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구를 지켜라

"로얄분체교감유전자"를 가진 외계인을 만나다

검토 완료

한성우(bawichrm)등록 2003.06.29 19:27
지구를 지켜라. 바로 내가 찾던 영화였다. 주말마다 찾아야 하는 비디오찾기의 어려움을 이번엔 누리앙들의 추천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한국판 SF라고 하는데 SF라고 하기엔 절제된 그래픽과 오히려 빈틈없이 메꿔가는 줄기줄기가 보는 내내 즐겁게 했다. 때론 너무 웃겨서 뒤집어 지기도 하고 때론 너무 끔찍해서 눈을 아래로 깔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영화. 18세로 관람판정을 받았단다.

지구를 지키는 청년 병구(신하균)와 짝을 이루는 신인배우 순희(황정민)의 엽기발랄한 얼굴표정과 동작은 가히 머리속을 후련하게 했다. 순희의 맹활약도 기막힌 볼거리였다. 스크린에 아주 오랜만에 등장한 강만식(백윤식)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텔런트인줄 알았는데 예전 주말드라마 덕이에서 입양된 덕이언니의 아빠다. 보는 내내 강 사장 상받아도 되겠다 싶었는데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단다. 걸출한 연기를 해냈다.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청년 병구와 어느날 납치된 강 사장. 멀리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으로 부터 지구파멸을 막아보겠다는 엉뚱한 발상으로 일을 꾸미는 병구를 보노라면 반은 현실이고 반은 상상인 영화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코미디라기엔 너무 우리 현실이 너무 가혹한 것이 있고 실제라기엔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엉뚱한 상상력 이 영화의 장점이다.

외계인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우리 지구인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정상일까? 사실 정상이라고 스스로 믿고 싶어하기에 남들과 조금만 차이를 느껴도 스스로 불안에 떠는 건 아닐까? 그리하여 스스로를 남들과 경계짓기도 하지만 결국 다수에 편입되지 못하면 왠지 불안에 시달리는 건 아닐지.

병구와 강 사장이 겪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아주 불편한 눈으로 맘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어두컴컴한 지하공간과 불쑥 튀어나오는 피빛장치들은 다소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대로 햇빛속에 드러난 강원도 산골의 외딴집과 산중에서 바라보는 산세의 아름다움은 절로 감탄을 만들어 낸다.

강 사장이 병구에게 '미친놈'이라고 불러대지만 난 병구를 '미친놈'으로 스스럼없이 부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병구는 우리가 만들어낸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미치지않고 산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일까? 세상을 돌아봐도 영화나 소설에서 나올 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현실은 또 어떤가?

미쳐 돌아간다고 하기엔 세상은 너무 가혹한 게 사실이지 않을까? 병구는 극중에서 외친다. "고통이란 절대 익숙해질 수 없거든"이라고 말이다. "그래, 다 안다고? 그래 다 알 수 있겠지. 뻔한 얘기니까! 근데 다 알면서 어디 있었는데? 내가 미쳐갈 때 어딨었어? 니들이 더 나빠!!"

병구에게 납치된 강사장은 결국 외계인이라고 실토아닌 실토를 하며 외게인의 비밀을 풀어 놓는다.. 푸른별을 사랑하는 외계인 선왕의 명을 받들어 실험인류를 만들어 낸다. 그 실험대상이 누구냐...아름다운 푸른별의 세상에서 가장 고통을 많이 받은 이들이 대상이란다. "고통은 유전자결합을 약하게 만들고,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변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강사장은 외계인으로써 인류를 이렇게 질타를 한다. "너희들은 미쳤다. 정상이 아니라고, 이 우주 어디에도 같은 종을 괴롭히며 그걸 즐기는 생물은 없어"라고공격유전자, 자살유전자를 없애서 너희들 지구인들을 구하기 위해 왔다고 내뱉는다. 지구를 지키는 대상이 뒤바뀌고 인질이 큰소리를 치는 셈이다.

초반의 코미디를 넘어 스릴로 엎어지고 자빠지는 과정을 넘어 후반기를 넘어 가는 시점에선 현실에서 일어 남직한 부끄런 기억들이 영화를 장식한다. 구사대의 폭력, 병구어머니의 작업중 알수 없는 병에 걸린 기억들...5년을 식물인간으로 살아온 아픈 기억들 말이다. 그런 장치들로 병구를 단순한 싸이코가 아니라 이유있는 미친놈가 되고 그에게 감히 돌팔매를 던질수 없게 만든다.

병구에 맞서는 외계인 강사장은 현실을 대표하는 실제 힘과 권력, 시스템을 상징한다고 본다. 아주 적절하게 자신을 방어하고 있으며 현실감 넘치는 힘과 언어로 병구를 코너로 몰아간다. 미친척 그만하라고 포기하라고 호통친다. " 지가 병신인줄 모르고 평생 남의 탓만하면서 꼴갑 떠는 새키들"이라며 병구에게 쏠린 연민을 담아 올릴 것을 엄중히 요구하기도 한다. 강사장역의 백윤식이있음으로 신하균으로 흐를뻔한 지구가 탄탄해질 수 있었다.

봉준호감독의 동기기도 한 장준환감독은 이번건으로 많이 건질수 있었는데 신인감독상, 조연상, 음향등에서 상을 건졌다. 모스크바 영화제에도 초청을 받았다고 하는데 국내에선 흥행에 실패를 한것이 너무도 아쉽다. 포스터만 보고 판단하기엔 의미가 남다른 감흥과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본다.

취향에 따라선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 식상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한국형 SF라는 코믹스릴러가 조폭영화일변도와 트랜드로 흐르는 한국영화에 참신한 시도라는 점에선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울러 영화적 상상력과 판타지로 나를 비롯한 관객들을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해준 장준환감독의 후속타를 기대해본다.

다음은 재미난 한장면입니다. 지구를 지키는 소품입니다. 보시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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