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묘를 다녀와서..

사육신묘를 다녀온 감회.. 사육신은 어지러운 한국의 세태에 대해 무어라 말할까..

검토 완료

이충현(intellect)등록 2003.09.19 09:10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목요일..

올해는 왜이렇게도 비가 자주 내리는 건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우산을 적시고..
육교위에 엎드려 구걸을 하는 아저씨의 낡은 정장도 적시고..
도로와, 보도와, 건물외벽과, 나무와...

어쩌면 우리의 마음들까지도... 비가 적시는 그런 오후인것 같다..
사육신묘에 갔다.. "묘" 라는 명칭이 도시감각에 조금 어울리지 않았는지.. 사육신묘가 이미 오래전에.. 공원으로 변해있었다..

일종의 리모델링이라면 리모델링이랄까?
어렸던 시절에 한번 왔었던 기억이 있는데...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나가버려서 그런지..
아니면 주위에 많은 고층빌딩의 장엄한 광경과 시끌벅적하게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리때문인지..
사육신 공원은 적막한 감정마저 들게했다..

조용하게.. 새한마리의 지저귐 없이.. 사람도 없고..
자기도취적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내가 비탈길을 올라가면서 깨끗한 나뭇잎과 물줄기를 밟은것으로 보아..
어쩌면 사육신들은 내가 오는것을 미리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처음 들어가는 문의 이름이 "불이문(不二門)" 이었다.. 너털웃음과 묘한 카리스마가 동시에 느껴졌다..


"두명의 임금은 섬길 수 없다.. 어서 나를 죽여라!" 라고 외치는

성삼문의 목소리가 빗줄기를 타고 들려오는 것 같았다..
불사이군(不思二君)의 정신..

그렇다.. 원래 사람이 그렇지 않은가..
자신이 반드시 옳고 이것만이 진리라고 생각된다면..

(그것도 조금 도덕적인 수양과 인격이 있는경우엔) 절대로 굽힐 수 없는.. 그런 대나무보다도 더 곧은 의지가 있지 않은가...


1866년 제네럴 셔먼호를 타고 이방인의 땅 한국에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필사본 성경을 들고 왔던 토머스 선교사도..


내 목을 자를지언정 내 상투는 결코 자를 수 없다고 끝까지 단발령을 거부한 조선말기의 유학자들도..


중세시절.. 마녀사냥으로 몰려 명분없는 죽음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그 당시의 형틀의 죄인 아닌 죄인들도..


저마다의 절대적인 진리와 정신을 올곧개 굽히지 않는 그 정신이 있었기에... 지금도 이렇게 읽히고 기념되는 것이 아닐까..


사육신은 세조 2년(1456)때 영월로 쫓겨간 단종의 복위운동을 하다가 세조에게 발각되어 순절한 여섯 신하의 묘이다.


원래는 박팽년, 유응부, 이개, 성삼문의 묘만있었으나 1977∼1978년 사육신묘역 정화공사를 할 때 하위지와 유성원의 가묘를 만들어 6신의 묘를 모두 갖추었고... 역사는 강자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육신과 상관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확실히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그 옛날 5.18군사쿠데타의 주역중의 한사람이자 박대통령을 저격했던 김재규의 조상이라 불리우는 백촌 김문기(金文基)의 묘도 이 사육신공원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공원을 올라가는 고개를 아차고개라고 부른다 한다.. 전설에 따르면, 세조때 영등포 이남에 살던 어떤 선비가 육신(사육신)을
처형한다는 소식에 이를 막고 민심을 대변한다며 도성을 향해 말을 몰다 이 고개에 이르렀을 때다. 육신이 이미 노들나무 건너 맞은편 새남터에서 처형되었다는 비보에 접하고, `아차! 늦었구나!’하고
탄식한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새남터는 조선말기 천주교신자들이 집단으로 처형되었던 장소로도 잘 알려져있다..)


여튼.. 불이문 앞에 잠시서서.. 고개를 숙여보았다.. 내가 그들의 절개와 의지를 얼마나 느낄 수 있겠는가..
반목과 대립, 불안과 갈등으로 서로 다투고 싸우는 이시대에.. 사육신의 절개는 고귀하기까지 하다..

의절사.. 들어가기 한 4미터정도부터 그윽한 향냄새가 났다.. 비오는 소리에 춤을추듯... 향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안에는 들어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냥 밖에 서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보통 이런 건물들에는 무늬가 있다든지 단청이 있다든지.. 뭐 그런 것들도 있을법 한데.. 달랑 웨패 7개가 사당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도 검은색바탕에 검은글씨로 무언가 새겨져 있는것 같았지만 그 글씨를 읽을 수는 없었다.. 그저... "아.. 이곳에 영령들의 위패를 모셔놓았구나.."는 생각밖에는 특별하게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었다..

소설책으로 기억을 한다.. 그 소설의 이름이 "수양대군"이라는 책인데 그 책에서 사육신들이 처형되는 광경을 약간 픽션적 요소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광경 아니... 연상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겠다.. 그 연상이.. 위패와 나의 눈과 부딫히면서 빛처럼 지나갔다.. 나의 감상의 수준이 그 이상 어떤 것을 바라겠는가..

"고이 잠드소서.."

사당을 나와 올라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공원으로 잘 꾸며놓았다.. 작은 언덕이라서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덕배기를 올라가니 동작구 시가지와 여의도가 어슴프례 보이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수산시장에서의 냄새... 비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나뭇잎의 입가에 맺힌 물까지도... 아무말없이.. 사육신들은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잠들었지만..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아마 추측이겠거니와.. 요즘처럼 힘들고 햐결책이 보이지 않고... 대립과 이기와 밥그릇 싸움으로만 일관하는 사람들에게.. 옳은 것에 대해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목숨까지 버려가며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사육신들...

분명 그들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무어라고 말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귀가 두꺼워 듣기 어렵다는 것일뿐..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면서.. 내마음도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아무 말없이 오늘도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울 중앙 한복판에 고이 잠들어 있는 사육신의 무덤들...

그들의 절개와 의지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분명 각성과 반성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줄 믿는다.. 나중에.. 다시 사육신공원에 들러봐야 겠다..


<사육신공원 찾아가는 법>

서울 지하철 1호선 (국철) 노량진역에서 하차...
한강변 다리쪽으로 계속 걷다보면.. 바로 입구가 보임..
현재 지하철공사와 건물신축으로 인해 주변이 시끌벅적하고..
수능을 준비하는 학원가가 밀집하여.. 공원안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세상의 소리가 어슴푸례 들린다..
그러나... 오늘처럼 인기척이 없는 그곳에 가는 것은.. 그리 많지 않는 기회가 아닐까 한다..

버스편: 101, 107, 111, 128, 140, 142, 142-1, 143, 152-1, 21, 211, 212, 212-1, 25, 25-1, 25-3, 26, 26-2, 26-3, 5-1, 52, 55-2, 62, 62-1, 725, 76, 85, 95, 98번 버스..
사육신공원앞 하차.. 도보로 1분거리..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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