에 비하면 그야말로 상대가 안 되는 수치였다.

"여러분, 혹시 '제이 에게' 라는 노래 알아요?"

제이,
스치는 바람에
제이,
그대모습 그리며....

워낙에 많이 알려진 가요라 모르는 학생은 없다.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가 불러서 거의 국민 애창곡이 되다시피 한 노래다. 생각만 해도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미지의 대상인 J.......
하필이면 왜 그 매혹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영문 알파벳인가? 이니셜을 한글 자모로 대체하면 안될까?

지읏,
스치는 바람에
지읏,
그대 모습 그리며.....

교실 안은 폭소가 터진다. 너무 어색하기 들리기 때문이다. 다른 자음으로 바꿔서 다시 한번 불러본다.

비읍,
스치는 바람에......
비읍,
그대 모습 그리며....

아무래도 어색하다.

쌍비읍,
스치는 바람에...
쌍지읏,
그대 모습 그리며.......

어떻든 절망적이다. 그 어떤 한글 자모도 이 어색함을 치료할 길이 없다. 왜일까? 어째서 우리의 청각은 이렇게도 영어의 포로가 되었단 말인가? 콜라와 피자가 자라나는 세대들의 미각을 정복하고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는 신세대의 후각이 거부하는 기피메뉴로 변질되고 있는 중이다. 이미 모든 감각의 기준이 남의 것-서양의 것으로 대체되었는데 그런 감각을 거쳐서 형성된 정신이 제정신일 까닭이 없다.

"여러분, 자기의 것이 아닌 남의 기준으로 보고 듣는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혹시 알고 있습니까?"

남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낭패를 당하는 예를 적절하게 제시해야 할 순간이다. 어떤 예가 적절할까.....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여 고급 브랜드 옷만 구입하다가 가정경제가 파탄 난 예를 들까....... 아니면 자신도 감당 못할 허세를 부리다가 망신당한 예를?

"여러분, 우리 주변에는 각종의 노예들이 있습니다. 고급 브랜드로써 자신을 과시하려는 상표의 노예, 직위로써 자신을 드러내려는 명예의 노예, 재력으로 위안을 삼는 금전의 노예.
이 중에서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 수 있는 노예가 바로 예술의 노예입니다."

사실이 그렇다. 이 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예술의 노예들이 들끓고 있는 중인가.

"이봐, 비서실장. 이번에 내한하는 악단 이름이 뭐라더라........세계적으로 좀 알려진 악단이라면서?"
"네, 회장님. 세계 최 일류의 교향악단입니다."
"그럼, 입장권을 예매해 두게. 최고급으로...."
"로얄석으로 말입니까?"
"그...그렇지."

이런 사람들의 목적은 저명 인사들이 운집한 예술의 전당 로비에서 서로 악수를 나누는 순간에 일찌감치 달성되기 마련이다.

"아이구, 회장님. 회장님이 음악에 일가견을 갖고 계신 줄을 몰랐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워낙 사업에 바쁘다보니 자주 못 왔습니다."

이 장면에서 회장님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일, 이윽고 막이 오르고 연주가 시작되면 로얄석의 회장님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지루한 음악을 듣는다. 어느 순간, 부인이 팔을 꼬집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쏟아지는 잠은 무서운 기세로 회장님을 엄습한다. 회장님도 안다. 코고는 소리를 내는 순간, 자신은 사회적으로 매장되리라는 것을. 극도의 인내로써 달려드는 잠과의 투쟁을 벌여야 한다.

"여러분. 잠이 쏟아지는데 절대로 자면 안 되는 상황,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죠?"

이 세상 누구보다도 하루종일 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아이들이라 전폭적인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이해력이 빠른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예술의 노예로 고생하고 있는 회장님이 벌써 자리잡고 있다.
이윽고 지루한 음악이 끝났다. 정신이 번쩍 든 회장님이 반가운 나머지 힘차게 박수를 쳐댔다. 훌륭한 연주다.

"짝짝짝짜짜자자..자......자........"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니 박수를 치는 사람은 회장님 혼자 뿐이었다. 1악장이 끝나고 2악장이 시작되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청중들의 시선은 일제히 혼자서 박수를 치고 있는 회장님에게로 집중되었다.
비싼 돈을 들여 음악회에 참석한 회장님은 그만 처참하게 매장을 당하고 말았다.

