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과 교육

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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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열(y206047)등록 2003.08.16 13:44
어려서부터 패배의식을 심어주면...

영어공용화론을 들고 나와 일부 기득계층의 논리를 대변하던 복거일씨가 최근 <죽은자들을 위한 변호>라는 책을 내 놓았다. 그는 이 책에서 일본의 조선 지배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과연 한국인이 할 소린가.

이 책에서 "친일파 단죄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볼 근거가 없으며 우리 체제의 정당성을 해칠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식민 통치의 본질적 죄악과 폐해에도 불구하고 일제시대 조선인들은 상당히 잘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을 도대체 무슨 의도로 한 소린지 납득이 안 된다.

"일본에 대한 한과 열등감, 민족주의적 편향에서 벗어나 일본과 일제시대를 객관적으로 보자고 촉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런 식자층의 사고는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자기들의 과거를 호도하는 뻔뻔함을 드러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억압의 고통속에 36여 년을 살아온 선조들의 후손이 침략을 옹호하고 합리화한다는 것은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일제나 독재에 빌붙어 호의호식한 소수의 편에 선다고 할 지라도 민족의 후손으로는 절대로 입에 담을 말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침략이 정당화되고 폭압과 수탈이 당연시되어야 한다면 강자만의 득세 논리가 옳다는 말인가. 그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침략자나 정복자들의 살육을 정의라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나치스를 그리워하는 정신병자들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더라도.

복거일씨는 혹시 우리의 암울한 현대사, 군부 독재 시절과 만행의 광주 항쟁시 침묵했던 지식인으로써 부끄러운 양심과 체면을 슬그머니 치레하자는 속내를 드러낸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

지금도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여 침략을 미화시키고 폭압을 합법화하여 고무 찬양하는 교과서를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들은 신사를 참배하며 일제시대의 강국 결의를 속으로 다지고 있음을 우리는 항상 경계 주시해야 한다. 특히 일본은 군사력 증강에 주력하며 날로 보수 우경화하며 군사대국의 욕망을 부활시키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일본과 직접적으로 상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대처는 어떠한지 숙고하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오직 교육을 통한 준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만이 후세의 민족 자존을 위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초등 교과서에는 이런 준비가 소홀한 정도가 아니라 속수무책이며 오히려 패배의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초등 교과서 국어 4학년 2학기 읽기 42쪽에는 '꽃잎으로 쓴 글자'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민족이 일본에 강제로 나라를 빼앗겼던 시대의 모습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교과서가 아닌 청소년에게 읽도록 하는 문예물이라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가슴 아픈 우리네 역사를 감내하며 새겨보게 하는 글이다.

교과서는 왜 이 이야기를 배우도록 가르치고 있는가.
그것은 단연코 역사의 교훈을 깨닫게 하려는 뜻에서다. 역사를 통해 민족혼을 일깨우는 가르침은 그것이 교과서로 국민 모두에게 배우도록 할 때는 무궁토록 나라의 번영 발전을 추구하는 지혜와 맥이 닿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그 점에 미흡한 편이며 오히려 침략자에게 순종하는 의식을 심어주고, 민족 정신에 패배의식을 뿌리내리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나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책으로 읽거나 영상으로 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문점이 갖는다. 유태인들은 나치스의 만행에 이웃이 죽어 가는 것을 보았고 자신도 죽어갈 것을 알았는데, 왜 그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반항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나치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있었지만 그들은 소수였다.

유태인은 무리를 이루고 집단으로 수용되어 있었으니 죽기로 싸우면 가스실에 끌려가지 않았을 것 아닌가.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수용소의 모든 유태인이 한 맘, 한 몸으로 뭉쳐 대항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600만이 떼죽음을 당하면서도 그런 몸부림이 없었다는 사실이 나로선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꽃잎으로 쓴 글자' 를 읽으면서 나의 뇌리엔 이렇다 할 저항 없이 죽어간 600만 유태인의 비극이 자꾸만 떠오른 것이다.

'자유와 독립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한민족 자존의 항거와 선민의식으로 기도만을 되뇌이며 묵묵히 죽어 가는 유태인의 순응 중에서 과연 어느 것이 더 지혜인가.

이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부강도 국민의 땀으로 이루어지며 자존도 민족의 의지로 지켜지는 것이다. 복거일씨처럼 한민족 모두가 침략을 합리화시키거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지금 이 땅에 온전히 살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꽃잎으로 쓴 글자' 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질문의 내용을 상기해 보아도 민족 자존의 활로를 모색하거나 준비하는 내용은 눈에 들지 않는다.

1. 다나카 선생이 재미있는 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입니까?
2. 승우네 반 아이들의 가슴에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 생겨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3. 매를 맞고 돌아온 승우를 부모님께서는 어떻게 대하여 주셨습니까?
4. 승우가 꽃잎으로 쓴 글자가 놓여진 소반 앞에 무릎을 꿇은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은 침략자의 압제 같은 부당한 조건에 순차적으로 적응하는 패배의식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가?
이야기는 아름답게 읽도록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망하게 된 역사적 사실에 질문을 맞추었다면 교육상으로는 그나마 가르침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다. 다시는 우리가 일본의 속국이 되지 않는 민족적 지혜를 어려서부터 갖추는 교육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10년, 20년, 아니 50년 이후 같은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교과서의 가르침이라면 오늘의 현실이 내일의 전망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를 우리 아이들의 가슴마다에 새기도록 하는 내용이라야 비로소 백년 대계의 교육이 되지 않겠는가.

이러한 염려는 초등 교과서 5학년 2학기 <연변에 살고 있는 동포 친구에게>의 가르침에서는 확실한 잘못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앞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이 글은 7차 교육 과정의 초등 교과서 오류를 지적하여 개정을 촉구하는 <엄마, 교과서가 잘못됐어요> 23회 내용입니다.
22회까지의 내용은 다음 카페 -영재글짓기 위대한 생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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