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말 나쁜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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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순(tlsskfk21)등록 2003.11.05 17:05
고 3을 총 결산한다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수능이라는 이름으로 결전을 치루는 오늘 사실 저는 오늘 아침에 애한테 부담될까봐 따라가지 않을라고 했는데 아파트 주차장에서 얼떨결에 차에 올랐습니다(옷도 집에서 입은채로 그대로) 시계(視界)를 완전히 가릴정도로 안개 자욱한 새벽길, 차 속에 앉아서 상기되어 있는 아이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뒤늦게 직장에 다닌다고 뒷바라지도 제대로 해주지 않은 엄마로써의 미안함 그럼에도 잘 참고 오늘까지 잘 헤쳐온 아이가 한없이 고마웠니다

수학능력 고사장인 금오여고에 가니 후배들의 북과 꽹과리 소리와 열띤 응원의 함성으로 가득하며 해마다 입시때면 텔레비젼 화면에서만 보던 바로 그 장면이 눈앞에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멀리 대구에서까지 일찍 오셔서 고사장에 들어가는 제자들을 하나하나 격려해 주시는 담임선생님을 비롯하여 참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불안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며 새처럼 파르르 떠는 아이를 향해 `시험 잘 치루라`는 말 대신에 손만 가만히 쥐어주고 떠나보냈습니다 교문안으로 올라가는 딸아이의 어깨가 왜그리 좁아보이던지 눈물이 피잉 돌았습니다

교문을 경계로 교문안과 밖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처럼 느껴질 정도로
멀고 멀어 보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고3이라는 이름으로 그 지옥같은 일년을 보내고 시험을 치룰 아이를 생각하니 왜 그렇게 가엾고 측은하던지요 돌아오는 길,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며 연신 눈물을 닦으며 집에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의 방문을 열어보니 책상위에 널부러진 책과 참고서 모의고사 시험지들이 널부러져 있고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티셔츠와 청바지등등 방안이 말 그대로 엉망이었습니다 그만큼 엄마도 아이도 바쁘게 살았다는 얘기지요 털고 닦고...차곡차곡 아이의 방을 정리해주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는 정말 나쁜엄마였습니다

초등학교때는 아이한테 가끔씩 이런말을 했더랬습니다
"이 엄마는 '공부해라 공부해라' 라는 말은 정말 하기싫으니 느네가 알아서 스스로 공부해 주려므나` 숙제는 필수 단 그 대신에 오늘 배운것 30분 복습과 내일 배울 과제 예습30분 이것만 지키면 애들 학원다니는 시간에 온종일 놀려줄께 `하면서 공부를 우회해서 시켰습니다

그 방법이 주효했던지 초등학교 내내 공부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만큼 잘 해주었고 중학교때도 그런대로 상위권으로 잘 해 줬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서 애는 엄청 힘들어 했습니다(비교적 공부좀 한다 하는 애들이 모인 학교인지라) 해도 해도 성적은 오르지않고 더우기 내신에서 손해까지 감수해야 되니...

그런 아이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저는 곧잘 늘 애를 향하여
`힘들고 힘들어도 3년만 고생해라
3년만 고생하면 학벌지상주의인 이 나라에서 50년이 보장된다
장사하는 분들이 고작 20퍼센트의 마진을 위해 그토록 고생하는데 이 얼마나 남는 장사냐 하면서 3년만 죽었다치고 3년만 고생하여 좋은학교에 가면 좋은직장 보장되고 좋은 배우자 만나고... 확률까지 운운하며 은근히 `이 얼마나 수지맞는 장사인가`를 강조했으니...
그 뿐이 아닙니다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컴퓨터라도 할 양이면 마음속으로는 `너 지금 때가 어느땐데 공부하지않고 뭐해 `하고 있으면서도 어깨를 툭치면 `너 요즘 공부하느라고 엄청 힘들지?`하여서 아이를 책상앞에 원위치 시켰으니 이 얼마나 교활하고 나쁜 엄마입니까?

저는 정말이지 나뿐엄마입니다 오늘 아이의 방을 치우며 많은 반성과 함께 무엇이 진짜 아이를 위하는 일인가를 생각해봤습니다 이제 몇 시간후면 지긋지긋한 시험을 치루고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아이가 돌아오겠지요 그 아이한테 첫마디를 뭐라고 건넬까 생각해 봅니다 핼쓱한 얼굴로 현관에 들어서는 아이한테 `시험 잘 치루었니?`부터 묻기보다 `고생했다 많이 힘들었지?` 라는 말을 애드립이 아닌 진심으로 말하며 가볍게 안아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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