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가족 상봉'에 대해

북, 올해 안 9차 상봉 비공식 제의

검토 완료

김정환(skywalker)등록 2003.09.25 18:32
'이산 가족 상봉'에 대해 생각
- 북, 올해 안 9차 상봉 비공식 제의

김정환(KBS 통일부)

1. 제8차 이산 가족 상봉이 지난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려 엿새 동안의 일정을 마
치고 오늘 끝났습니다. 통상 두 차례로 나눠 열리는 이산 가족 상봉은 남북이 각
각 100명씩의 이산 가족을 선정해 해당 가족들을 만나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 8차
상봉의 경우 1진은 먼저 북쪽 100명이 남쪽 가족 453명을 만났고, 2진은 남쪽 가
족 143명(왜 100명이 아니고 143명인지는 밑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이 북쪽 가족
240여명을 상봉하고 있습니다.

2. 이산 가족 상봉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2000년 6·15 선언 뒤로, 같은 해 8월에
첫 번째 상봉이 서울과 평양에서 교환 방문 형식으로 열렸습니다. 올해 열린 이산
가족 상봉은 지난 2월과 6월,그리고 이 달까지 모두 세 번 있었습니다.

지난 6월의 제7차 이산 가족 상봉 때까지 모두 7,109명의 가족과 친척들이 헤어
진지 50여년만에 만났습니다(현황은 밑의 표 참조). 또 지난 2001년 1월과 2월,
두 차례에 걸친 확인 사업을 통해 각각 1,199명과 1,068명의 생사와 주소를 확인했
고, 7차례의 이산 가족 상봉에서는 14,242명의 생사를 확인했습니다. 이밖에도 지
난 2001년 3월 판문점을 통해 남북은 각각 300명씩의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기간 장소 상봉인수
제1차 2000.08.15~2000.08.18 서울·평양 교환 방문 1,172명
제2차 2000.11.30~2000.12.02 서울·평양 교환 방문 1,222명
제3차 2001.02.26~2001.02.28 서울·평양 교환 방문 1,242명
제4차 2002.04.28~2002.05.03 금강산 849명
제5차 2002.09.13~2002.09.18 금강산 875명
제6차 2003.02.20~2003.02.25 금강산 850명
제7차 2003.06.27~2003.07.02 금강산 899명
(통일부, 제8차 남북 이산 가족 상봉 보도 참고 자료)

