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는 사기치지 말자

100만원을 사기당한 것보다 더 큰, 22살 마음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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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진(imijin)등록 2003.09.15 17:20
며칠전 친구에게 뉴스에나 나올 법한 참 억울한 사연을 들었다.

22살 대한민국 남자. 그 아이는 공고를 졸업해서 방위산업체에 취업해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방위산업체 기간이 끝날 때까지 모은 돈은 기특하게도 부모님을 다 드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그냥 좀 알던 사이이던 친구에게 얼마전 졸업후 첨으로 전화가 왔다고 한다. 표현을 빌리자면 조금은 불량스런 아이였다고 하는 그 친구는 전화하자마자 엉엉 울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다.

그 사연인 즉, 어머니가 자궁암에 걸리셔서 수술비 300만원이 급히 필요한데 구할 수가 없어서 전화를 했다 한다.

난 그 대목까지 들은 순간 '아! 사기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전혀 연락없던 사이, 갑자기 걸려온 전화, 그리고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 게다가 수술비라니 너무 뻔하지 않은가? 너무나 뻔하게 분명히 그려지는 그림.

난 "그래서 빌려줬어? 돌려받았어?" 하고 바로 묻고 싶었지만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한참을 듣다 던진 "그걸 믿었어?" 란 나의 질문에 그 아이는 좀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얼마나 급했으면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던 자기에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만약 자신의 어머니가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가슴이 얼마나 아플까란 생각이 들었다 한다. 그래서 설마 그런 거짓말을 할까 싶어서 그 친구를 믿었다 한다. 마침 그 전화가 온 이틀 후가 월급날이어서 자신의 월급 105만원 중 100만원을 그날 바로 입금시켜주었단다.

듣고 있자니 난 정말 화가 나서 먹던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돈을 잘 받았다며 덕분에 수술 잘 끝났다고 정말 고맙다고 자신도 너처럼 군대 안가고 방위산업체 취직하니까 금방 갚겠다고 했단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안부가 궁금해서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봤더니 받지 않더라고 말했다.

난 생각했다.
'당연하지. 첨부터 사기치려고 맘 먹었구만. 정말 당연한 레퍼토리잖아.'

그리고 며칠이 지나 다시 전화를 해봤더니 어떤 여자가 받길래 "00이 전화 아니에요?" 하고 말하자 여동생이란 그 여자는 오빠는 3주전에 군대를 갔다고 말했단다.

그때서야 뭔가 이상하단 생각에 동창모임이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봤더니 동창.. 후배.. 한두명이 아닌 사람들이 모두 그런 식으로 적게는 몇만원.. 몇십만원을 그 애에게 빌려주었다 한다.

뉴스에서 많이 보던 사건...비슷한 사기유형..그리고 보고 들은 해결책들..이 떠올랐다.중간중간 화를 내며 참견을 하던 나는 전후 사정을 대충 듣고 난 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애는 분명 카드빚을 천만원이 넘게 지고 나서 도저히 방법이 없으니까 아예 맘을 먹고서 사기를 친거다.니가 착한 걸 아니까 너한테 다른사람보다 많은 100만원이란 가장 큰 액수를 부른거고, 그렇게 돈을 다 빌려서 카드값을 대충 막고
군대를 가버린거다.. 그렇게 도망쳐 버린거다. 혹시.. 만약 군대를 안갔다면 그 동생까지 짜고 거짓말을 하는거다.

어떻게 몇년간 연락도 없던 사람을 뭘 믿고 큰돈을 빌려주냐. 꼭 받아야 한다. 네가 어떻게 벌고 모은 돈인데.. 먼저 그 동생한테 다시 전화를 해서 분위기를 봐서 주소를 알려줄 것 같으면 사실을 말하고, 주소를 안가르쳐줄 것 같으면 택배나 다른 핑계를 대며 주소를 알아내서 먼저 그 집을 찾아가서 부모님께 모든 사실을 알려라 그래서 돈을 받아내라.

한꺼번에 사기당한 사람들이 모두가면 액수가 큰지라 못 받을 확률이 많으니 먼저 그렇게 혼자 조용히 해결해 본 다음 그래도 해결이 안되면 그 때 돈을 빌려준 애들을 모아서 경찰서에 신고해라

"참.. 너 돈 보내준 지로 영수증이나.. 통장내역있니?"
"아니, 걔 계좌번호가 아니라 딴사람걸로 부쳐줬어.."
"야... 정말 사기치려고 맘먹었네.. 자기 통장 하나없는 사람이 어딨고 뭐하러 그렇게 중요한 돈을 다른 사람 계좌로 넣어달라구 하니.. 그거 은행가서 얘기하면 계좌추적하니까 그렇게 한거야. 진짜 나쁜 애네"

이렇게 분해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나를 그 애는 아무말 없이 참 슬픈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그 돈보다 그런 거짓말로 사람을 속였다는 게 그것도 친구란 이름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게 슬픈 것 같았다. 그리고 부모님께 아들에 대한 실망을 안겨드린다는 게 엄두가 안나는 것 같았다.

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만약 지금 네가 그 애 부모님이 속상하실까봐 그냥 덮어두고 넘어간다면 그 애는 아마 그런 짓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으니 다음에도 또 그럴거라고.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는 아들이 점점 망가져가는 것도 모를 거라고 말했다.

네가 그런 사실을 집에 알려서 부모님이 속상하신 건 잠깐이지만 그냥 두면 걔 인생을 망치는 거라고 말했다. 속세에 찌들고 세상의 때를 알만큼 안 나이도 아니고...22살이란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한다는 건 정말 큰 일이라고...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 한 후 난 이상하게도 참 그 아이가 예뻐보였다. 그런 사기당하고 얼마나 속상해했을까 하면 정말 이..바보 싶으면서도 그럴 수 있다는 게..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그런 맑은 정신을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게 참 예뻐 보였다.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텐데...난 그 얘기의 시작만 듣고도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 넣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바로 No라는 대답이 바로 나왔을텐데..

어쩜 그 아이의 맘 저속에선 100% 진실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속아준게 아닐까... 믿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몇년동안 전화통화 한번도,얼굴 한번도 보지 않은 사이, 문득 걸려온 전화, 서럽게 우는 목소리, 드라마 같은 긴박한 사연, 딴 사람의 계좌로 넣어달라는 부탁... 이런 것을 다 무시하고 믿음 하나로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돈을 빌려 사라진 그 친구.. 친구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도 첨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텐데...누구나 정말 급박한 상황이 오면 주변 사람을 이용할 수 있는 걸까?

뉴스며 신문에 매일 나오는 끔찍스런 사건, 사고들... 그래서 살인, 자살, 강간도 왠만큼 잔인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이목조차 끌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깟 100만원쯤이야..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맑은 눈을 지닌 그 친구는 그 100만원이란 돈에 순수한 마음까지 같이 담아주었기에 그 돈은 하룻밤 화려한 술값으로 쓰는 몇 백만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죄를 지은 것은 사람인데 그 사람이 지은 죄가 무슨 탓이 있단 말인가?

제발 돈에는 사기쳐도 마음에는 사기치지 말자. 제발!!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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