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욱
올여름 극장가를 강타했던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가족>도 비슷하다. 영화포스터와 제목에서 풍기던 야릇한 분위기는 극장을 나서면서 섬짓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아이를 굳이 죽여야 했을까 라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의 죽음은 영화전체적으로 봤을때,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우리의 가족이데올로기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음을 감독은 아이의 죽음을 통해서 극명하게 보여줬다. 문소리씨가 울부짖으며 고등학생과 섹스를 하는 장면은 무너지는 절망과 슬픔, 그 자체였다.
계속되는 단조로운 섹스장면에 조금은 싫증이 날 뻔했던 <베터댄섹스>, 야한영화라기 보다는 여성영화라는 평이 훨씬 어울릴것 같은 <밀애> 등... 야하다고 소문났던 영화들은 오히려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어쩌면 야하다는 선입견 없이 영화를 접했다면 조금은 더 진지하게 접근했을지도 모른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파트리스 셰로 감독의 <정사>는 야한걸 기대했다가 오히려 실망했던 영화의 목록에 추가시켜야 할 것 같다.
정사. 같은 이름을 가진 이미숙, 이정재 주연의 우리 영화가 몇년전에 있었다. <정사>의 원제는 '친밀성'이라는 의미의 INTIMACY. 사실 친밀성 이라고 했다면 영화내용과 더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제목만 보고선 속았을 사람 많았겠다'는 영화평은 정말 적절했다. 35분간의 정사신은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섹스가 아니라 바로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집착, 사랑, 부부, 가족, 친구, 인간관계... 이 모든것들이 영국 런던 특유의 어두움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정사>, 현대인의 고독 짙게 느껴져
▲ "그 빌어먹을 수요일의 섹스에 어떤 의미가 생겨버렸어" ⓒ 김상욱
매주 수요일에 아무말없이 섹스만을 나누고 돌아가는 여인에 빠지는 이혼남의 이야기이다. 아내와 가정을 팽개치고 집을 나와 자유롭게 살고있는 주인공. 사실 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없었다.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오직 관심있는 것이라곤 서로의 몸뿐이다. 말없이 섹스만을 나누는 주인공의 모습은 무미건조하고 지루하다. 파격적이긴 하지만 모자이크 처리된 정사신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섹스파트너 정도로만 생각했던 여인을 사랑하게 돼 결국 남자는 여자에게 빠져들고 만다. 사랑을 믿지 않았던 남자가 여자에게 "당신을 나만이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여자는 유부녀였다). 소유하고 싶지만 소유할 수 없는것에 대한 아픔이 짙게 묻어나왔다. 사랑하지 않는 남편과 함께 사느니 자신에게 오라고 말해보지만, 그 여인은 남편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물론 마음만은 이 남자에게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소질이 없는줄 알면서도 연극에 집착하는 여인, 그런 여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늘 불안하게 아내를 지켜보는 그녀의 남편,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어느덧 여인에게 깊이 빠져버리고 마는 주인공 사이에서 펼쳐지는 심리전은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꼭 야한영화라는 쪽에 초점을 맞춰서 영화홍보를 해야했을까 라는 아쉬움이 컸다. <정사>는 현대인의 고독을 짙게 느낄수 있는 영화였다. <바람난가족>을 보고 영화관을 나섰을 때만큼이나 머리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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