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과 사생활 보호 사이

[민경진 칼럼] 네이스(NEIS) 파동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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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진(jean)등록 2003.06.20 16:39
남녀관계는 말 그대로 관계(Relationship)다. 남자와 여자가 좋아서 만난다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 없다. 만남의 지속 즉, 관계 자체가 좋아서 만날 뿐이다. 남녀가 만나는데 특별한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더 이상 만나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니 연인이나 가족이나 무슨 과업이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급조된 태스크 포스(Task Force)는 아닌 것이다. 의도가 있는 만남은 그 근원이 되는 목적이 사라지는 순간 존재의 가치를 잃게 된다.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 직업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인지 용모는 어떤지 정도야 남녀의 만남이 성사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에 불과하다.

이런 기본 정보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만남의 발전은 없다. 만남이 지속될수록 가족사는 어떤지,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실수는 없는지 그리고 마음 속 최후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사실까지 털어 놓아야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탄탄한 관계가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남녀가 친밀해지면 둘만이 기억하는 은밀한 추억들도 많아진다. 밀회의 시간도 늘고 때로는 서로의 은밀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해 두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냄으로써 남녀관계는 궁극의 합일을 향해 달려간다.

문제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입게 될 재앙의 가능성 역시 커진다는 것이다. 우선 사는 곳을 알고, 연락처를 알며 그 사람의 결점은 무엇인지, 혹은 비리는 없었는지, 결정적으로 공개되어서는 안될 둘만의 은밀한 모습이 담긴 사진 같은 것들이 나중에 모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연예인의 과거추문이 가끔 공개되어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면 친밀한 관계는 그만큼 그에 상응하는 미래의 취약함과 위험부담을 대가로 먹고 사는 모양이다.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은 소비자를 속속들이 깊게 앎으로써 그의 숨은 욕망을 진정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 역시 스스로를 자주 드러냄으로써 기업으로부터 더욱 큰 효용과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바로 CRM(고객관계관리)의 기본 개념이다. 사람들이 단골병원과 주치의를 두는 이유다.

병원에 갈 때마다 매번 수백개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하고 과거의 진료 사실까지 하나하나 기억해내야 한다면 그처럼 피곤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냥 이름만으로, 서로의 얼굴표정만으로 이심전심이 통하는 수준까지 가야 의사는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처방과 치료를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도 문제는 내가 믿고 공개한 정보를 의사가 제3자에게 팔아 넘기거나 악용하려고 마음을 먹을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위험 부담이다.

따라서 1회성 거래보다 지속적인 관계가 중요해지는 네트워크 사회의 특성상 갈수록 신뢰할 만한 브랜드에 더욱 사람들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게 된다. 이제 기업과 소비자들은 거래가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자 한다.

거래란 한번 이루어지고 나면 과업이 달성된 것이므로 다시는 그 기업과 상대할 일이 없어져 버리지만 관계는 굳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그 관계의 유지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지속되어야 할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소비자와 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모든 기업은 쇠락하게 된다. 기업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제품과 서비스가 1회성 거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관계를 지향하도록 고안된 것인지 지금이라도 눈여겨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컴퓨터나 휴대전화, MP3 등을 소비자들이 자꾸 업그레이드하며 신제품으로 교환하는 것은 그 제품의 속성이 거래가 아니라 관계를 지향하도록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요즘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단발성이 아니라 속편에 속편을 거듭하며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것 역시 일회성 거래 대신 영화 팬과의 관계를 지향하는 할리우드의 전략과 깊은 관계가 있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파악한 정보화사회의 대세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장강(長江)과 같은 흐름이다. 문제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커지는 재앙의 화근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 신체의 은밀한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의사를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나의 독서습관을 샅샅이 꿰뚫고 있는 인터넷 서점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책을 살 수 있을 것인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일은 없다. 한 사회가 진보에 따르는 부작용이 두려워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은 꿩 마냥 미래를 외면해 버린다면 다시 옷 벗고 혈거생활을 하는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합리적인 문명사회라면 이럴 경우에 대비해 법과 공권력 그리고 다수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대의기구를 만들게 마련이다.

물론 이런 법적 장치들이 있다고 해서 사생활의 불법적 침해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경찰과 사법부만 만들면 살인, 강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문제는 사생활 침해가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이런 경우를 대비해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는 대응 시스템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겠다.

교육부와 전교조가 네이스(NEIS) 채택을 두고 몇 달을 넘게 심각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틈에 정권과 지지층을 이간질시키며 재미를 보려는 언론까지 가세해 이제 도대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흐릿해지는 형국이다.

필자의 소감은 이렇다. 지금 네이스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는 벗어난 지 오래다.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네이스에 등재된 개인정보를 뺨치는 엄청난 소비자 정보를 확보한 뒤다. 또 기업들이 이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해서 갑자기 악마로 돌변해 소비자들을 해코지하려는 것처럼 여기는 소비자단체의 태도도 과민 반응이다.

브랜드 이미지와 명성의 가치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정보화사회에서 기업이 섣불리 위법적 행동을 하다 들통이 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역시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남용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문제는 이미 지적한 것처럼 네트워크 사회가 발전할수록 기업이나 소비자나 서로의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을 필요, 즉 서로의 정보를 공유해야 할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런 대세는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산업시대에 찰리 채플린은 거대한 기계의 나사못처럼 소외된 대중의 고독함을 슬퍼하더니 이제 정보화시대가 되어 한 사람 한 사람 알아주고 챙겨주려 하니 나 좀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하소연이다. <모던 타임즈>의 시대는 저물고 이제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가 도래했다.

결국 효율성과 사생활의 보호라는 상충하는 두 가지 목표를 어떻게 조화롭게 달성하느냐가 중요해진 시대다. 장차 헤어진 뒤 해코지 당할 것을 염려하여 아예 연인을 사귀지 못하는 것처럼 바보스러운 일도 없다.

그런 불신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모습을 공개할 때 진정한 만남과 관계가 이루어지는 법이다. 가끔 스포츠 신문을 장식하는 추문도 앞으로 계속 흘러나올 것이고 세상 어느 곳에선가는 헤어진 옛 연인 집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인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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