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

재래시장에서 발견하는 더불어 함께하는 삶

검토 완료

오창주(mayll)등록 2003.09.20 10:31
몇 개월간 근무했던 논술 학원을 그만두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부 졸업 예정자로, 그리고 취업의 길이 그리 투명하지 않은 철학 전공자로서, 독서토론 논술학원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머리 속에서 그려 놓았던 청사진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법이 없더군요.

아직은 순수한 사회 초년생이, 살벌한 사교육 공간에서 실망하고, 상처받은 부분도 많았지만, 배운 것도 많습니다. 토론과 논술이라는 민주적 소통방법, 그리고 맑은 눈의 아이들과의 만남은 아직도 미련이 남습니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이제 더 구체적으로 앞으로의 내 삶을 계획해 보는 거다라는 다짐을 하며 학원 문을 뒤로 합니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일터에서 나름대로 많이 읽고, 듣고,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었지요. 그러면서 다시 확인한 진리가 있습니다. '대안은 그리고 희망은 역시 <더불어, 함께> 구나'라는 것이지요.


오늘은 저한테 삐져서 뽀르퉁해 있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오래간만에 여자 친구의 자취집이 있는 동네로 향했습니다. 여자 친구의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며 동네를 걸어 다녔습니다. 가까운 곳에 재래 시장이 있더군요. 참 오래간만에 시장 구경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아파트 단지라서 재래 시장이 없지요. 할인마트에 익숙해져 있던 제게 오래간만에 접하는 재래 시장의 광경은 무척 새롭더군요. 어렸을 적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자주 갔었는데, 그 때의 모습들이 크게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에 무척 놀랐습니다.

생선 가게에서 비린내와 함께 나는 모기향 냄새. 막걸리에 부침개 파는 가게가 쭈욱 늘어서 있고, 식어서 맛없어 보이는 곱창에 머리고기. 바닥에 앉아 돋보기 쓰고 마늘 까는 주름이 잔뜩인 할머니의 얼굴. 촌스러운 속옷과 양말이 진열되어 있는 리어카. 시장 뒷쪽의 재개발이 얼마 남지 안은 오래된 5층 아파트.

시장을 몇 바퀴 돌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아무리 싸구려 물건을 팔든, 허름한 점포를 가지고 있든간에, 그들은 앞의, 그리고 옆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상대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상호경쟁보다는 상호부조가 인간의 본성에 더욱 적합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진보의 방향과 더욱 가까운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시장 모퉁이에 서서 잠시 해봅니다.

여자친구의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오늘은 함께 시장의 포장마차에서 시원한 국수를 한 그릇 같이 먹으려 합니다. 아. 저기 친구가 일을 끝내고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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