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청학동에서 만난 "無我亭" 이야기

청학동 '천하의 명당'에 위치한 무료로 아무나 머물다 갈 수 있는 깨끗한 한옥집

검토 완료

강목어(hi)등록 2003.07.12 11:49
지리산 청학동을 가본적 있죠..
그곳에 아주 정말 기가막히게 멋진 위치에 깨끗한 한옥이 한채 있습니다.
맑은 날 방문을 열면 산너머너머 골짜기 사이로
남해 바다와 섬들이 두둥실 떠다니는 곳처럼 보이는 곳입니다.
뒤로는 적당히 산등성이가 포근히 둘러싸고 있고 어찌 그 자리를 그렇게 잘 잡았는지
풍수를 전혀 모르는 그 누가봐도 '천하의 명당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입니다.
게다가 저 밑으로는 청학동의 계곡이 펼쳐지고 있어 정말 그 어디를 흠 잡기가 어려운 곳이죠..
아마 그 집의 방향이나 위치가 조금만 틀어졌어도 그런 멋진 모습을 잡기 어려웠다고 생각될 만큼
멋진 곳에 정확히 위치해 있습니다.

집 구조는 또 어떻습니까..
그 주변과 어우러진 운치에 맞게 한옥으로 깔끔하게 지어져 있고
그속 내부는 고향 시골집처럼 정겨운 소품으로 꾸며져 있지만 정갈하고 깔끔하기가
마치 머리를 쪽진 아름다운 여인네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은 곳입니다.

그런 그곳의 이름은 "無我亭"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을 지은 그곳 주인의 진짜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無我亭"이라는 그뜻이
"주인이 없는 집이다.."라는 정도로 이해 했습니다.
그렇게 이해를 한 배경에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세우며 그곳 주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제가 자연스레 느끼게 된 것입니다.

제가 운 좋게도 그곳을 가 보게 된 것은 제 친구 덕분입니다.
제 친구가 산 공부를 약 십년 정도 했습니다.
그 친구가 이런저런 일로 그곳을 다녀 온다며 저와 함께 갈 것을 제의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졸지에 길을 다라 나섰고
친구는 그 곳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며 그곳으로 저를 데리러 갔습니다.

워낙 먼길이라 밤늦게 도착 했는데 처음 낯선 그 집을 들어서며
전 무슨 특별한 한옥식 민박집이려니 생각 했습니다.
청학동에는 그런 식의 한옥식 민박집이 여기저기 있거든요..
게다가 친구는 그 집에 대해서 저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었기에 잘 아는 민박집을 왔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원래부터 별로 말이 많지 않은 친구라서요...

그런데 그 집이 다른 관광지의 민박집하고는 분위기가 전혀 틀리는 것이 방안의 장식품도 그렇고
주인 역시 손님을 대하는 것이 전혀 민박집 주인 같지는 않았습니다.
나이가 50은 족히 넘은 남자 분이 머리를 바짝 깎은 채 수염을 길게 길러 흡사 불당에서 보게 되는
불심 깊은 스님을 연상 시키더라구요..

그분은 우리의 방문에 잠시 인사를 나눈후 곧바로 다른 손님과 옆방에서 이야기를 마져 나누시겠다며 옆방으로 가버리셨습니다..
그분이 들어간 그 옆방에서는 이유를 알수 없는 여러 사람들의 유쾌한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 왔습니다.
저는 일순 궁금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시길래...

그리고 얼마 후 그 주인장은 거실 겸 안방에서 우리와 마주 앉았습니다.
차 한잔을 권하더군요..물론 전통차 였지요..
전통차 마셔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작은 잔에 열잔도 더 마십니다.
거의 한주전자씩 마시죠..

차를 마시다 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가고 그 주인의 품성을 대충은 알겠더군요..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을까요..
옆방에 계시던 다른 손님들도 차를 마시겠다며 우리가 있는 방으로 오셔서 합석을 했습니다.
연세가 꽤 드신 분들 이셨습니다.
40대 중반부터 60대 초반까지 부산에서 오신 무슨 모임 회원분들이라더군요..

