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 유출, 그리고 해야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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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iampaper)등록 2003.07.20 18:52
2달 쯤 전 일때문에 인도네시아에 갔다가 돌아오기 전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까운 어른 댁에서 묵고 있는데, 전화를 받고는 몹시 흥분하고 안색이 안 좋은 것이 큰 일이 난 것 같아 보였습니다.

무슨 일이시냐고 여쭈었더니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다가 자카르타 국제학교 (JIS) 에서 시험지 유출 사건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얘기를 들어본 즉 한 둘의 문제가 아니라 그 학년 전체가 연루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대담무쌍한 일을 벌인 것도 놀라웠지만, 해당학년의 한국학생 전체가 연루된 것 같다는 얘기에는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들은 어쩌면 아무 상관도 없는 제게도 머리가 어지러운 일이었습니다.

사건의 내용은 이미 당시에 어느 정도 들었지만, 그뒤 바로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사후 진행과정은 잘 모릅니다. 기사 아이템으로 치자면 특종 쯤 될 이 사건을 당시에는 입에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수치스러운 얘기이기도 하고, 또 아이들과 여러 가족들이 걸려있는 문제라 조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오늘 뉴스를 보다가 제목을 보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여러 게시판을 달구는 쓴소리 들도 읽었습니다. 이 사건 하나가 참 다각적인 파장을 가져왔더군요. 특히 교민들과 인도네시아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에는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카르타에는 여러 국제학교가 있습니다. 이번에 사건이 난 학교는 영어권 학업방식을 사용하는 가장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다니는 곳입니다. 한국 국제학교에도 많은 교민자녀들이 다니고 있습니다만, 영어로 교육을 받게 하려는 부모들의 희망으로 이곳에도 많은 한국학생들이 다니고 있고, 한국인 희망입학자들이 허가인원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정도입니다.

1년 수업비만 1만불이 넘는 이 학교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보낼 때는, 돈이 많아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정말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에게 좀더 다양한 언어 훈련과 교육을 받게 하려고 허리띠 졸라 매며 공부를 시킵니다. 부모된 입장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을 뭐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은 그 동안의 문제점이 곪아 터진 결정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특례입학의 문제점을 지적하셨고,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례입학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학생들의 생활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언론 보도에서 학생들이 한국 입시를 위한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서 학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하는데, 이는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JIS가 여러 과외활동을 많이 시키고 시험도 자주 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원수업 등을 더 듣는다고 해서 시간이 부족한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JIS 학생을 가르치면서 그 아이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았는데, 힘이 들지만 못해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그 정도는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힘들어도 다 해 내고, 나중에 좋은 학교를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번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이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대기는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카르타의 교민 학생들을 보면 한국에서 공부하는 또래들과 비교해 훨씬 느긋하고, 많은 시간을 가지고 지냅니다.

피씨방을 가보거나, 쇼핑몰 혹은 어울리는 생활을 보면 한국에서 그런 식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또래 학생들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있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 정도 공부를 해서는 입시를 보기는 거의 힘들다는 것입니다. 꼭 한국 학생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령 정말 시간이 부족했다고 해도 시험지를 유출해 시험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이번 사건에서 보여지듯 한국 학생들의 떼거리 문화 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같은 국적의 학생들끼리 어울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국제학교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 학생들은 한국학생들끼리만 어울리며, 수업 외에는 한국어를 씁니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그렇더군요. 물론 생활권이 비슷하다보니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교류가 없고 언어 훈련이 되지 않아서야 어떻게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적극 가담자와 단순 가담자의 문제에서 시험지가 거저 주어진 상태에서 보지 않는 것은 어린 나이로 쉽지 않은 일이겠습니다만, 어쩔 수 없이 볼 수 밖에 없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학생들끼리 어울려 다니는 상황에서 시험지 정보를 받지 못한 사람은 소외되어 지내는 경우일 것이며, 다른 친구 모두 보는데 혼자 보지 않겠다고 한다면 소위 '혼자 튀는' 게 되겠지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

세번째로 그들의 오만함과 담대함입니다. 예전에 저희과에도 인도네시아 출신 교민 학생이 있었는데, 의외로 인도네시아 실력이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살았으면 으례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현지에 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교민 자녀들이 생활에 필요한 아주 최소한의 인니어만을 사용하며 인니어를 무시하고 인도네시아를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섬처럼 외국인으로서 외국인으서의 생활만을 고집하며 살아갑니다.

