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리학의 세계: 사유와 실천

국립중앙박물관-특별전

검토 완료

황평우(wearea)등록 2003.10.20 18:44
조선시대 500년의 사상적 근간이었던 성리학의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에서는 오는 10월 21일부터 11월 30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올해의 다섯 번째 특별전 -조선 성리학의 세계: 사유와 실천-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조선 성리학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되새겨 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는 단순히 조선시대 성리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또는 긍정적인 면만을 새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대표적인 정신 문화로서의 조선시대 성리학에 대해, 그 특징과 역사적 기능 및 의의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번 전시는 2005년 개관 예정인 용산 새 국립중앙박물관에 마련될 역사관의 종교사상실에 전시될 주제와 내용을 사전에 준비검토하여 보다 완성된 전시를 기하고자 하는 의도도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지니는 중요한 의의는 전통시대의 정신 문화를 주제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실제 보면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물질 문화와 달리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주제는 전시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연유로 정신 문화의 여러 영역들이 당대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로 실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전시의 지평을 넓히는 새로운 시도라는 측면에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유물은 성리학과 관련된 전적류, 성리학자들의 서간문, 고문서류, 그리고 주요 학자들의 초상화를 비롯한 회화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보 1건, 보물 3건을 비롯하여 총 240여점의 다양한 유물이 성리학의 역사적 흐름과 주제를 바탕으로 한 개념 속에서 유기적으로 전시된다.

성리학의 이론서인 "성리대전서절요 性理大全書節要(보물1157호)", 노년의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어린 선조 임금에게 올렸던 "성학십도 聖學十圖", 단아하면서 기개있는 선비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허목(許穆)의 "묵죽도 墨竹圖",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성리학의 대가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친필 글씨, 왕과 신하가 성리학과 정치 현안에 대해 배우고 토론한 사실을 기록한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경연일기 經筵日記", 노론의 영수이자 조선후기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초상(국보239호), 출가한 딸에 대한 애틋한 정이 담긴 정경세(鄭經世)의 한글서간 등이 다양하게 전시된다. 학문과 사상으로서의 성리학뿐만 아니라 이를 실천했던 성리학자들의 인간적 면모도 볼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가족 관람객과 외국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별도로 마련된다. 가족과 함께하는 특별전 프로그램으로는 전시 기간 중에 "특별전 조각 맞추기"와 "엽서로 풀어보는 성리학"이 진행될 예정이며, 외국인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으로는 11월 20일 오후 7시에 주한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특별전 내용을 소개하는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성리학의 시기별 흐름과 특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아홉 개의 주제로 구분하여 성리학이라는 주제를 쉽게 풀어본다고 한다.

1. 새 학문, 새 사람, 새 왕조
13세기 말 안향安珦 등이 주자서朱子書를 도입보급하면서 성리학은 고려의 사상계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14세기 후반 이색의 지도 하에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길재吉再 등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 사대부는 여러 면에서 이전의 지배층과 다른 새로운 정치세력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고려사회를 개혁하는 방법에 대해 이색, 정몽주 등의 온건파와 정도전 등의 강경파로 나뉘었으며, 결국 강경파가 신흥 군벌 이성계와 결탁, 새 왕조 조선을 개국하게 된다. 이를 주도한 정도전은 성리학을 새 왕조의 통치이념으로 확고히 세우는 데 기여하였다. 전시에는 정몽주초상, 정도전의 삼봉집, 길재가 지은 칠언절구 등의 유물이 출품된다.

2. 도덕사회를 향하여
조선 건국초기에는 권력층의 비리가 이어지면서 성리학적 가치가 손상을 입었다. 16세기에 들어 조광조 등의 사림파는 위정자의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면서 훈구파와 척신戚臣의 비리를 강력히 비판하였으나, 결국 사화士禍의 희생자가 되었다. 사림파의 도덕성 강조와 성리학 이념의 실천은 곧 이론적인 뒷받침을 얻었다. 16세기 후반 이황李滉과 이이李珥가 집대성한 이기심성理氣心性의 탐구가 그것이다. 우주만물의 원리가 인간심성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밝혀 도덕사회 실현의 당위성과 가능성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근사록, 성리대전서절요, 이황의 퇴계선생문집, 이이의『율곡전서』 등이 출품된다.

3. 배우고 가르치는 왕
조선의 왕은 어릴 때부터 ‘효孝’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 도덕과 군주로서의 자질을 훈련받았다. 왕이 된 후에는 경연經筵을 통해 성현의 가르침과 역사를 배우고 토론하였으며, 주요 정치 현안을 여러 대신들과 협의하였다. 경연 제도의 밖에서는 이황/이이 같은 존경받는 학자들이 ‘성학聖學‘이라는 이름으로 왕도정치王道政治의 방안을 정리하여 건의하기도 하였다.
전시에는 경연일기 經筵日記, 성학십도 聖學十圖, 주자대전차의 朱子大全箚 등이 출품된다.