그중에 제 옆에 앉으신 분은 50대 후반의 연세시라며 저에게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분에게서 인생에 대해 편하게 좋은 말씀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말씀이 있었지만 그것을 일일이 적기는 그렇고..
가장 크게 느낀점은 그냥 역시 인생의 선배가 될 만한 분들에게 많은 말씀을 듣는 것이 필요 하구나..
이래서 큰 스승이 필요하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던 사람들은 하나둘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가고 몇분만이 그 방에 주인장과 함께 남아
또다시 차를 나누며 마주 앉았습니다.
마치 무슨 스님들의 선문답 같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기도 했고 그냥 편한 세상 이야기..
또는 재미난 만담 같은 이야기들이 오고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저는 이곳이 왜 "無我亭"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조금씩 조금씩
자연스럽게 알아 가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먼길을 달려 그곳으로 내려간 탓에 무척이나 피곤하고 눈이 스르르 감기기도 했지만
그분들의 말씀이 너무도 좋았기에 억지로 잠을 쫒으며 새벽까지 그분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좋았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단 한가지만은 저에게 아쉽게 느껴지더군요..물론 그 분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씀 하실 수 있으실지도..
그런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신 다시 적기로 하고..

그렇게 어느덧 새벽은 되고 저는 옆의 작은방으로 가서 눈을 부쳤습니다.
그런데 그 옆의 작은방이 너무도 아담하고 포근하더군요..
이불은 금방 빨아 놓아 너무도 깨끗하고 포근하게 느껴졌고 방안에 있는 작은 쪽문의 창호는
저를 마치 그 예전 새신랑이 되어 첫날밤을 지내는 신방에 누워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더군요..

피곤함에 금새 잠이 들었고 얼마 후 누군가 저를 깨우더군요..
아침 밥을 먹을 시간이라더군요..
저 뿐만이 아니라 부산에서 오신 분들도 일어나셔서 아침 밥을 먹기 위해 분주 하더군요..
평소 같으면 도저히 그런 짧은 수면으로는 일어나지 못할 저였지만 워낙 공기가 좋고 느김이 좋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쉽게 일어날수 있게 되더군요..
잠시 마당에서 산 아래를 바라보며 느끼는 신선한 산기운..
무언가 제자신의 생기를 차오르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장께서 된장국과 이름모를 채소를 버무려 차려 낸 시골 밥상에 사람들과 함께 앉았습니다.
멸치 국물까지 들어간 된장국에 밥을 말아 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을 다 먹은 후 설겆이를 하려 했는데 주인장께서 억지로 말리시더군요,,

그렇게 모두들 아침밥을 마친 후 마당에서 몇몇분이 기념 사진을 찍었고 저도 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그동안 한번도 뵈었던 적은 없는 사이였지만
지난밤 단 하루를 함께 했던 인연으로 사람들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친숙해져
서로의 팔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젯밤의 너무도 좋은 말씀에 미련이 남아 연락처를 얻고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곳을 찾으면 또 이렇게 함께 어우러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련을 접었습니다.

