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다는 이제 완전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 에바다 농아원장 퇴임에 즈음한 성명서 -

검토 완료

김용한(pcdskorea)등록 2003.08.31 18:06
이제부터 에바다는 완전 정상화의 길로 들었습니다.

- 에바다 농아원장직무대행 3개월을 마치며 -

안녕하세요? 김용한입니다.

먼저 지난 3개월 동안 제가 농아원장직무대행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사회복지와 장애인복지 업무에 문외한이던
제가 잠시나마 농아원장 기회를 가짐으로써, 제 시야가 무한대로 넓어진 것
같습니다. 원생들과 직원들, 그리고 그동안 에바다 비리재단 퇴진과 정상화를
위해 함께 싸워 오신 다른 동지들에게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하늘이 내린
정말 소중한 기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이런 기회를 베풀어주신 에바다복지회 이사회와 지난 7년 넘게 함께 해온
에바다 공대위와 연대회의, 해아래집 식구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농아원생들에게도 감사합니다. 한 동안은 이 아이들이 눈에 밟힐 것
같습니다. 처음에 ‘나가라. 나쁜 원장 필요 없다.’고 손짓하더니 며칠 지나서
상추쌈을 싸 제 입에 넣어주던 순희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비리재단의
회유와 협박, 납치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의지를 굳게 가진 아이입니다. 어른들이
잘만 도와주면 크게 훌륭하게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밥 먹을 때, 꼬박꼬박 물을
떠다주고, 누가 나쁜 짓을 하는지 수시로 고자질하는 종필이도 못 잊습니다.
연예인 최진실 닮아서 예쁘다고 칭찬해 주면 수줍어하면서도 정신없이 좋아하는
진실이, 취업하러 갔다가 여자 기숙사가 없다며 그냥 왔는데, 몇 달간 밖에 나가
있던 직원이 어제 농아원에 들어와 진실이한테 뭔 소리를 했는지, 말도 않고
울기만 했습니다. 걱정입니다. 오산성심중학교 다니기 싫어서 땡땡이만 치다가
개학날도 몰라 엉뚱한 날 학교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온 뒤, 개학날 다시 갔다
오더니, 교내 국기그리기 최우수상을 타온 성민이, 애 어른 할 것없이 “응”
“응” 하며 반말만 늘어놓고, 툭하면 두 손으로 아무나 “뿅뿅” 총질을 해대는,
정말 재밌는 놈입니다. 작년에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받고 올해는 언어치료를 받고
있는 애란이는 언어치료만 계속 잘 받으면, 입말을 잘 알아듣고 잘 할 것 같은데,
벌써 몇 번째 납치 대상이 되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역시 인공와우 수술을
했지만, 귀에 반드시 꽂고 다니게 돼 있는 어음처리기를 죽어도 안 차려고 하는
고집불통 효준이는 수화를 전혀 모르는 제게 달려와, 정말 빠르게 수화를 해
대는데, 제가 비록 내용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손놀림이나 표정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효준이만 보면 ‘얼른 수화를 배워서 이 놈과 막
떠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큰 수술을 받아 건강이 말이 아닌
동국이는 요즘 며칠 학교에 잘 나가고 있습니다. 성진이랑 미정이는 다른 시설로
전원 의뢰를 해 놓았는데, 아직 연락은 없고, 특히 성진이는 초등학교 입학도
못했고, 미정이는 툭하면 넘어져 다치는데, 이번에 한 깁스를 풀면 또 언제
깁스할 일 벌어질지 모릅니다. 장기입퇴원을 거듭하고 있는 세윤이는 퇴원한 지
한 달 만에 어제 다시 입원했습니다. 가동이 아저씨는 열심히 일 다니며 돈을
벌고 있긴 한데, 독립생활이 불가능해 여전히 농아원에 있습니다. 저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때로는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로는 엄청 사랑스러운 이 아이들과 함께 오늘 저녁 농아원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기로 했습니다.