3. 본 기자는 지난 2월의 6차 이산 가족 상봉 때는 금강산을 직접 방문해 취재했
고, 7차에 이어 8차 상봉은 네 차례에 걸쳐 'KBS 뉴스 특보-겨레의 만남'에 출연했
습니다. 이같은 취재와 방송 출연, 그리고 주변의 반응 등을 통해 이산 가족 상봉
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이 들어 함께 나눠 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산 가족 상봉 행사 자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많이 줄었다는 점입니
다. 지난 1, 2차 상봉을 취재했던 기자들은, 당시를 가히 전쟁터였다고 말하곤 합
니다. 상봉 분위기가 살벌했다는 뜻이 아니라, 이산 가족 상봉에 대한 전국민적 관
심 때문에 기사 요구량이 많아,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데 많은 시간과 땀을 쏟아
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당시의 취재 기자들은, 크게는 남북 화해와 협력
이 한 몫하고 있으며, 작게는 자신의 리포트와 기사가 방송과 신문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보람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KBS만 하더라도, 지난 7차 상봉 때
도 그랬지만, 이번 8차 상봉 역시 'KBS 특보-겨레의 만남'을 할 것인지를 놓고 잠
시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9시 뉴스에서 이산 가족 상봉 소식을 9시 25분 이
후로 편집(9월 24일 9시 뉴스에는 아예 빠졌습니다)하는 등 각종 뉴스 프로그램
에서 뉴스 가치를 상당히 낮게 보고 있기도 합니다. 이같은 분위기에다, 상봉 현장
의 그림도 갈수록 찡한 것이 줄어든다며, 지난 20일에 1진 상봉단의 첫날 단체 상
봉을 다룬 특보는 당초 편성됐던 50분에서 30분으로 줄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분위기가 나쁘다거나,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산 가족 상
봉의 취재단 규모가 줄어들고, 국민들의 시선이 지나치게 쏠리지 않는 것이 좋은
측면도 있습니다. 남북 이산 가족들이 기자들의 등쌀에 시달리지 않고 상봉을 할
수 있고, 이산 가족 상봉을 아직은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북쪽을 자극할 수 있는
상황이 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상봉을 위한 방북에 앞서 일부 언론사들은
취재단의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또 이번 상
봉 기간 동안 각 신문사들은 대부분 사진으로 기사를 대신하거나 짧막한 기사만을
지면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산 가족 상봉 행사가 '그들만의 행사'가 돼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은 해봅
니다. 이산 가족 상봉이 50여년 넘게 헤어져 있던 남북의 가족들이 만난다는 인도
주의적인 사안이라는 점은 둘째치고, 이 행사가 남북 관계를 어떻게든 이어왔고,
앞으로도 남북 관계에 있어 중요한 몫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산 가족
상봉은 남북의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좀더 주목해서
볼 것은, 이산 가족 상봉 행사가 외부의 영향을 덜 받고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이 조
금씩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여건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지
는 아래에서 좀더 논의하겠습니다만, 이같은 여건의 형성을 위해서는 여론이 이산
가족 상봉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남쪽이 북쪽과 이 문
제를 놓고 대화를 할 때 좀더 진전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남쪽
이 북쪽에게, "우리 국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북쪽에
서 양보해라"는 설득 논리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4.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이산 가족 행사에 대한 북쪽의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여건'의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이제까지 소극
적이고 수세적인 모습을 보이던 북쪽의 태도에 변화의 움직임이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일부터 시작한 8차 이산 가족 1진 상봉 기간에, 남쪽 관계자들은 북쪽
인사들과 만나 다소 의외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종의 비공식적인 입장 전달인 셈
인데, 북쪽에서는 올해 안에 이산 가족 상봉 행사를 한 번 더 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남쪽 관계자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속으로 당황했다고 합니다. 북쪽에서는 한 번의 이산 가족 상봉 행사
를 꾸리는데 상당히 어려워 했었기 때문입니다. 상봉을 위해서는 자기 쪽의 대상자
를 추려야 하고, 상대쪽에서 요구하는 가족들의 생사도 확인해야 합니다. 남쪽은
기본적으로 주민등록이 돼 있는데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을 활용하면 사람을 찾
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또 언론, 특히 방송에서 이산 가족 상봉자를 찾는 프
로그램을 편성하면, 거의 100%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도로와 교통 사정도 좋
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행사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쪽의 경우
행정 전산망이 미비한데다, 어렵게 사람을 찾아도 평양으로 데려오기가 쉽지 않다
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함경북도 아오지에 남쪽에서 찾는 9차 상봉 대상자가 있
을 경우, 평양에서 아오지로 연락해 그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고, 찾아도 아오
지에서 평양으로 데려 오는 것도 큰 일이라는 것이 통일부의 설명입니다. 이 때문
에 다음 이산 가족 상봉 행사를 협의할 때마다 북쪽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어려움
을 들어 소극적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형편인 북쪽에서, 비공식적이지만 9차 상봉을 올해 안에 다시 할 수 있
다고 밝힌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통일부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
지 8차례의 상봉에서 한 해에 세 번 한 것은 올해가 처음입니다(위의 표 참고). 더