"이 때의 음악은 회장님의 정서를 살찌우는 예술입니까, 인생을 망치는 원수입니까?"
"원수요!"
"어째서 숭고한 예술이 지긋지긋한 원수로 돌변했습니까?"
"......................"

순전히 남의 기준에 매달려 살았던 뒤끝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오늘 수업의 주제는 얼굴이다. 수업의 목표를 인식시킬 때가 되었다.

"얼마 전 아파트에서 떨어져죽은 한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눈썹을 뽑아 버리고 예뻐지려고 심어놓은 눈썹에서 끊임없이 고름이 흘러내렸던 이 아가씨는 더 이상 살아 갈 의욕을 상실했던 것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쌍꺼풀 성형수술을 하였다. 그런 예를 들다간 이미 수술한 아이들의 마음에 생채기만 입힌다. 코를 높이기로 작정한 아이도 있을 것이다. 실리콘의 부작용 예도 여건상 부적절하다. 비교적 아이들과 무관하면서도 남의 얼굴 본뜨기에 다름 아닌 성형 수술의 폐해는 눈썹이 적당하다.
그러나 외모지상주의에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아이들의 인식은 이런 한가지의 예를 드는 것만으로는 쉽사리 교정되지 않는다.

"여러분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탤런트는 누구입니까?"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미술실 안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소란스럽다.

"전지현!"
"이나영!"
"이영애!"
"송혜교!"
"심은하!"
"장서희!"

외모지상주의가 심어놓은 위력이 아직도 미술실 안에는 기세가 등등하다. 이 기세를 꺾는 것이 오늘 수업의 목표이다.

"여러분 중에서 전지현이나 이나영을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습니까?"

불이익을 당한 정도가 아닐 것이다. 만인이 인정하는 획일화된 미인과 닮지 않았다는 것은 예쁘지 않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곧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잘 난 척 하기는'과 같은 끔찍한 구호를 외치며 외모지상주의 앞에 당당하게 굴복(?)하는 공영방송이 살아있는 이 땅에선 억울하지만 일종의 천형(天刑)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 소위 못생긴 얼굴로 구김살 없이 살아가기란 득도의 경지를 갖추지 않고는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더구나 이제 16,7살 짜리의 여고생으로선 거의 불가능한 악조건인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어디까지나 전인 교육을 지향하는 공교육 기관이다. 결코 외모지상주의에 굴복할 수 없는 성스러운 공교육 기관이다.

"실베스타 스탤론이나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멋진 가슴과 우람한 팔의 근육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지 따져봅시다. 그들 할리우드 스타들의 근육은 화면을 통해 보여준 대가를 요구하는 상업적 근육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여러분이 신고 있는 신발을 만든 노동자들의 근육을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을 만든 재단사들과 봉제공들의 근육을 생각해 봅시다. 당장 여러분이 먹어야할 점심을 준비하는 구내식당 아주머니들의 근육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 근육의 생김새가 비록 할리우드 스타들의 근육만 못해도 따지고 보면 그들보다 월등하게 여러분과 가까이 있는 친밀한 근육이 아닙니까?"

따지고 보니 실제로 그렇다. 너무나 상식적인 인간관계를 너무나 망각하고 있었음을 아이들은 깨닫는 중이었다.

"부모님은 여러분을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분입니다. 기왕이면 전지현을 닮았으면 하는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는 막중한 분입니다."

이로써 예쁜 어머니와 잘 생긴 아버지를 원하던 아이들의 인식에 자그마한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수업을 마감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오늘 집에 돌아가서 거울을 들여다봅시다. 자신의 눈과 귀, 코와 입은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질 막중한 기관들입니다. 그 어떤 다른 사람의 눈이나 코가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자신의 것입니다. 자신의 얼굴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남의 얼굴로 살아갈 것인지 오늘 이후로 각자가 고민해보기 바랍니다."

수업은 끝났다. 테이블 밑으로 의자를 밀어 넣고 일어서는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은 진지해 보였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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