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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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영(bgsdy)등록 2003.11.06 18:32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그가 4부로 나누어 기술한 산문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신은 죽었다고 했다. "신이 죽었다"라고 했지만 정확한 표현은 무슨 말끝에 "저 성자는 숲에서만 살다 보니 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이라고 혼잣말을 한 것이 전부다.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죽었다고 말하는지 구체적인 기술은 없다. 그런데도 그의 한마디는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종교계로부터는 신을 부정한 이단아로 규정지어졌다.

니체가 그 말을 한 이유는 인간을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성자는 자신은 인간보다 신을 더 사랑하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고 대답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었다.

물론 화자(話者)를 설정한 자나 뒤에서 조종한 사람이 니체였기 때문에 남이 그 말해서 난 이렇게 말했다 라고 변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그의 주장은 인본주의에 근거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거두절미하고 "인간을 사랑한다" 는 부분은 모른 체 하고 '신이 죽었다' 라고 말한 부분만 가지고 늘어졌을까.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신을 믿는 이유의 대부분이 기복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복신앙은 복을 받기 위해서는 신께 절대복종하고 신을 부정하는 어떠한 것도 용서할 수 없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폐쇄와 독단으로 흐른다는 것을 말한다.

인류역사와 함께 지속되는 것 중에 하나가 종교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동물이라서 신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믿어야할 만큼 나약한 존재다.

무엇이 사람을 나약하게 하는가. 그것은 죽음이라는 절대명제에서 출발을 한다. 너도 죽고 나도 죽어야 하는.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 이후에 오는 시간 바깥의 영역을 생각한 것이다.

이것 또한 '죽는다' '죽겠다' '죽을 것 같아' 등등의 상황을 설명하는 언어가 없었다면 가지지 않아도 될, 모르고 살다 죽어도 될 자연현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히 살수는 없는 것일까. 시간 이후에도 살 수 있다면 영생을 얻지 않을까. 시간과 상관없는 신은 절대전능의 권위를 가졌다. 그래서 인간이 나약해지면 나약해질 수록 신에게 의지하려는 욕망이 더 강해진다.

나약하다는 것은 비겁하다는 말과 맥이 통하고, 비겁하다는 것은 자신밖에 모른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세상 이치라는 것이 참으로 공평해서 한쪽이 잘되면 다른 한쪽이 못되고, 한쪽에 곳간이 차면 다른 곳이 비어있게 마련이다. 하느님도 인간에게 동시에 두 가지 재능은 주시지 않았다. 이것 또한 신의 이치다,

지구촌 모두 골고루 잘 먹고 잘살고 근심 걱정 없이 오래 살 수 있다면, 날마다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면 신이 뭐 그리 필요하겠는가. 혹자는 죽어서 좋은 곳에 가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지만 성경말씀에도 죽은 자가 산 자만 못하다고 분명하게 못박았으니, 기복신앙의 뿌리는 살아서도 잘 살고 죽어서도 잘살겠다는 이기심일 수도 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한 것은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소중함 보다 신을 더 위하는 사람들에게 종교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자연' 이란 말은 스스로 '自'에 그러할 '然'의 합성어다. 스스로 그렇게 있었으니 처음에도 그렇게 있었고 다음에도 그렇게 있는 것이 자연이다. 종교 또한 인간의 내면에 누군가를 의지해야하는 속성을 지니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면 처음부터 신이 있어야할 개연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개연이라는 것은 꼭 그래야만 하는 필연이 아니라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사항이다. 난 하느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틀림없이 그렇다라고 믿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하느님보다 사람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교회에 나간지도 한참 됐고 앞으로도 나갈 계획이 없다.

종교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인간의 법으로 규제할 수 없는 훨씬 고귀한 형이상학을 다룬다. 그래서 종교는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일 수록 더욱 필요하다. 다만 아전인수나 취사선택을 하면 믿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거다.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이 태초에 엿새에 걸쳐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휴식을 취했
다고 했다. 그래서 종교, 특히 기독교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심히 일하고 주일날은 쉬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주 오일근무는 선택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거의 정착단계에 들어갔다. 신을 사람보다 더 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한 것보다 더 잘못된, 신의 섭리를 완전히 부정하는 잘못된 처사다.

그런데도 직장에 다니는 교인들은 삶의 질을 향상시킬 계기가 마련된 것 같아 좋기만 하다.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입으로 회개하고 반듯하게 사는 척 하는 종교인들이 얼마나 자기 모순에 빠져 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종교도 맞추어 가야한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종교가 맞출게 따로 있지 종교를 지탱하는 창조론까지 시대 조류에 맞추어 변형시킨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웃기지도 않는 짬뽕이다.

사람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게 내 생각이
다. 그래서 신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신을 위해 존재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내는 헌금도 불우한 이웃에게 먼저 베푼 다음 내는 게 도리에 맞고 예배에 가기 위해 사람과의 약속을 어겨 그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면 그 사람이 그 날 아무리 은혜를 받고 감동을 했더라도 헛것이라고 믿는다

자신보다 못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사람과 사람사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할아버지를 믿어도 사람되기는 틀렸을 거라는 것과 또 그런 사람들 헌금으로 천당 가는 티켓을 사기는 어려울 거란 생각을 한다.

신은 니체가 죽었다고 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가슴속에서 죽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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