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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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영(bgsdy)등록 2003.09.30 11:19
시골에서 자란 아들만 오형제인 집안의 둘 째인 난 틀림없는 효자였다. 성질만 급하신 아버지 대신 생계를 꾸려 가는 어머니를 위해 삶은 고구마 반쪽을 어머니를 위해 남겨두는 마음을 가졌던 아이였므로 틀림없는 효자가 맞았다.

국민학교 사학년, 어머니는 읍내 어느 모퉁이에서 풀빵장사를 하셨다, 그 많은 직업을 놔두고 하필이면 풀빵장사라니 몹시 부끄러웠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너무 오래 전 세월 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 비 오는 날 나의 행동을 골목에 숨어서 바라보고 있던 친구를 의식하며 어머니와 다투었다. 난 그때 아버지처럼 말을 했다.

"시발년"

어머니는 아버지 보다 먼저 돌아가셨다. 밤마다 어디론가 떠나는 아버지의 좇아 어느 날 뒤를 밟았다. 아버지가 도착한 곳은 마을 뒷산에 있는 어머니의 산소였다. 십미터, 혹은 이십미터 ,, 떨어진 곳에서 아버지의 한숨을 들었다.

"여보,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느님 곁에 가셔야지요."

내가 청년이 되고 어깨에 푸른 견장을 달았을 때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 아버지가 되었다. 내 앞에서 입 모양 버린다고 짜장면도 먹지 않던 아내도 어머니 닮은 아이 엄마가 되었다.

가난은 집 가 자에 난리 난자를 쓴다고 했던가. 우리는 늘 싸웠다. 어느 날 심각하게 싸웠다

"시발 년"

세월은 흘렀다. 내가 바람을 피웠다. 어느 거리에서 그녀가 여차하면 알지? 라는 공갈과 함께 이별을 통고했다. 핏빛보다 말간 유리잔에 담긴 액체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시발 년"

지금 귀밑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자다. 인천에는 비가 내린다. 그때 언젠가 젖무덤이라는 글을 만들 던 날도 비가 내렸다. 아아 연인은 언제나 시발 년이었었지.

詩 젖무덤

인정머리 없는 엄니가
젖 한 번 만져보자는
손 길 뿌리치고
허구헌 날
공부나 잘하라 하시더니

책가방 메고
오는 틈을 타서
서른 일곱 나이에 돌아가셨다

정 떼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지만
끊지 못할 정 아시는 분이
둘 째 아들, 집에 올 시간에
옷고름 여미고 떠나시다니


설마 꿈이련가
얼굴 부비며
스무 바퀴쯤 굴렀지만
빈 자리 말고는 모든 게 정상이다


그렇게 한 줌 흙으로 가실 것을
젖 한 번 만지게 해주셨다면
풀무덤 어루만지며
울지는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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