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병호위원장님에게 드리는 고언

경찰을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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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cycop)등록 2003.11.18 13:33

10. 26 비정규직 노동자 대회, 종로 3가에서 대원 집단구타와 장비탈취 ⓒ 이동환

이성적으로 그리고 당위성으로만 말할 때는 어떠한 경우에도 제압을 하는 과정에서도 필요최소한도의 물리력을 사용해야 하고, 제압을 한 후에는 오히려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하고 제가 일선에서 중대장을 할 때 실천하여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불상사가 벌어진 것에 대해 나이어린 대원들만을 일방적으로 혼내기엔 제 심정이 그리 흔쾌하지 않는 것은 왜 일까요?

위원장님뿐만 아니라, 민노총 집행부는 각종 매체의 인터뷰를 통하여 최근 노동자 집회시 경찰이 계속적으로 과잉진압을 해왔기 때문에 11월 9일의 상황은 지도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집회시위시 경찰이 강경대응을 해왔다고 흑색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26일 노동자가 집회중 분신을 한 집회이후 11월 6일까지 집회시위에 있어 경찰이 평화적 시위를 막거나 방해하고, 폭력으로 진압을 했기 때문에 11월 9일은 어쩔 수 없이 폭력시위가 되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답답하고도 우직하게 이에 대해서 논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11월 9일 쇠파이프와 화염병, 그리고 새총이 나온 집회는 명백한 폭력시위지만 그 이전의 집회에서는 경찰이 뭔가 과잉진압을 했나보다란 생각을 갖는 시민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찰은 지난 5월 1일 노동절 집회를 전환점으로 하여 '자율적 집회시위 보호방침'을 집회시위 대처 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11월 9일에도 12개 장소에서 집회후 시청앞 행사가 종료되기 전까지 교통경찰관을 제외한 기동부대는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충돌도 없었음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 경찰의 방침입니다.

특정시설 등에 대한 방어와 교통이 과도하게 제약되는 도로 점거 방지란 목표만 정해두고 경찰력을 최대한 자제하는 방침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대부분의 시위는 이런 범주안에서 평화적이고 준법 자율집회시위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단병호 위원장님과 노동단체에서 제기하고 있는 10월 26일 상황을 말씀드립니다. 저는 종로 3가 사거리에 있었습니다. 분신소식이 전해지면서 경찰은 평소때보다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기위해 기동부대는 탑골공원쪽으로 빼두었습니다.

그날 행진은 종로 3가에서 좌회하여 명동성당까지로 신고되어 있었습니다. 방송차량과 선두그룹은 폴리스 라인을 따라 종로 3가에서 좌회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간쪽에 있던 마스크한 일단의 시위대가 각목을 들고 폴리스 라인을 든 교통경찰관을 밀쳐낸 후 종로 2가쪽으로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탑골공원쪽에 있던 기동부대가 황급하게 시위대를 차단하였고, 이는 곧바로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솔직히 충돌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력행사였습니다. 시위인원에 비해 많지 않는 기동부대가 배치된 탓에 기동부대는 도로를 횡단하여 시위대의 전진만을 막는 수준이었습니다.

10. 26 방석모를 벗기고 구타하고 있다. 모자를 쓴 외국인도 가세하였다. 이 대원은 여성노조원들의 만류로 풀려났다. ⓒ 이동환

시위대는 기동대원들을 뜯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열에서 뜯겨 나온 대원들은 시위대속에서 집단 폭행을 당하였습니다. 그날 유달리 외국인 노동자들이 폭행에 많이 참가하였습니다. 여성노조원으로 보이는 시위대는 오히려 집단구타당하는 대원을 보호하려고 하였습니다.

다행히 말려주는 시위대도 있어 대원들은 방패와 방석모 등 장비를 모두 빼앗기고 나서야 시위대 뒤쪽으로 보내졌습니다. 무려 한개 중대가량의 대원들이 그렇게 끌려가서 집단구타당하고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그저 공방만하고 있었고, 2시간이 넘는 공방끝에 시위대가 빼앗은 장비를 모아놓고 불을 붙이는 시점에서야 해산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10월 26일 종로 3가 도로점거 및 폭력시위를 본 또다른 관점입니다.

10. 26 빼앗은 장비를 모아놓고 방화, 이 시점에 경찰력이 투입되었다. ⓒ 이동환

그날 부터 시위대는 이전에 그나마 자율적 준법집회와 행진을 벗어나는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10월 29일 종묘공원 집회후 탑골공원까지 행진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시위대는 종묘공원에서 나오자 마자 양방향 전차로를 점거하였습니다.

