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덧없고 허망한 유희

검토 완료

백도영(bgsdy)등록 2003.09.30 17:53


12년 전, 집과 직장만을 시계추처럼 오갈 때 그 아이를 만났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그 아이를 직장상사의 입장에서 만났을 때 그 아이는 막 스무 살을 넘겼을 때였고 난 삼십대 부장이었다

그 아이는 사내의 총각들에게 장래의 배우자로 인기가 있었고, 충분히 그럴만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인정할 만큼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출근하면 그 아이는 커피를 내오고 조간신문을 가져다 주는 예의를 갖추었지만 난, 그 아이를 유혹하지 않았다. 난 나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으며, 주제 넘는 일이면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 내 본질이라서 하느님한테도 유혹하지 않았다고 맹세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경멸하는 것 중에 하나가 원조교제고 업무의 우위를 이용하여 여자를 성적으로 괴롭히는 인간들이었다. 내가 자상하게 대한 것은, 세상물정에 어둡고 업무에 미숙한 그 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였지 이성으로 환심을 사려는 유치한 짓은 아니었다.

난 그 아이에게만 자상하게 대한 것이 아니라 생산부서 직원이나 일용직에게도 똑같이 자상하게 대했다. 가끔 그 아이가 출장 길에 나설 때, 데리고 가줄 수 있냐는 청을 들어 준 것도 싫지 않은 감정이 있는 탓도 있지만, 내 것이라는 상상자체를 못한 것에서 나온 여유였을 것이다.

백치처럼 웃으며 '사모님은 행복하시겠어요' 란 당돌한 질문을 받을 때 웃기는 했지만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하고 싶어하는 표현의 간접화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난 바보였고 아무하고도 연애라던가 일탈을 해 본적이 없었다.

어느 시점에서 나는 그 아이의 사적인 고민을 들어줬고, 그 사적인 이야기는 사적으로 이어졌다. 자주 어울렸고, 어울린 만큼 귀가시간이 늦어졌으며 그만큼의 출장이 잦아졌다. 그 아이와 함께 있으면 편안했고 대범해 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안았다. 그 아이의 세상과 내 세상은 달랐으며 그 아이의 지적능력과 내 능력은 다르다는 이질감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질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정해져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죄를 짓는 기분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만난지 일년이 지난 후부터 아이를 위해서라도 보내주어야 한다는 생각과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늘 괴롭혔지만, 그 상황을 끝낼 용기는 없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당시 유행하던 '그 날'이라는 노래와 '먼 곳에 있지 않아요' 란 노래를 가르쳐 주면서 깔깔거리기도 했다.

이년 남짓,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권리의 주장과 겸손에서 방황하는 사이 이별의 조건은 외부에서 찾아왔다. 그리고 헤어졌다.

몇 달인가 지난 후, 들리는 풍문이 우울하게 했지만 사귀는 남자와 잘 되기만 바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아이는 붙임성이 있어 어느 상황이 되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는 작위적 위안과 철이 없어 불안하지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자괴감 사이에서 서성일 때 한 통의 우편물을 받았다. 그것은 그 아이가 결혼한다는, 참석해주면 좋겠다는 청첩장이었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참석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하는 동안 그 아이의 결혼식 날은 다가왔고 난, 그 날 식장에 참석하는 대신, 아직 눈발이 녹지 않은 명지산을 오르고 있었다

겨우내 삭풍에 서걱대던 갈잎에 뺨을 할퀴며, 그 아이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렸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도 그 아이도 서로를 잊게 하여 주옵시고,, 다시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난 태어나서 처음 해 본 외도로부터 일상으로 복귀했고 잊기 위해서라도 그 일상에 충실했다. 가끔 친구들이 불륜이라던가 일탈을 꿈꾸는 말들을 할 때면 웃기는 했지만 다시 무언가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끔 그 아이가 그리워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잠시, 일년에 한 번 정도 꿈에 보이는, 그래서 그런 날이 있었구나 하고 되새길 뿐, 오직 일상에만 충실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난 신도시의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를 했고 그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주민들과 상견례 하는 날, 난 그 아이를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마이크를 잡은 시선 끝으로 아이를 업고 들어서는 주민은 틀림없는 그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이 정지되어 있는 동안, 아이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관리실 앞에서 그 아이가 말했다, 백도영이라는 이름이 붙은 공고를 보고 동명이인인가 확인해 보고 싶었다고. .그런데 맞아서 다행이고, 만나서 반갑다고...