엊그제 감동적인 송별식을 해 주신 직원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선물로 주신 고급
티셔츠도 고맙고, 유익종의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은 사람’이 담긴 CD
선물도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구재단 직원’ ‘비리재단
직원’이라는 오명을 쓰고, 처음에는 저를 극렬하게 반대하셨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막상 겪어보고 나서, “이런 원장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원장님 계속 하시면 안 되나요?”, “원장님 사랑해요” 하는 평을 하셨더군요.
물론 평소에도 여러분이 주시는 정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지만, 그런 내용이 실린
교차로저널 기사를 출근 버스 안에서 읽으며,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습니다.
이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원장 3개월 만에 이런 평가를 받은 분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이젠 앞으로도
가끔 들르겠습니다.

우리 농아원 식구들한테 이런 과분한 평가를 받는 대신, 그 동안 함께 하던
분들한테는 오히려 몇 가지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원칙과 명분만으로
살아온 김용한이가 원장이 되더니 왜 저렇게 온건파가 됐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변절한 것이 아니냐고 우려했던 분도 계셨던 모양입니다. 저를 염려해
주셨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역사에서 변절자로 낙인찍힐까 봐, 저를
위해서라도, 제가 올바른 생각을 끝까지 바꾸지 말고, 어떤 불의의 세력과도
결탁하지 말고, 앞만 보고 가기를 충심으로 바라시는 분들이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왜 함께 하던 분들과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까지도 농아원 직원들을
대변하게 되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곧 이해했습니다. 강한 사람들한테는
한없이 강하려고 노력하지만, 약한 사람한테는 한없이 약한 것이 저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순진한 온정주의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막말을 하며
전혀 굴하지 않고 원칙 지키며, 퇴진을 요구하는 대상은, 비리의 주범들과 그들의
불의에 결탁했거나 눈을 감고 봐주는 평택시와 경기도, 중앙 정부의 공무원들,
비리 세력과 한통속이 돼 있는 일부 경찰들과 정치꾼들이지, 농아원 직원들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직원들이나 폭력배 하수인들은 기껏해야 비리 주범들의
지시에 따라 저를 농아원 밖으로 내쫓을 정도밖에는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쫓겨나서라도 그들을 해고할 수 있는 농아원장입니다. 그래서 자는
이런 약자들을 이용해서 치부하던 자들과 고리만 끊어주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분들이 농아원 개혁의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그 고리를 완전히 끊어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고리가 다시 이어져, 현 이사회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비리 세력의 핵심 가운데 한 사람이 농아원
직원들에게 몇 차례 전화를 걸어, “공대위에 굴복한 비굴한 ×들”이라고 욕을
퍼부었지만, 요즘은 직원들이 그런 전화를 받고 갈등하며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비리 세력과 다시 결탁하는 것이 자신에게 엄청난 손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리 세력들은 몇몇 농아원생들을 빼돌려서 농아원 앞의 한 아파트와, 용인시
구성읍에 있는 한 아파트에 분산시켜 숨겨 둔 채,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정확한 주소도 확보했습니다. 그들은 어린 학생들조차 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교육의 의무조차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인공달팽이관 수술 받은
아이들은 언어치료도 못 받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틈만 있으면 에바다
농아원생들을 더 빼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납치나 유괴를 통해 빼돌리려는
대상은 부모를 비롯해서 연고가 있는 분들이 있더라도, 적극 나서지는 못하는
아이들입니다. 부모나 연고인이 수화나 글을 잘 모르거나, 집안에 농아인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거나, 농아인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부족하거나,
아무 연고도 없는 아이들 가운데, 청각장애아들만 골라서 납치와 유괴 형식으로
빼돌리고 있습니다. 예전에 자기들이 치부의 수단으로 삼기 위해 평택시 일부
공무원들과 짜고 데려다 놓은 정신지체 중복장애아들은 납치 대상으로조차 삼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아이들을 방치해 두기 위해서였습니다. 보육사
노릇이라도 해 줄 시간과 생각이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더군요. 두 아파트에
아이들끼리 방치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손길이 잠시라도
떨어지면 큰일 나는 정신지체아들을 데려가면 어떻게 할 도리가 있겠습니까?

