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안국동의 '아름다운 가게'에서 헌책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이책을 발견하게 됐다. 손도 닿기 어려운 책꽂이 맨위편에 꽂혀있는 책. 김우중 전 대우회장이 쓴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1000원짜리 한장으로 이책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였다는 이 책이 처음 나올 당시(1989년),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때문에 제목만 들어봤지 읽어보지는 못했다. 1998년 12월 20일에 140쇄를 했다는 걸 보면 아마도 이 책은 140번째 인쇄를 한 책이었나 보다. 그 이후에도 또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많이 팔렸다는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책만 봐서는' 당당하고 바른 기업인 김우중
샐러리맨의 우상, 대우신화의 상징…. 김우중을 둘러싼 수식어는 너무나 다양하다. 그러나 대우가 무너진 이후, 김우중 체포결사대가 조직되고 그의 저서제목을 비꼰 '세계는 넓고 숨을 곳은 많다'는 조롱이 가득한 말까지. 그가 한국 사회와 경제에서 커다란 공과(功過)를 남긴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1936년생인 그가 이책을 썼을 때는 53세 때이다. '내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이 썼을 때 사회에선 얼마나 큰 화제가 됐을지 상상이 됐다.
적어도 이책을 통해 읽어본 김우중은 '당당하고 바른' 기업인이다. 기업인으로서 조국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과 윤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과연 실제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책만 읽어봐서는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지금은 쓰러져버린 대우의 전(前)총수'가 아닌 재계2위 총수의 책이라고 봤다면 이책을 읽은 느낌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김우중 VS 정주영
김우중은 도전적이다. 어떻게보면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고(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비하면 그는 쉽게 성공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고 정 명예회장이 92년 대선을 앞두고 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책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때 읽었던 그 책에는 너무나 드라마같은 기업인 정주영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후 자서전 형식으로 출간된 <이땅에 태어나서>는 오히려 인간 정주영의 잔잔함이 느껴졌었다.
물론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와는 차이가 있다. 이책은 자서전이라기 보다는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보낸 메시지라고 보는 편이 맞기 때문이다. 정주영과 김우중 모두 한국 경제가 나은 당대의 스타였다. 현대와 대우, 두 기업 모두 다 오늘날 이렇게 어렵게 될줄이야, 10년전만 해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세계경영, 대우 그리고 김우중
▲ 김우중은 제2의 징키스칸을 꿈꾸었는가? 아니면 정권에 비자금이나 대며 살아남은 기업인인가?
'대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세계경영이다. 이책이 나올 당시엔 대우의 세계경영이 그 밑그림을 한참 그리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대우의 세계경영 TV광고를 보면서 가슴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 '대우는 뭔가 다른 기업'이라고 느꼈던 때가 있었다.
대우가 무너진 게 한국경제의 커다란 짐이 되긴 했지만 오히려 잘 됐다고 보는 의견도 많다. 언제까지나 부실한 구조를 놔둘수만은 없었다는 것이다. 'IMF경제위기 이후,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맬 때도 대우는 지나치게 자신들의 모델만 고수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1위 상품을 만들지 못한 채 무한확장만 하려던 대우신화는 결국 막을 내리고 말았다.
과연 김우중은 어떤 인물일까? 김우중을 두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경영을 했더라면 GE의 전(前) 최고경영자 젝웰치 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됐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가하면 김우중 본인보다는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대우를 망쳐놨다는 의견도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과연 그는 세계경영을 통해 제2의 징기스칸을 꿈꾸었을까? 아니면 정권에 비자금이나 대며 살아남은 기업인일까?
존경받는 기업인의 시대는 꿈이었을까?
나의 더 큰 꿈은 따로 있다. 존경받는 기업인으로서 김우중이라는 이름이 기억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꿈이다. 나는 부자라거나 돈을 번 사람이라는 정도의 칭찬을 듣고 싶지가 않다. 우리 나라의 기업인들은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해왔다. 존경은 고사하고 오히려 지탄과 경원의 대상이 되어왔던 게 사실이다... 나는 부자로서가 아니라 훌륭한 전문 경영인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있으며, 나의 마지막 꿈은 기업인도 존경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 꿈의 실현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뛰고있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中에서)
14년전, 기업인도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패기 넘치던 김우중은 지금 어디에 있나? 대우와 김우중, 한국경제를 생각하면 오늘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 기업은 쓰러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무너져버린 세계경영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져 온다.
|
|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