아이는 착한 남편과 한 살 된 딸과 네 살 된 딸을 가졌다고 했다. 7년 만에 만나 물어 본 첫마디는 "행복하니?" 라는 질문이었고 그 아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아이를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은 애틋함도 아니고 가슴 설레임도 아니고, 그렇다고 충격도 아니었다. 싫지는 안았지만 그렇다고 반갑지도 안았고 재회를 통하여 가져볼 수 있는 손톱 끝 만한 기대도 들지 않았다. 그때의 느낌은 그 애가 잘 산다는 것을 확인한 안도감, 오래도록 짓누르던 부담에서 벗어나는 자유, 그 것 뿐이었다. 그래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구나, 행복해야지. 그 아이와 마주보며 웃은 까닭은 벗어났다는 안도였다.

아무리 세월이 사람을 무디어지게 한다해도 그렇지 가슴 떨리던 만남의 당사자였는데 이렇게 무덤덤해질 수가 있을까.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의사를 만났다.

그 의사는 자주 술 대작을 하는 친구로 아무 말이나 편하게 할 수 있는 사이였다. 약간의 민망함을 무릅쓰고, 내 이야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 소설 써요.?" 였다. 그는 내 감정에 대한 답이 아니라 7년 만에, 그것도 같은 아파트 옆 라인에서 만날 수 있냐는 확률을 먼저 생각한 것이었다.

하하 그렇지, 지금 내가 소설을 쓰고 있구나. 더 이상 그 아이와의 재회를 거론하지 안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아이와 같이 같은 동에서 사는 불편함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래 오래 살겠다고 꾸며놓은 집을 세 놓고 두어 블럭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회장 임기나 마치고 가야한다고 했지만 7년의 잊혀짐을 다시 재생할 수는 없었다

그 아이와의 이상한 재회는 그 걸로 끝이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으며, 나 역시 그 아이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일부러 알지 안은, 나에게 남아있는 도덕성을 고맙게 생각했다.

그 아이를 만남으로 해서 얻은 것은 소녀의 모습으로 남아있던 기억을 유모차를 끄는 아이엄마로 바꾸어 저장하는 것과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다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재회를 한 날로부터 삼 년, 어쩌면 삼 년 반이 흘렀다.

금년은 힘들었다. 방황하며 버리는 것과 버림받는 것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그 아이에게 좀 더 따스하게 대해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가끔, 이별 때문에 아파할 때 그 날, 재회하던 날의 무덤덤함을 기억하고 사랑은 참으로 허망하고 덧없는 허상이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저께, 그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상한 재회를 이상하게 끝 낸지 삼 년만의 전화. 잘 지내시냐는 전화였다. 그리고 그 날, 그 아이를 만났다.

이제 서른 세 살이 된 아이엄마와 귀밑에 힌 머리가 히끗 히끗한 중년의 남자. 삼년 전에 만나긴 했지만 마주앉아 마시는 커피는 12년만이었다. 잠시의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근황을 묻고 어떻게 만날 생각을 했냐는 걸 시작으로 얘기를 했지만 아이는 처음 출장 길에 따라나서며 즐거워하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윤곽은 그대로였지만, 나 보다 더 약아진 것 같은 웃음과 아줌마 티를 감춰보려 애 쓰는 모습에서 12년이 얼마나 두꺼운 장벽인가를 일깨우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차라리 그때의 재회로 끝났더라면 축복이었을 것을, 무슨 미련이 있어 또 만났는가. 안 그래도 난 건조해져 가는데, 우린 너무 긴 시간을 돌아왔다. 다시 만날 운명이었다면 자기의 시간을 비웠어야지. 난 많이 변했다. 내가 그때의 내가 아니듯이 너 역시 그때의 네가 아니다.

그 아이를 보내고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랑은 그리워할 때 만나야 하는 것, 이별이 슬퍼 눈물을 흘릴 때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고. 볼일 다보고 할 일 다하며 식후에 이별을 즐기고 난 뒤 남는 시간에 혹시나 문을 두드린다면 그건 자가당착이고 이기이지 사랑은 아닐 것이라고. 사랑은 미친 짓이며 서로를 속이는 작업, 정말로 가치 없는 거라고,

이상한 재회를 두 번씩이나 경험하면서 함께 가자는 맹세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영원하지 않은 사랑을 영원하게 만들려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짬뽕인지 생각하면 할 수록 허망한 마음이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개했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