영어,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시대에는 영어는 필수가 될 것이며, 또 다른 외국어와 체험의 경험은 분명히 큰 이득을 미래에 줄 것입니다. 일부러 학교 다니고 연수하는 것 보다 원래 주어진 기회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은 필요를 느끼기 전에는 태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이런 바탕에는 부모님들의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도네시아 생활의 특성때문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차 한대씩 딸려 생활하게 해주면서 귀족처럼 키우는 것도 문제입니다. 좋은 것, 고급스러운 것, 그런 생활을 즐기고 누리면서 으례 어른들이 브로커에게 돈 주어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듯 수위에게 돈 쥐어 주고 대충 매수할 수 있다는 걸 배우고,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대안을 찾아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정확한 일처리를 생활으로 한다는 문화권의 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일을 벌이고도 무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까요? 인도네시아가 아닌 영어권, 예를 들어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의 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을까요? 다른 사람과 똑같이 노력하고 모자라는 실력은 밤을 새워서라도 따라가는 것 밖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지, 수위를 매수하고 시험지를 돌리고, 학원수업으로 학교수업 힘들어 그랬다는 말이 쉽게 나왔을까요?

가장 좋고 편한 것만을 알아서 챙겨주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조금의 힘듬에도 나는 너무 많이 힘들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극복해야 할 노력에 쉽게 편법을 쓰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혹시 문제가 생기면 설마 나를 내팽개치진 않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망가져 가고 제대로 일어선 삶을 살지 못하는 불행한 인간이 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부모님들의 귀한 자식입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인생의 힘겨운 산과 고비를 넘어야 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 자신입니다.

하루끼 소설 중에 노르웨이의 숲에 자살하는 여주인공이 옛 애인과의 일들을 기억하며 그런 말을 합니다. 성장의 시기에 치뤄야 할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결국 그 대가를 치뤄야 했던 거라고. 이번 사건에서 가장 염려되는 의혹은 우리 아이들이 외국에서, 여러 국적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놀라운 일을 벌이면서 거쳤을 판단의 과정에 성장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부모님이나 누군가가 무슨 일이 생기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실행을 할 때는 그런 행동을 뒷받침해줄 만한 것들이 누적되어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많은 시간을 버렸습니다. 그나라 교육스타일 상 우리나라처럼 년차에 맞춰 딱딱 끝내주지 않는 것 때문이기도 했습니다만, 때로는 공부 쫓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게 떨어진 책임, 국가와 약속을 했으니 안 지키면 그 책임을 어찌 회피하겠습니까, 가족들은 어떨 것이며, 그리고 자존심이 용서치 않았습니다.

내놓을 만큼 잘 쓴 논문도 내질 못했고, 오랜 시간 끌기만 하면서 겨우 졸업했지만, 제가 제 자신에게 자랑스러운 것은 어쨌거나 제 힘으로 끝냈다는 것입니다. 제 자신의 머리보다는 남들이 써놓은 글들에 더 많이 의존했고, 제 능력의 한심함과 무식에 정말 혼자 얼굴이 벌개질 때도 많았지만 말입니다.

한번 쉽게 넘어가면 다음 번에 또 문제가 닥칠 때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초라해도 한번을 스스로 해결하면 다음 번에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뿐더러 좀 나아지기도 합니다. 결국 스스로의 힘이 아니면 인생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후회하고 있을 학생들과, 마음 아플 부모님들께 혹시 가슴아픔 하나 더 보태지 않았나 걱정도 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집 아이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게 정말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이젠 이런 일이 없도록 자신의 아이들이나 남의 아이들이나 단속 잘하고, 더 강하고 정신이 건강하게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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