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성풍속도 / 일부일처제가 사라지고 있다

인간은 왜 한눈을 팔까? 일부일처제는 절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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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원(reform1)등록 2003.10.16 19:13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

제우스의 아들인 헤파이스토스는 아버지와 달리 절름뱅이 추남이지만 유능한 대장장이이다. 거기에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의 아내이다. 아프로디테는 바람둥이로 유명하다.

그녀는 남편이 ‘출장’가는 틈틈이 수년 동안이나 전쟁의 신 아레스와 밀월을 즐겼다. 헤파이스토스가 마침내 눈치를 챘고, 이 세상에서 못만드는 것이 없던 유능한 대장장이인 헤파이스토스는 불륜 현장을 적발하기 위해 찢어지지 않는 투명그물을 만들어 침대에 설치한다.

외도를 즐기던 이들은 투명그물에 갇히게 됐고, 헤파이스토스는 복수한다며 신들을 불러모아 이들의 불륜현장을 공개한다. 그러나 불륜현장에 모인 아폴론, 헤르메스, 포세이돈 등 남자 신들은 오히려 “아프로디테 정도면 나 같아도…”라며 아레스를 오히려 부러워한다.

중세시대의 두 번째 장면 . 데카메론의 엿새날 일곱 번째 이야기

먼 옛날. 남편이 외도하는 아내의 현장을 목격하면 아내를 몸파는 여자로서 화형에 처하는 법이 엄격히 시행되던 시절이다. 파트로 지방에 살고 있던 리날도에게는 아름다운 여인인 아내 필리파가 있었다.

그런데 필리파가 젊은 기사 리자리노와 사랑에 빠졌다. 어느날 남편은 아내 필리파가 침실에서 불륜의 사랑의 행각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이들을 법정에 고소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필리파는 당돌하고 침착하게 말했다.
"판사님 , 남편인 리날도가 저를 원할 때 한번이라도 제가 거부한 적이 있는지 물어봐 주십시오 " 이에 남편은 그런 적이 없다고 답했다.

"좋아요 존경하는 판사님께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남편이 저를 원할 때마다 저는 응했습니다. 그러고도 남는 열정이 있다면 ,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개에게라도 던져줘야 할까요? 아니면 열정을 죽여 썩게 만드느니, 차라리 사랑하는 기사에게 바치는 것이 좋을까요?"

법정에 참석한 동네 주민들은 간통한 이 여인의 호소에 박수갈채를 보냈고, 판사는 즉석에서 법을 개정해 여자가 돈이 탐이 나서 남편 몰래 매춘할 경우에만 이 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고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장례식 때 부인이 아닌 제3의 여자가 미망인을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고 슬퍼하던 모습이 전세계 TV에 방영되었다. 평생토록 지속되었던 이 외도는 세계에 화제가 됐다.

2002년 월드컵 개막식에도 참석했던 독일의 축구영웅 프란츠 바켄바우어의 은밀한 사랑이 얼마전 대중에게 노출되었다. 여비서와 몰래 나눈 불륜이 언론에 폭로되었지만 , 이 부부는 이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다. 이들의 태도를 두고 독일언론은 아주 성숙한 결정이라며 온통 칭찬 일색이었다고 한다.

힐러리 로담 클린턴 상원의원은 최근 발간한 자서전 'Living History'에서 남편 클린턴 전대통령의 외도사실을 알고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다는 심경을 피력했다. 클린턴의 섹스행각은 역사가 오래되었으나 힐러리의 클린턴에 대한 지원과 지지는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올해 초 ‘타임’지 아시아판은 한국 남성의 65%, 여성의 41%가 외도를 한 적이 있다는 결과를 전했다. 세계 각국 40∼80세 남녀의 성에 대한 태도와 행동에 관한 ‘화이자 글로벌 보고서(2003년 발간)’에 의하면 '혼외 정사를 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한국은 남성 34.1%, 여성 18.9%만이 ‘그렇다’고 응답해 세계 평균(남성 61%, 여성 51%)보다 월등히 낮았다. 외도에 대해 엄격하고 보수적인 성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남성의 6.3%, 여성 1.2%가 일회성 외도를 제외한 성생활 파트너가 2명 이상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이탈리아(11%, 6%) 프랑스(8%, 2%) 독일(7%, 2%)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성에 대해 개방적이라고 알려진 미국(5%, 1%) 호주(5%, 1%) 일본(4%, 2%) 영국(4%, 1%)보다는 높아서 주목된다.

서구와 달리 비교적 이혼율이 낮고 혼외정사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40대 이후에서 성 파트너가 2명 이상인 비율이 비교적 높게 나온 것은 한국인의 이중적 성 행태를 보여준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한국릴리가 서울 등 전국 5대 도시에 거주하는 40∼59세 발기부전 남성 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대1 면접조사에 의하면 10명 중 8명이 아내가 아닌 친구와 고민을 상의하는 것에서도 성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한국남자들의 태도가 드러난다.

