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말 정재현
전북이 개발과 환경 논쟁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전국의 언론에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고 국무회의에서도 주요 토론주제로 갑론을박이 이루어지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놓고 찬성과 반대측이 전북도내는 물론 나라의 수도인 서울 한복판에서 각각 수천 명이 나서 시위를 벌이는 등 열띤 논란을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핵 폐기장 유치여부를 놓고서도 "유치해야 한다", "아니다"로 맞서 들썩거리고 있다.
전라북도 전역이 개발과 환경론자들의 격전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발론과 환경보존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북도민들은 개발론에 많은 공감대를 지니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새만금 논란이다. 새만금 사업이 착공된 지난 1991년 이후 해마다 찬반 논란을 벌이는데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새만금 논란 종식 도민 총궐기대회에 도민 1만여 명이 참석한 것은 전북도민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날 집회에 동원의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민들의 일정한 동의가 없었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북도민의 개발여론은 수십 년 동안 낙후에서 벗어나 잘먹고 잘 살아보자는 한풀이성이 짙다.
若無湖南 是無國家
도민들은 한반도의 곡창지대로 식량경제가 국가의 경제를 좌우했던 지난 1960년대 이전에는 나라경제를 움직이는 중심지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공무원들이 정권퇴진 운동을 들먹이고 사표투쟁을 선언함은 물론 강현욱 전북 도지사를 비롯한 도의원과 주민 등 41명이 삭발을 하고 임병오 전주시의원이 혈서를 쓴 것이 전북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말이 있었다. '호남이 없었다면 어찌 국가가 있었겠는가'라는 의미이다. 당시 이순신 장군의 이 말은 호남의 자존심을 잘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전북은 60년대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되면서 지역경제가 축소돼 커다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 자존심의 상처를 받아왔다. 따라서 영남위주로 개발정책을 펴온 정부의 지역 불균형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져왔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 탄생시켰던 김대중 정부에 대해 실망이 컸다. 김대중 정부가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해준 게 뭐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선거에서도 절대적으로 지지해 참여정부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실망이 높아가고 있다. 바로 어느 정권 때보다 낙후를 벗고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물거품으로 돌아갈 우려가 크다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참여정부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국정핵심과제로 삼아 주민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반발이 심한 실정이다. 13년 동안이나 계속된 새만금 사업에 대해 확실한 결정을 하지 않고 환경단체의 주장에 끌려 다니고 있어 이러다가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전북발전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는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새만금 매카시즘이 너무 확산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 같은 지적마저도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정서에 파묻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핵 폐기장 유치에 대한 도민들의 태도도 다른 지역에서와는 상당히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극히 위험하면서도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지역개발에는 도움이 된다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핵 폐기장이라도 바라는 주민들
전라북도 안에서 핵 폐기장을 유치해야 한다고 나선 곳이 극렬한 반대 속에서 4곳이나 되고 있는 것만 짐작할 수 있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이하 한수원)이 후보지로 발표한 전국 4곳 가운데 1곳인 고창군 해리면은 물론 부안군 위도면,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와 또 다른 한 곳 등이다.
이곳 주민들은 수백 명씩 유치동의서에 서명해 기자회견을 열어 유치의 필요성을 공식 발표하고 군과 시에 청원을 하는 등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농어촌 경제가 황폐화돼 농어업으로는 삶을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없다며 핵폐기물 관리시설을 유치해 살길을 찾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북 고창 해리면 주민들은 영광 원자력 발전소와 직선거리로 5km도 안되고 있는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 농사를 짓고 있어 안전성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부안 위도와 군산 비안도 주민들은 이미 새만금 사업과 영광 원전으로 어업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유치해야 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전북도민들의 생각은 『새전북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도민 1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양성자 가속기와 핵 폐기장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 원자력 관련시설의 안전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약간 위험하다'와 '매우 위험하다'가 절반에 육박하는 45.3%나 됐다. 또한 방사성 산업이 '위험성이 없는 안전한 산업'(20.2%)이라는 의식보다는 대단히 위험하고 불완전한 산업(46.8%)이라는 생각이 두 배 이상 많았다.
원자력 관련시설의 위험성 인식의 이유에 대해 관리상 실수 가능성이 있고 그 경우 피해가 치명적(52.7%), '원자력 자체가 본래 위험하기 때문(20.9%)', '시설이 부실하기 때문'(16.3%)순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핵폐기물 관리시설 유치에 대해서는 반대가 훨씬 많았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의 핵폐기물 관리시설 유치에 대해서는 반대가 70.3%로 찬성 16.6%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양성자 가속기와 핵 폐기장 연계설치에 대해서도 64.8%가 반대해 찬성하는 18.2% 보다 역시 높았다.
