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뒤에 찾아올 망각을 아파하는 것'

김재진 님의 시'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합니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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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애(onlytlsdo)등록 2003.06.25 11:49
'이 세상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

버스 밖 풍경이 새삼 따뜻하게 느껴지면서 나는 여름날 보았을 하늘이 겨울에도 볼 수 있음에 새삼 놀라움으로 어슴푸레한 햇빛을 바라보았다. 그 어느 해 여름 하늘처럼 하늘은 그림물감을 풀어놓은 것 마냥 서정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이었다. 어떠한 시세포만이 두근 박동을 하면서 나는 그렇게 버스 밖 풍경을 창에 기댄 채 계속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늘빛과 흰빛의, 만날 듯 겹치는 그 부분에서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은 '의미'있는 시간이었을까. 지금은 메마른 겨울, 이 땅처럼 내가 무의미하게 또 겨울을 맞이한 지 벌써 한참이나 지난 듯싶다.

이 시는 나를 더욱 바보가 되게끔 하는 뭉툭한 느낌을 준다. '이별 뒤에 찾아올 망각'. 어떤 수많은 인연과 '이별'을 하였기에 나는 이토록 망각에 망각을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꼭꼭 닫은 창문 새로 스며 오는 이 바람도 내가 버스에서 내리면 잊혀질 인연이고, 내가 보고 있는 저 하늘도 잊혀질 인연, 방금 버스에 올라타 꼬깃꼬깃 술 냄새를 풍기며 내 옆에 앉아 있는 이 아저씨도 잊혀질 인연, 인연이라면 '망각'은 자연의 순리인 듯도 싶다.

그렇다면 '이별 뒤에 찾아올 망각을 아파한다'는 이 시인은 얼마나 많은 망각 속에서 아픔을 자아내고 있는가. 인연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만유인력의 법칙. 그 흔하게 들었을 과학의 한 용어가 어느 때 과학시간, 새롭게 들렸을 때가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인력이 있다'라는 그 익숙한 문장 속에서 '하' 나는 졸립던 눈의 버거움이 '삭' 사라짐을 느꼈었다.

순간 나의 몸이 닿는 것들과 나의 눈에 보이는 것들과 나의 귀에 들리는 것들과 나의 코로 느껴지는 냄새의 것들과, 이 모든 것이 나의 인연에 있는 것이라면. 순간 안도현의 '관계'란 책과 함께 짬뽕이 되면서 나는 헷갈리고도 복잡한 그 무언가의 가장 알맞은 해답을 찾으려 끙끙댔던 기억이 난다. 서로가 만나면 관계는 시작되는 것. 관계란 한 번 맺으면 쉽게 끊을 수가 없는 것.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서로 길들여지는 것. 나와 그 사이 어떤 기억도 남아있지 않아야 관계란 끊어질 수 있는 것. 인연이라는 것은? 인연이란 서로가 이미 길들여져 있는 관계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별보다는 길들여져 있는 관계가 잊혀지는 것이 슬픔인지도.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본다. 이별이 아프건 그 망각이 슬프건 이들을 달래 주는 것은 '망각'뿐이라고. '망각'이 없다면 우리는 새로운 인연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어느 한 사람도 만날 수가 없다고 말이다.

그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인연에게, 이 곳에서 나의 인연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도 그 전의 사랑이 생생하게 남아있다면 어떻게 만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하며 17세 마지막 겨울, 버스 안에서 분홍빛 사랑을 꿈꿔 본 나는 추위가 싫어 어느 새 집에 와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을 청한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냄새와 바람의 촉감과 하늘의 색들을 기억할 수가 없다. 또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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