저들이 아이들을 빼돌리는 까닭은 두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는 현재 외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들어오고 있는 후원금을 계속해서 받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아이들을 이용해서 농아인 시설을 새로 내는 것일 겁니다. 그 동안
결탁돼 있던 공무원들을 계속 부추기고 협박하겠죠. 그래서 처음에는 비인가
시설로 운영하다가 좀 지나서, 세인의 관심이 사라지면 그 아이들을 “수용”하는
농아인 시설을 정식으로 인가 받으려 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지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정신지체아들까지도, 납치든, 유괴든 강제로 끌어다 숫자를
늘이려 들 것이 분명합니다. 저들의 이런 음모는 반드시 저지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제 9월 1일, 내일부터는 사회복지 전문가, 특히 농아인들을 위한 “구화”의
전문가인 에바다학교 교장 출신 김지원 선생님께서 에바다농아원장으로
근무하시게 됐습니다. 저의 ‘해결사’ 역할은 끝났고, 이제 전문가가 이끌어야
할 때가 됐다는 저의 사임 의사를 받아들인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공개채용을
통해 선임되신 분이십니다. 에바다학교에 처음 오셨을 때, 비리세력의 하수인
폭력배들에게 엄청 많이 맞기도 하시고, 쫓겨나기도 많이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무슨 잘못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비리재단에서 제일 싫어하는
권오일 선생님 하수인이라는 “죄목” 때문이었던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김지원 원장님은 성실하게 에바다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신
분이기도 하지만, 농아들이 수화가 아니라 입으로 직접 말을 하고 귀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언어치료의 대가이시기도 합니다. 우리 에바다농아원에서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받고 아주대학병원으로 언어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는
효준이랑 애란이의 언어치료를 직접 맡으면, 올해 안에 입말로 웬만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가 대단하십니다. 며칠
전에는 후임 원장 내정되신 분 자격으로 직원회의에 참석하셔서, 직원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직원들도 적극 협조하기로 약속했고, 김지원
원장님도 아무런 편견 없이 원생들과 직원들을 골고루 사랑하며 아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에바다복지회의 이사로서 남은 임기는 성실하게 채우려고 합니다. 1년 정도
남은 이사의 임기가 끝나면, 저는 임기를 연장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너무 힘이
들기 때문도 아니고, 시설 문제가 하찮게 생각돼서도 아니고, 싫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이제 시설을 충분히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는 틀이 완성된 만큼, 저는
저 나름대로 지금까지 해 오던 ‘운동과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에바다에는 저 같이 “운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복지나 장애인 복지계의
양심적인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원생과 직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재력도 있고, 후원 동원 능력도 많은 분들을 이사로
영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그 동안 제게 손을 내미는 거지들에게 잔돈푼이라도 줘 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장애인 시설에 후원금을 내 본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돈이
없기도 하지만, 꼭 그런 까닭만은 아니었습니다. 저 나름대로 그런 일은 나라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거지와 장애인을 마음 순수한
여학생들이나, 데이트하는 남녀들이 책임져야 하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에
거지는 하나도 없다고 믿는 부유층 자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더 그런
생각을 굳히기도 했습니다. 내가 내는 돈이 거지나 장애인에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 뒤에서 그들을 이용해 먹고 사는 사지 멀쩡한 도둑놈들에게
들어간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생각을 바꿨습니다. 국가가 안 하면
어쩔 건데? 국가가 하긴 하는데 좀 모자라게 하면 어쩔 건데? 하는 물음을 저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현재 국가는 안 하거나
모자라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입미다만,
아직은 그렇지 않으니까, 저는 국가가 그런 일을 하도록 계속 ‘운동과 정치’를
하는 동시에, 그 때까지는 저 자신도 약간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바뀐 저의 생각에 동의해 주시는 분들은 저와 함께
에바다농아원의 후원인이 돼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후원금이
개인의 뒷주머니로 들어갈 가능성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이제야말로 에바다에 희망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김지원 원장님과 함께 에바다
농아원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직원들 모두에게는
희망과 꿈이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평택 지역 사회와 우리나라에는 시설비리
척결과 부정부패 일소의 모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여러분 모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03년 8월 31일

에바다농아원장 마지막날

농아원 사무실에서

에바다농아원장 직무대행 김용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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