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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자명(1894-1985)은 동학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894년 충주에서 태어나 1910년 충주 공립보통학교 시절 한일합방을 맞이한다. 수원농림학교를 졸업(1916)하고 충주 간이농업학교 교사로 있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충주지역의 만세운동을 준비하다가 일본경찰에 발견되어 서울로 피신한다.
1919년 6월 류자명은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의정원의 의원이 되었으며, 이후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항일 독립운동의 길을 걸어간다. 류자명은 자신의 자서전인 『한 혁명가의 회억록』에서 독립운동이라는 말 대신 ‘조선혁명투쟁’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혁명투쟁의 원동력은 바로 ‘애국주의’ 사상이었다.
류자명은 일반적으로 무정부주의자(Anarchist)로 분류된다. 1919년 12월 상해에서 잠시 서울에 온 류자명은 일본에서 나오는 잡지 <개조(改造)>, <해방(解放)>, <비평(批評)>을 통해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20년 1월10일 일본에서는 동경대학 부교수인 삼호진남(森戶辰男)이 ‘무정부주의 경제학설’에 관한 논문을 잡지에 발표하여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이 류자명에게 영향을 준다. “삼호진남의 사건이 발생한 뒤로부터 나는 무정부주의에 관하여 흥미를 갖게 되어서 무정부주의에 관한 서적을 보기 시작하였다.” 류자명의 무정부주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일본의 무정부주의자 대삼영(大杉榮)과 러시아 출신의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Pyotr Aleksetevich Kropotkin)이다. 류자명은 일본어로 번역된 크로포트킨의 저작을 통해 무정부주의 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철학, 생물학, 경제학, 문학과 예술 등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는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 사상이 류자명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것이다. 크로포트킨을 통해 유자명은 ‘사상변전과정(思想變轉過程)’을 겪는다.
류자명은 무정부주의 사상의 토대 위에 애국주의 사상을 결합, 1945년까지 항일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1920년대에는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을 조직하여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민족주의 계열과 뜻이 맞지 않던 신채호, 이회영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 활동을 펼쳤다. 1929년부터는 중국 무정부주의자들의 활동거점이었던 여명중학과 입달학원의 교사로 활동하면서 학생교육과 농촌운동에 솔선수범하였다. 그와 병행해서 남화한인청년연맹을 결성하여 지속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한다. 1939년 그동안 각기 다른 입장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하던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통합을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1944년 9월 양 계열이 완전히 통합되자 선생은 독립운동과 병행해서 중국인들과 함께 무정부주의 사상을 실천하는 활동을 전개한다. 1945년 8월 류자명은 복건성에서 고아 및 빈민규휼활동을 하다 조국의 해방을 맞이한다.
해방이 되자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귀환했지만 류자명은 자신의 사회주의 또는 무정부주의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1946년부터 1950년까지 대만(臺灣)에서 농업지도자로 활동한다. 그런데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중국 본토를 잃고 대만으로 오면서 류자명은 조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류자명을 조국으로 보내지 않는다. 1950년 한국에 6·25사변이 일어나고 류자명은 다시 중국 호남성 부성장 정성령의 초빙을 받아 장사(長沙)로 간다. 이 때부터 1985년까지 류자명은 중국의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에 있는 호남농학원의 교수로 활동하면서 농업전문가이며 농학자로, 교육자로 인생의 나머지를 중국에 묻는다.
“류자명 교수는 청년시대에 벌써 열화 같은 애국정신을 가슴에 품고 조국광복을 위해 강철같은 의지를 연마하였으며, 도탄 속에 허덕이는 조국을 해방하고 사회주의 새 중국을 건설하는 위대한 혁명도상에서 수 십 년을 하루같이 간고 분투하여 탁월한 기여를 하였다”고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호남성위원회 주석인 정성령은 류자명의 자서전 『나의 회억』(1983) 머리말에서 쓰고 있다.
류자명의 자서전인 『한 혁명가의 회억록』을 통해 우리는 아나키스트 류자명이 다양한 지식을 가진 휴머니스트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농업을 가르치는 교사로 출발, 독립운동가, 농업지도자 겸 학자로 변신했지만, 끊임없이 사상과 철학, 경제학, 생물학, 문학과 예술 등을 공부하면서 아나키즘뿐 아니라 휴머니즘의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거듭났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아나키스트 류자명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앞으로의 글이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의 실체를 밝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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