선두가 종로 3가 가까이 가서 멈추어 선 상태에서 후미에서는 도로를 점거하고 반대편 차로라도 확보하여 교통소통을 시키려던 경찰과 충돌하였습니다. 돌과 빈병 등을 투척하여 기동대원이 아닌 경찰관 1명이 눈주위에 2센티 가량 찢어지는 중상을 입었고, 시위대는 경찰의 고착작전으로 종묘공원안으로 도주하였습니다. 결국 폭력시위 후 행진은 무산되었습니다.

10. 29 종묘공원 집회, 행진이 시작되자 마자 양방향 전차로를 점거하는 시위대 ⓒ 이동환

11월 6일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집회를 하고 종로 5가를 우회하여 종로 탑골공원앞까지 행진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종묘공원 앞을 지날 때까지는 인도에 가까운 도로의 한 개 차로를 비워두고도 굳이 중앙선까지 점거하면서 행진하는 것외에는 별다른 상황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탑골공원앞에서 약속된 종료지점을 지나 계속 행진하겠다는 시위대와 이를 가로막는 경찰이 배치되면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위대 선두와 경찰 기동부대가 가벼운 몸싸움을 하고 있는 것까지는 통상적인 마찰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단의 사수대들이 마스크를 한 채 각목을 들고 행진대열을 이탈하였고, 곧 중앙선 반대쪽 차량사이로 들어가 양방향 전차선을 점거해버린 것입니다. 경찰은 일단 교통경찰관으로 하여금 중앙선 안쪽으로 들어가기를 경고하고 설득하였으나, 시위대는 돌과 빈병 등을 던지며 교통경찰관을 폭행하였습니다.

11. 6 탑골앞 양방향 전차선이 점거된 상태(세운상가쪽 교통폐쇄회로 화면), 이후 반대편에 있던 경찰력이 투입되었다 ⓒ 이동환

그래서 길 건너편 시사영어사쪽에 있던 기동부대가 투입되었습니다. 많은 매체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그래서 기동부대가 측면에서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상황은 쉽게 끝났습니다. 각목을 든 시위대는 이내 진압되었고, 일부 시위대는 탑골 공원옆에 있는 순찰차량과 오토바이를 손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이 대목이 기동대원들이 골목길까지 쫓아들어간 원인이었습니다.

원인은 그러하지만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철봉까지 뜯어 공격하는데 흥분한 대원들이 골목길까지 추적해 들어간 것은 과도했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전을 들으며 교통 폐쇄회로를 보면서 모니터하는 저로서는 골목길안까지 진입한 대원들이 느낀 현장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릅니다.

이 날 각목 33개와 쇠파이프 1개, 죽창 3개와 휘발유 20리터들이 1통을 시위대로부터 압수하였습니다.

11월 9일 시청앞 집회를 끝낸 집행부와 1만 5천명의 시위대가 태평로를 점거하였고, 100여명의 사수대가 시청뒷길, 즉 프레스센타 옆길을 통해서 기동부대를 선제공격하고 새로 투입된 기동부대에 의해서 대부분 체포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11월 9일 경찰은 행사전에 행사장 주변과 행진로를 미리 수색하여 위험한 시위용품인 각목 80여개, 공병 235개, 쇠파이프 8개, 돌 15포대, 시너 18리터들이 12통을 압수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3만 5천여명의 군중이 집결하고 행사가 시작된 후 번호판을 청테이프로 붙인 차량이 무대쪽으로 오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은 주최측에 확인을 요청하였습니다. 당시 이미 집결한 군중들을 자극시키지 않기위해 관할 경찰서장이 정복경찰관 10여명을 대동하고 그 차량과 내용물의 확인을 요청하였으나 사수대에 의해 밀려 나온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차량운전자가 모처에서 검거되어 행사장에 화염병 30박스를 내려준 사실이 나중에 확인되었습니다.

그 당시 관할 경찰서장은 분명히 주최측에게 내용물이 화염병이면 자진 제출할 것과 절대 화염병 사용은 안된다고 경고하였고, 주최측에서는 부인을 하였습니다. 무대근처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행사가 종료되기 직전인 오후 4시 25분경, 복면에 쇠파이프를 든 사수대와 일군의 참가자들이 행사장을 빠져나와 을지로 입구쪽으로 먼저 이동하였습니다. 쇠파이프로 무장을 한 사수대는 운행중인 차량을 세워 우회토록 하면서 을지로 입구 로타리를 점거하였습니다.