그러나 비 거주지의 설치에 대해서는 반대태도가 상당수준 누그러졌다. 자기가 살지 않고 있는 곳의 핵 폐기장 유치에 대해 반대가 50.7%로 낮아진 반면 찬성 24.5%, 잘 모르겠다는 유보적 의견이 24.7%로 높아졌다. 비거주지의 양성자 가속기와 핵 폐기장 연계 설치에 대해서는 반대가 47.8%, 찬성이 25.3%, 유보의견이 26.9%였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대해서는 긍적과 부정적 인식, 유보적 의견이 균형을 이루어 반신반의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핵 발전소, 양성자 가속기, 핵 폐기장 등 정부의 원자력 정책들을 얼마나 믿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체로 믿을 만하다'와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긍정적 응답이 33.4%였다. 반면 '썩 믿어지지 않는다'와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응답이 34.5%로 약간 높았으며 '그저 그렇다'는 유보적인 응답이 33.1%로 나타났다. 또한 정부와 학자들의 안전성 주장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이 36.1%로 똑같았고 유보적인 응답이 27.8%였다.
버림받은 전라북도
ⓒ 월간 말 정재현
그러나 지역개발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히 높았다. 핵 폐기장이 건설됐을 경우 주민소득 늘어날 전망에 대해 긍정적인 응답이 36.6%로 부정적 응답 31.5% 보다 5.1% 높았다.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52.1%로 부정하는 15.9% 보다 훨씬 높았고 지역경제 활성화 전망도 긍정이 42.0%로 부정 21.0%에 비해 크게 높았다. 첨단기업 유치 전망에 대해서도 긍정적 응답이 39.4%인 반면 부정적 응답은 21.6%에 그쳤다. 이처럼 대표적인 혐오시설에 대해서조차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전북경제가 침체됐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어 보면 전북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혐오시설이라도 유치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전북경제에 대해 비관하고 있으며 도민들도 '한번 잘먹고 잘살아 보자'는 의식이 그 만큼 절박한 상태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전북도민들의 의식은 각종 지표를 보면 짐작이 간다. 인구는 지난 1960년 2백52만1,207명으로 전국의 8.7%를 차지했지만 30년이 지난 1990년에는 2백6만9,378명으로 4.5%로 50만 명 가량이 줄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0년에는 1백88만7,239명으로 2백만 명 선이 무너졌으며 올들어서 한 달에 3천 명 가량이 빠져나가는 등 인구유출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역 내 총생산(GRDP)도 지난 2001년 말 기준으로 17조2,225억 원으로 전국의 3.3%에 불과하다.
광공업 관련지수는 더욱 형편이 없어 전국의 2% 경제에 불과하다는 자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2001년 말 기준으로 종업원 50명 이상의 사업체 수는 2천1백28개로 전국의 2.2%, 월평균 종사자수는 7만3,824명으로 2.8%, 연간 급여액도 1백16조8,549억 원으로 2.5%에 그친다. 국가나 정부의 본부 단위의 공공청사는 대기업 본사나 공공연구기관도 한 곳이 없어 전북은 대한민국에서 버림받은 지역이라는 한탄이 나올만하다.
전주에서 살고 있는 S씨의 자녀 교육사례를 들어보면 전북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알 수 있다. 아들 경우군이 지난해부터 서울의 한 사립대학에 입학해 유학비로 막대한 교육비를 지출하게돼 살림살이가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 공단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S씨는 아들의 유학비로 봉급의 절반 가량을 덜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S씨의 서울유학비 계획표를 보면 연간 2천만 원 가량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등록금 학기당 3백만 원씩 6백만 원, 하숙비 월 40만 원씩 12달 4백80만 원, 토플이나 토익 등 학원비 15만 원씩 1백80만 원, 용돈 40만 원씩 480만 원 등이다. S씨는 교육문제로 회사 사정이 허락하면 수도권으로 이사를 가버릴 생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전북도내에서 S씨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는데 있다. 도내에서 서울 등 수도권으로 진학하는 학생은 4년제 5천여 명, 전문대까지 포함하면 7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교육비로만 줄잡아 1천4백억 원 정도가 수도권으로 유출된다. 그렇다고 수도권 진학을 말릴 처지도 아니다. 수도권 대학을 나와야 취업 등 진로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북은 교육기회 한계-인재유출-교육부실-산업황폐화-경제위축 등 악순환이 계속돼 지역경제의 침체는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전북은 공황 상태"
전북도민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환경보존을 위해 지역을 개발하지 말아야 한다는 환경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이미 개발의 혜택을 본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위해 전북을 희생하라는 또 다른 이기주의에 불과하다는 극단적인 반론을 펴기까지 한다. 전북도민들은 환경보존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핵 폐기장 등 혐오시설을 유치해서라도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신기현 전북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전북주민들은 경제부문에서는 한마디로 공황상태에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이런 상태로까지 오기까지는 역대 정부의 불균형 발전정책에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결자해지로 국가와 정부가 균형발전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펴고 있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경쟁을 통한 선정 정책은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전북도민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특정지역을 집중 개발하더니 이제 와서는 경쟁을 통한 투자로 바꾸는 것은 국민 속이기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전북도민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신뢰 있는 균형발전 정책의 추진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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