4. 선비의 체취
유학[성리학]을 공부하여 그 이념과 도덕으로 자신을 수양하고 나아가 사회를 교화하는 것을 임무로 여기는 지식인을 선비라 한다. 선비는 지위부귀와 같은 사사로운 이익보다 공적인 도리를 중히 여겼다. 선비 가운데에는 처음부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과 수양에 몰두하며 후학을 가르치는 데에 헌신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선비는 유교의 도덕을 몸에 익힌 사람들이었으나, 자연과 인간사에 대한 여유로운 눈길과 멋스러운 정서를 시詩서書화畵로 형상화해내는 예술가이기도 하였다. 허목이 그린 묵죽도는 이의 대표적인 보기이다.

5. 우리 고을의 성리학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한 조선은 고을마다 향교鄕校를 세워, 유학을 교육하였다. 그러나 향교의 기능은 문묘文廟에 제사지내는 것으로 점차 축소되어 갔다. 이후 향촌의 교육은 관학인 향교가 아닌 사학私學인 서원書院에서 수준 높게 이루어졌다. 또 서원은 향촌의 선비들이 모여 결속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림의 공론公論이 모아졌다. 16세기 중반 이후 서원은 붕당朋黨과 연결되어 정치적 영향력까지 갖게 되었다. 한편 향촌의 교화는 자체 규약인 향약鄕約을 통해서도 모색되었다. 전시에 출품된 도산서원도 陶山書院圖, 향교알성도 鄕校謁聖圖, 신증향약조 新增鄕約條 등의 유물을 통해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6. 예의 나라
유교의 예禮는 도덕을 실천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여러 행위의 형식적 규범이다. 조선후기에 들어 예학禮學이 크게 발전하였고, 주자가 쓴 ‘가례家禮’는 삶의 형식을 실질적으로 규정해갔다. 특히 개인 생활에 필요한 제례祭禮와 상례喪禮를 중심으로 예의 올바른 적용과 실천이 강조되었다. 적자嫡子와 서자庶子의 차별, 장자長子와 중자衆子의 차별 등이 중시되는 가운데 예 지상주의적 경향까지 띠게 된다. 예학에 정통했던 김장생,송시열 등의 초상화와 상례비요 喪禮備要, 제기祭器 등의 유물을 통해 예를 중시하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7. 삼강오륜의 삶
유교에서 도덕사회를 위해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윤리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이다. 성리학적 가치가 널리 확산되는 조선후기에는 삼강오륜, 특히 효孝,열烈의 윤리가 당연한 미덕으로 인식되면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유교 도덕이 성숙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어느 한 쪽의 봉사와 순종, 때로는 희생이 일방적으로 강조되어 쌍방의 건전한 소통과 존중은 이루어지기 어려웠는데, 남녀간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전시된 오륜행실도 五倫行實圖, 내훈 內訓, 등장 等狀 등의 유물을 통해 삼강오륜의 삶을 확인해 볼 수 있다.

8. 춘추의리를 위하여
이기심성理氣心性의 탐구가 깊어지고 16세기 후반부터 사림들의 정치가 지속되면서 유교의 의리명분론義理名分論은 전에 없는 힘을 갖게 되었다. 특히 서인들은 춘추의리春秋義理를 내걸고, 명明에 대한 사대事大 정책을 고수하였다. 그 결과 병자호란이라는 화를 자초하였으나, 서인西人들의 명분론名分論 고수는 오히려 심화되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에 대한 의리義理를 지키려는 존주론尊周論과 청에 대한 복수를 주장하는 북벌론北伐論은 도전을 불허하는 국시國是가 되었다.
전시에는 의리정신의 상징 오달제(吳達濟)의 묵매도 墨梅圖를 비롯하여 윤집초상 尹集肖像, 소화외사, 책력 등이 출품된다.

9. 변화의 시대, 주자를 넘어
조선후기 조선의 성리학은 주자朱子 일변도로 경직화되었다. 따라서 주자와 조금이라도 다른 학문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바른 학문을 어지럽힌다고 하여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불리웠다. 대표적인 인물로 박세당,윤휴 등은 주자의 세계관을 절대시하며 의리명분론에 집착하던 기존의 경직된 흐름에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공리공론이 아닌 실생활에 유용한 학문을 추구해야 한다는 실학의 흐름도 나타났다. 여기서는 박세당의 유물과 윤휴의 문집, 이익과 정약용의 저작 등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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