아내와 상의한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고, 의사와 상담한 경우는 5%에 지나지 않았다. 또 조사 대상자의 57%는 자신이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자에게 숨기고 있었다. 섹스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배우자에게 성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이러한 태도는 한국남성의 성에 대한 이중적 의식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적 성의식은 혼외정사를 부정적이라고 말하면서도 뒤로는 성적 파트너를 찾는 이중적 성행위를 낳는다.

지난 7월7~9일 <한겨레21>과 <바람난 가족> 제작사인 명필름이 공동의뢰하여 전국의 기혼 남녀 3857명(남자 2175명, 여자 16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부의 성생활에 대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남성의 42.2%, 여성의 19.9%가 배우자 이외의 ‘애인’을 사귀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특히 50대 이상 남성이 50.9%, 40대 이상 여성이 23.4%에 달한다.

또 ‘혼외 성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남성의 67.7%, 여성의 12.3%가 있다고 응답했다.

혼외 성경험은 남녀간 차이가 뚜렷했는데, 남성의 상대자로는 유흥업소 여성이 36.6%로 가장 많았고 지속적인 애인(22.4%), 인터넷이나 나이트클럽에서 일시적으로 만난 사람(11.5%) 순이었지만, 여성의 상대자는 60%가 지속적인 애인이었고, 인터넷·나이트에서 만난 사람(13%)이 그 다음이었으며 유흥업소에서 만난 사람(0.5%)은 거의 없었다.

기묘한 것은 부부의 성생활이 즐겁다는 응답이 남성 39.5%, 여성 36.4%나 됐지만,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관계를 갖고 싶다는 응답도 남성의 83.8%, 여성의 49.4%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부부생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대부분의 남성과 절반 정도의 여성이 ‘혼외관계’에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묘한 부조화가 결혼의 ‘균열’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전세계 인터넷 음란 사이트중 한글로 작성된 사이트가 영어에 이어 2위에 달하는 것이나 한국의 러브호텔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업중인 사회현상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840쌍이 결혼하고 398쌍이 헤어졌다. 10여 년만에 한국은 이혼율이 3배나 늘어 마침내 이혼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미국에 이어 2위이다.

인간은 왜 한눈을 팔까. 자기 짝에만 만족하지 못할까?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은밀하고 짜릿한 또다른 만남을 꿈꿀까. 최근 연이어 번역출간된‘유혹하는 본능’(볼프강 슈미트바우어)과 '커플의 재발견'(필리프 브르노)은 이러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하고 있다.

인간이 외도나 배우자외의 은밀한 사랑을 꿈꾸는 것이 꼭 부부사이가 나쁜 경우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개인이 부도덕해서 불륜을 저지르는 것만은 아니다. 다만 부부는 오랜 세월 책임과 의무에 구속돼 자유롭지 못한 데다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간 비밀이 없어지니 성적인 환상이 없어지거나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몰래 이뤄지는 외도는 가슴 졸이는 짜릿함과 에로틱한 환상을 준다. 늘 다양한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어깨가 무거울수록 일탈을 꿈꾼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신과의사인 저자는 상담경험, 신화나 영화, 소설 등 풍부한 자료를 통해 인간의 외도심리가 본능적인 성격임을 분석한다.

그렇다고 외도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딴눈을 팔지 않는 부부관계가 절대적일 수 있다라는 환상을 포기하라”고 말한다. 한 쪽으로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또다른 한 쪽엔 환상적 사랑을 추구하는 욕구가 있는 게 사람의 본능이라는 임상사례도 제시한다.

아울러 기존의 전통적인 부부관계의 개념을 넘어서서 발상의 전환을 해야 부부관계가 원만해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 외도 이후에 부부관계가 더 튼튼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유혹하는 본능'의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책이 ‘커플의 재발견’이다. '커플의 재발견'에 의하면 '일부일처제'로 상징되는 현 결혼제도는 실패한 제도’라고 분석한다.

일부일처제가 다수의 성적 상대를 원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에 어긋날 뿐 아니라 얼마나 인간을 억압하는 불완전하고도 부자연스러운 제도인지 사회생물학적 눈으로 철저히 해부한다.

저자는 일부일처제를 깨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 넓혀 일부일처제의 허구를 이해한 후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유혹하는 본능'과 '커플의 재발견'은 기존의 남녀관계, 결혼제도의 문제점을 통해 남녀관계, 부부관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것을 깨우친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개념이나 인식에서 볼 때 불륜에 해당되는 '은밀한 사랑'에 대해 무조건 배타시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관점을 버리라고 한다.

나름대로 외도학을 규명한다. 외도란 가정의 파탄을 초래하니 절대로 행하지 말라는 충고대신 , 외도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저자는 진지하게 외도의 실상을 드러낸다.

이 책들은 우리의 견고한 가치관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의 결혼제도, 남녀관계의 틀이 절대적인 문화가 아니라 인류문화의 한 부분이요 과정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 두 책은 일부일처제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란 점을 예증하면서 결혼, 외도, 이혼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 속에서 사랑의 본질과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또한 사랑 못지 않게 이별 역시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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