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古) 박동혁 병장님께..

서해교전 1주년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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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현(intellect)등록 2003.07.01 14:10
박동혁 병장님..안녕하십니까..
비록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존경하는 박병장님께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비록 당신은 이 편지를 읽을 수 없겠지만요..
지난 2002년 6월 29일 서해바다.. 에서.. NLL을 사수하기 위해 북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당신.. 그 이름.. 박동혁 병장..
저는 당신의 이름을 그날 기억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저 역시 박병장님처럼 경기도 동두천에서 현역 병장으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전역을 며칠앞두고 말년휴가를 나와서 친구들과 함께 월드컵의 감동에 빠져 웃고 즐기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아시겠지만 한국은 월드컵의 4강진출로 인해 온 반도가 축제의 분위기였고 모든 국민들이 울고 웃으며 하나가 되어 열렬하게 "대한민국~"을 외쳐대면서 온통 붉은 물결을 수 놓던 때였습니다..
박병장님께서도 우리나라 월드컵의 4강신화를 부대에서 지켜보시면서 환호하셨겠지요.. 그날 6월 29일의 죽음을 예상치 못한채..
그렇습니다. 박병장님도 저도 그때의 군인이었습니다.. 월드컵으로 인해 모든것을 집중시켰던 그때였지요..
서해교전이 있기 며칠전.. 우리나라에는 또 다른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것은 주한미군의 장갑차에 여중생 두명이 깔려죽은 참사가 일어났었습니다.. 제가 동두천에서 마지막 군복무를 했기 때문에 그 때 일엄났던 도로사정과 상황을 충분히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나라는 그런 참사를 외면했습니다.. 월드컵의 감동에 가려져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해 겨울 뒤늦게 촛불을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대단합니다.. SOFA를 계정해라.. 심지어는 주한미군도 철수해라.. 하면서.. 곳곳에서 감정적 대응이 일었고 조금 수그러 들긴 했지만 여전히 시민단체를 비롯한 곳곳에서 운동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또한 박병장님과 함께 NLL을 사수하다 전사한 또 다른 분들을 아는 사람들 역시 별로 많지 않습니다..
주한미군에 대한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해서는 당시 모든 대선후보들이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설정하겠다고 토론회까지 나와서 공언을 했지만.. 당신을 포함한 서해교전 합동 영결식에는 국방부 장관조차도 바쁘다고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박병장님.. 제가 박병장님을 추모하는 또다른 이유 하나는.. 저나 박병장님이나 "지원" 에 의해서가 아닌 "강제징집"으로 인해 군복무를 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조국을 지키다 산화해 버린.. 박병장님에게 애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박병장님.. 저는 지금 벌서 전역을 한지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사회생활에 완전히 적응해서 회사도 다녔고 지금은 저의 꿈을 위해 열심히 다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애통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애통해 하지 마십시오..
저보다.. 아니 저와 차원이 다른.. 박병장님을 추모하고 존경하는 분들이 이 나라에는 아직 많이 있습니다..
박병장님의 죽음으로 인해 저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다 냉철하게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정 무엇을 지켜야 하고 어떤 것을 붙들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비록 국립묘지에서 숨을 쉬고 계시지만.. 그 정신과 사명감을 저는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모습을 닮고 싶습니다..
다시한번 박병장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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