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학아세

이년 전 이문열님과 추미애의원의 설전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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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영(bgsdy)등록 2003.09.20 14:24
을 가까이 한지 꽤 오래됐다. 그러다 보니 작가들의 이름을 별로 알지 못한다. 이름을 알지 못하다는 것은 좋아할 작가가 없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 한 명만 거론하라면 이문열님을 꼽게 된다. 수더분한 인상도 마음에 들고 조금 짧게 느껴지는 혀로 어눌하게 말하는 목소리도 선하게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박학다식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그의 큰 스케일에 압도된다. 보는 것만큼 말하고 아는 것만큼 쓴다는 진리를
그의 풍부하고 방대한 지적 충만한 책을 통하여 엿보기 때문이다. '필론의 돼지'나 '일그러진 영웅' 혹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소설은 인간의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그만큼 그가 인간에 대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도리에 대해 깊게 생각한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그가 세종대학교 교수로 임명될 무렵 그의 학력미달을 문제삼으며 교수임용에 반대하는 식자들의 행태에 분노한 적이 있었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고 지식의 산물인 글에는 반환점이 없다. 그가 비록 높은 학위는 없을 망정 박사 열 명을 합친 것 보다 이문열 한사람의 지식이 월등히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무리 글과 사람은 비례하지 않는다 해도, 지적인 것만큼은 글로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문열님이 재작년 구설수에 올랐었다. 당시 언론세무사찰을 언론탄압으로 규정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즉각 이문열님의 발언을 곡학아세라고 치며 반격을 했고, 그게 발단이 되어 둘 사이에 치열한 설전이 전개되기도 했다.

당시의 전개과정을 지켜보며, 그동안 이문열님께 가지고 있었던 좋은 이미지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완벽한 사람 없고, 성인군자도 배설을 하고 살기 때문에 이문열님이라 해서 특별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이문열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틀리다 해서 그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추미애 의원의 곡학아세라는 말이 어쩌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문열님의 주장에 오류가 없다하더라도 고착된 편견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문열님의 주장은, 역대정권이 무슨 일을 하려면 언제나 명분을 만들어 냈는데, 이번에도 정부가 조세정의라는 명분을 만들어 언론을 길들이려한다 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의 주장이 수단만 가지고 말할 때 근거 없는 말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가 잘못하면 정부에 미운 털이 박힐 수도 있는 언동을 한데 대해 학자적 양심을 생각할지 모른다. 사실 그는 학자적 양심으로 사회 참여적 발언을 했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 정도의 대가가 쉽게 생각하고 쉽게 말했을 까닭도 없을 거라 믿는다.

문제는 그가 두둔한 대상이 언론이라는데 있다. 물론 언론이라고 해서 두둔하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언론은 국민이 보호할 가치가 있고, 보호받아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급하면 정부보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언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을 맹목적으로 두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빈대잡기 위해 초가삼칸을 태울 수 있냐는 논리로 생각날 수도 있겠지만 언론은 당시의 사건을 볼 때 두 얼굴로 국민을 희롱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무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매체가 발달하기 전 언론은 권력의 4부라는 말에 걸맞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시대적 사명이라는 명분으로 필봉을 조자룡 헌 칼 휘두른 적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언론이 민주화를 앞당기고 사회의 등불이 되기 위해 열악한 조건에서도 많은 노력을 했다고 믿는다. 당시 언론과 정부의 싸움을 통하여 밝혀진 것을 보면 언론은 범죄집단이 저지를 행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더라도 경제사범이 저지를 수 있는 수법은 전부 동원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은 하기 나름이고 명분은 만들면 된다. 쓰면서도 긍정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탈세를 했으면 일반국민에게 적용하듯이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언론이 위축될 수 있을 만큼 무자비하게 들 쑤셔낸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한다면, 강간범을 보고, 그동안 몇 여자를 괴롭혔냐고 따귀 때렸다고 해서, 인권을 침해했으니까 국민생활을 위축시켰다는 논리랑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본질을 호도하지 말라는 말이다.

당시 나는 아래와 같은 글을 썼었다.

언론은 언론의 사명이 지대하다, 언론은 그동안 잘못된 사회 행태를 고발하고 부정방지를 밝히는데 앞장 서왔다. 가끔 침해되는 초상권이나 인격권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킨다는 대의명분으로 외면할 수 있었던 것도 알권리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언론이 해온 행태로 봐서 이번에 드러난 범죄행위를 언론탄압으로 몰아가는 자기변명은 아주 가증스러운 도를 넘었단 생각이다. 법이라는 절차를 남겨두고 있지만, 언론이 특가법상의 가중처벌법에 적용될 수도 있는 범죄행위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고도 언론탄압 운운하며 본질을 호도 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언론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언론도 억울한 점은 많을 것이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하도 걸리는 법이 많은 세상이라 차를 가지고 나가도 두리번거리다 들어오고, 어쩌다 주차딱지 한 장이라도 떼면 조금 억울하기는 해도 법이 그러니까 하고 체념을 한다. 이러한 것들에 면역이 됐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번 기회를 변명으로 일관하지 말고,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언론의 사명을 목에 힘주는데 두지 말고 구석구석 억울한 곳이 없는지 살피는데 힘을 써야 할 것이고 관행과 제도가 충돌하는 부분을 살펴서 과감한 규제개혁을 할 수 있도록 정부를 견제해야할 것이다.

이문열님이 진정으로 언론의 사명을 알고 잘못된 관행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면, 범죄를 저지르고 날마다 신문지면을 변명으로 도배하는 언론을 두둔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아무도 돌봐 줄이 없는 소외계층에 대해 용기를 내보였어야 옳았다고 믿는다
일반인들은 신문에 억울함을 호소할 광고를 내고 싶어도 엄청난 비용에 포기를 하고, 그럴 형편이 되더라도 정부에 찍힐까봐 포기를 한다. 아마 일반 서민이 탈루에 부과된 세금이 부당하다고 신문에 광고를 냈다면 , 언론은 일면머리기사를 통하여 "뻔뻔한 시민. 무시당하는 정부"라는 제목을 달아 통열하게 비판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언론은 반성해야 한다. 자기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면서 국민을 가르치려하면 안되고 자기잘못은 관행으로 치부하며 사회의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외친다면 자가당착도 한 참 자가당착이다.

이문열님의 생각이 정말 언론을 생각하는 마음이 앞서 그런 주장을 폈다 하더라도, 당대 최고의 작가가 모든 분야에서 초월한 척 하다가 귀족으로 자리 매김을 한 언론이 딱해 보여 한마디 한 것이라면 그도 나 같은 시정잡배하고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쓰다보니 언론과 이문열님을 싸잡아 비난한 모양새가 됐다.

이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언론은 권력으로 남고 싶어하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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