얼마후 우리는 청학동의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그곳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오후가 될 때까지 시간을 보낸 후 나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출발을 했습니다.
저는 출발하며 그 "無我亭"이라는 곳에 미련이 남고 도 당연히 그러하기에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그 '無我亭' 주인 어른에게 인사는 하고 떠나야 되지 않아..?"
"아까 나오면서 인사 했쟈나.."
친구는 평소처럼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건 잠시 다녀 밖에 오겠다는거고.."
"그게 인사야.."
저는 이해가 되질 않아 친구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도 그런게 어딨냐? 정식으로 인사는 하고 떠나야지. 밥 잘먹고 잠도 잘잤는데..."
"어차피 지금 '無我亭'에 가봐야 그분은 안계셔.."
"왜? 이곳에 사시는 분 맞쟈나.."
"그곳에 놀러오신 손님들이 불편해 하실까 봐 낮에는 집을 비우셔. 밤에만 집에 계셔.."
저는 다소 놀라면서도 황당했습니다.
"그런게 어딨냐? 그래도 자기가 주인인데..."
"원래 그분이 그래...그 집 이름이 '無我亭'이쟈나.."
더이상 저는 무어라고 질문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는 "無我亭"이라는 의미를 그져 단순히 손님들이 편한 마음으로 편히 쉬다 가라고
그런 이름을 붙여 놓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無我亭"에는 진짜로 주인이 없었습니다..

차를 달려 얼마를 오다가 저의 궁금함을 눈치 챘는지 결국 친구가 "無我亭"에 대해 덧붙혀 몇마디를 더 해주었습니다.
"원래 그곳은 아무나 묵어 가는 곳이야..아무나 와도 재워 주고 밥을 주지..
사례금은 절대 받지 않아..그래서 아는 삶들의 입에서 입으로 통해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 오지..
우리가 가면 이불 빨래 다시 다 할거야..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셔..
그런건 오래 묵으면 억지로라도 몰래 해주지..
늘 찾아오는 사람이 빈방 보다 너무 많아 때를 잘 맞춰 가거나 미리 약속을 하고 가야지..
우리는 운 좋았지..마침 빈방이 있었으니까..
여름에는 방이 없어 마당에 텐트 치고 자는 사람들도 엄청 많아.."
친구의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아 제가 물었습니다.
"그럼 그분은 뭘 먹고 사니?"
"국가 유공자라 연금이 조금 나오고..여기저기 사람들 일을 도와 주는데..본인은 그냥 무료로 도와주는데 남들이 자꾸만 작은 품삯은 주나봐..그분이 기술자 거든..
그리고 나머지는 관광객들이 자신들이 가져온 쌀이랑 부식, 술등을 가지고 와서 그곳에서 놀다가 남기면 모두 두고 가지..
사례를 받지 않으니 다음번에 올때 다른 선물을 몰래 두고 가는 사람도 있어..
그걸로 다른 사람들 밥도 해주고 술도 내주고 하지 뭐..
그럼 얻어 먹은 사람들이 자신들께 남으면 또 두고 가고..그렇게 돌고 도는 거야.."
"원래 뭘 하신 분인데?"
"직장 생활하다가..구조조정 한다니까 남들 괴로워 하는 거 보기 싫다고 그냥 자신이 지원해서 나오셨데...
그분이 서울 생활 할때도 자신의 아파트 문을 항상 열어 두고 다녔다는 거야.. 아무나 와서 묵어가라고..
어떨때는 밤늦게 집에 돌아가면 자기 집에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자고 있어 자기는 밖에 나가 여관에서 주무셨다고 하더라.."
"그럼 '無我亭' 화장실에 있던 뜯지 않은 칫솔과 양말도 모두 손님용이었던거니..?"
"어..그곳에 오신분들 알아서 쓰시라고 자기가 항상 새 것으로 준비 해 두시지..
자기집 손님에게 비싼 건 못해주니 그거라도 하나씩 해주고 싶으시다나..."
".............."

물론 어젯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얼핏 예상은 했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無我亭"에 대한 그림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 졌습니다.

세상에 좋은 일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 희생하는 사람, 정치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
하지만 그렇게 운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세파에 찌든 사람, 도시에 찌든 사람, 세상에 숨막혀 하는 사람에게
잠시라도 편한 휴식과 푸근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도 참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우리 이 세상 속에는 과연 어떤 곳이 "無我亭" 같은 곳일까요.
어찌하면 그런 "無我亭" 같은 곳을 이 세상 속에도 만들 수 있을까요.
결국 그것도 우리의 몫이고 우리의 의지 아닐까요.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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