욱이 올해에 한 차례의 상봉을 더 한다면, 4차례가 열리는 것입니다. 특히 장소 문
제와 관련해서 북측은 금강산 여관의 공사를 오는 11월에 마칠 수 있다고 밝힌 것
으로 전해졌습니다. 최근의 상봉 행사는 남쪽에서는 현대 아산이 운영하는 온정각
휴게소에서만 열렸고, 북쪽에서는 지난 6차 상봉까지는 금강산 여관에서 열렸다가
7차와 8차 상봉은 김정숙 휴양소에서 개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숙 휴양소는
금강산 여관보다 규모가 작아 불편하다는 것이 통일부의 지적입니다. 그렇게 본다
면 금강산 여관이 11월 안에 다시 문을 연다면, 올해 안에 9차 상봉 행사를 갖자
는 북쪽의 비공식적인 제안이, 제안을 위한 제안만은 아닐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그렇다면 눈 여겨 볼 것은, 다음달 14일부터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제11차 장관
급 회담입니다. 11차 장관급 회담은 핵 문제를 다룰 6자 회담 2차 회의에 앞서 열
리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남쪽으로서는 6자 회담과 관련해 북쪽에 대한 설득 작업
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핵 문제는 남북 사이에 풀 수 없는 것이기 때
문에, 11차 장관급 회담에서 핵 문제와 6자 회담과 관련한 뚜렷한 진전은 기대하
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리고 남북 경협의 경우, 핵 문제와 어느 정도는 연계돼 있
기 때문에, 경의선 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과 개성공단 건설 사업, 그리고 금강산
관광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에 더해 새로운 사업을 하기란 사실상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11차 장관급 회담 역시, 지난해 10월 핵 문제가 불거진 뒤 열린, 이전
의 회담들과 마찬가지로 큰 성과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이 제9차 이산 가족 상봉을 올해 안에 더 열기로 합의한다
면, 그래서 아무 문제없이 이뤄진다면, 이산 가족 상봉 행사 자체의 의미도 있고,
거기에 더해 남북 관계의 최소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5. 또 '동반 가족'에 대해서도 북쪽은 융통성 있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동
반 가족'은, 남북 이산 가족 가운데 80살이 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의 경우, 가
족 가운데 1명씩을 보호자 형식으로 데리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난 6월
의 7차 상봉 당시 남쪽은 10명의 '동반 가족'이 방북했고, 이번의 경우 43명으로
늘었습니다. 눈 여겨 볼 것은, 북쪽이 '동반 가족'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지는 않았
다는 점입니다. 남쪽 관계자들은,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번 8차 상봉에서
북쪽이 43명이라는 '동반 가족'의 방북을 비교적 잘 받아들였다고 밝혔습니다. 통
일부는 장기적으로, 현재의 100명 대 100명이라는 '동수 상봉'을 '비대칭 상봉',
즉 남북이 자신의 형편대로 상봉 대상자를 뽑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
다. 이럴 경우 남쪽에서는 200명이 나갈 수 있고, 북쪽은 대상자를 찾는 작업이 쉽
지 않을 경우 100명만 나올 수 있게 됩니다. 북쪽이 이같은 '비대칭 상봉'을 수용
하지는 않고 있지만, '동반 가족'은 변형된 '비대칭 상봉'으로 볼 수 있고, 그 방
향으로 나갈 가능성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6. 여기에 더해서 남북이 금강산에 상설 면회소 건설 공사에 들어가고, 실제로 내
년 하반기에 부분 개관을 해 상봉이 정례화된다면, 이산 가족 문제는 새로운 국면
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면회소는 현재 남북이 서로 주장하고 있는 규모가 달라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
하고 있습니다. 남쪽은 3천평 정도를, 북쪽은 2만평을 제안하고 있는데, 그 차이
가 너무 큰 것입니다. 남쪽이 주장하는 3천평은 현지에 있는 해금강 호텔 정도 규
모로, 상봉 행사를 하기에는 좀 불편합니다. 그러나 북쪽의 2만평은 광화문 정부
종합청사나 신라 호텔 정도의 크기인데, 너무 큽니다. 이에 따라 남쪽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는, 3천평부터 공사를 시작해 필요에 따라 더 짓자는 수정 제안을 내놓
고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북쪽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북쪽이 2만평이 집착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 때문인 것으로 알려
지고 있습니다. 즉 김정일 위원장이 금강산에, 남북 협력을 상징하는 대규모의 건
물을 지을 것을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쪽 관계자들은 남쪽의 거듭
된 설명에 이해를 표시하면서도 설득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약간의 변화 기류가 포착됐습니다. 통일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남쪽은 면회소 건설과 관련해 얼마 전, 북쪽에 하나의 제안을 한 것
으로 알려졌습니다. 새 제안에서 남쪽은 면회소의 운영 문제를 거론하면서, 규모
문제와 맞바꿀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이산 가족 면회소를 남
북이 공동 또는 남쪽 단독으로 운영하기로 합의하면, 면회소의 크기에 대해 융통성
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쪽은 면회소를 짓는 것도 문제지만, 이후의 운영
도 만만찮은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1년에 이산 가족 상봉 행사를 수십 차례 하는
것이 아니라면, 면회소를 행사가 없는 기간에는 놀려야 하는데, 그럴 경우 관리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남쪽은 면회소를 이산 가족 상봉만이 아닌 다른
행사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입장을 북쪽에 제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북쪽이 당장 방향 전환을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
다는 것이 남쪽 고위 당국자의 설명입니다.

7. 지금까지 이산 가족 상봉을 취재하면서 확인한 몇 가지 사실과, 거기에 대한 분
석을 해봤습니다. 이 짧은 글이 이산 가족 상봉을 비롯한 남북 관계에 대한 여러분
의 이해를 넓히고, 많은 애정을 가질 수 있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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