11. 9 태평로쪽에서 집행부와 경찰이 차벽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사이, 쇠파이프를 사수대와 일부 시위대가 을지로와 남대문로를 점거하고 있다. 이들이 종로로 이동, 화염병을 투척하였다. ⓒ 이동환

그리고 일군의 참가자들은 소공로를 빠져나가 한국은행을 돌아 다시 롯데백화점쪽으로 몰려오면서 남대문로를 점거하고, 그 시위대들은 을지로입구로타리를 점거한 사수대와 자연스럽게 합류하였습니다.

태평로쪽에서 경찰의 차벽과 공방을 벌이던 시간, 사수대와 시위대는 을지로 입구 로타리부터 롯데백화점을 하염없이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장장 1시간 이상을 그렇게 점거하고 있으면서 그 일대 교통을 완전히 봉쇄해버렸습니다.

그러나 경찰력은 투입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물리적 충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오지 않자 사수대가 앞장서고 시위대가 따르는 형태로 광교를 지나 종로 1가에서 좌회하여 경찰이 차벽을 치고 있는 교보빌딩옆으로 전진하여 왔습니다.

이미 화염병을 나누어 가진 상태에서 전진해 온 것입니다. 과거 일단 시위대가 먼저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난 뒤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들고 나타나던 시위양상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습니다. 그것은 '사수'가 아니라 '선제 공격'이었습니다.

그 당시 종로는 동아일보와 교보빌딩옆 비각을 잇는 경찰의 차벽과 이를 보호하는 몇몇 중대가 있었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경찰력은 태평로와 세종로 점거를 방지하고 미대사관 등 특정지역을 보호하는 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약속대로 한다면 시청앞 집회를 마치 집회 참가자들이 무교로를 통해 이동하여 교보빌딩옆에서 촛불집회를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방침은 태평로, 세종로, 특정지역 방어일 뿐이었습니다.

그 다음 상황은 각종 매체에서 보도한 내용과 대동소이합니다. 오마이뉴스 동영상에 길가던 시민도 폭행했다는 부분은 집회시위현장을 모르는 지적입니다. 대부분 폭력시위자는 인도로 몸을 피합니다. 그리고 시위가 격렬한 곳의 인도에 그대로 있는 분들은 십중팔구 시위대의 일원입니다. 바로 화염병을 던지고 인도로 피하더라도 그것을 목격한 대원들은 추적하기 마련입니다. 화염병 투척자를 검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위대는 가로막거나 체포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 이전의 상황과 같이 연결되지 않는 단편적인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경찰이 괜한 사람을 잡는 것처럼 보이는 때도 있습니다. 이점은 체포된 사람들이 어떻게 사법처리되는가를 두고보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 무고한 사람을 체포했다면 독직으로 경찰관이나 대원이 처벌받습니다.

교보빌딩 근처에서 화염병 공방시 너트를 넣고 쏜 새총과 너트 ⓒ 이동환

단병호 위원장님 그리고 집회시위 집행부에게 부탁드립니다. 인원이 너무 많아 통제되지 않을 위험이 있는 집회시위는 자제해 주십시오. 그런 조짐이 보이면 최대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설득해 주십시오.

11월 19일 집행부에서 통제하지 못했다는 일부 극렬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어두워진 밤에 이를 막는 경찰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이런 사태가 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이 다치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 경험칙상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법과 제도가 아닌 사람의 이성과 양심, 그리고 주변 상황에 휘둘려지는 사태가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과 안전'에 중점을 두어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것이 분명 경찰의 몫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의 노력만으로는 그런 불상사를 막을 수가 없는 것이 또 현실입니다.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언론에 알릴 어떤 수단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언론이나 여론은 주장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물리적 충돌에 더 관심을 집중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불쌍한 것은 다치고 상하는 노동자와 경찰관들입니다.

같이 시위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안전에도 유의하여 집회시위를 이끄는, 그런 책임있는 자세를 취하는 민주노총의 집행부가 정부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할 때 국민들은 호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정통성의 시비를 받던 정권아래에서는 물리적 충돌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그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정부가 물러서기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단병호 위원장님께서도 과거 정권도 지금처럼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란 언급에서 혹시 현재를 과거의 잣대로 판단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경직되었다고 여기는 경찰도 변하고 있습니다. '집회시위현장에서 불필요한 경찰력을 철수시키라'고 수뇌부를 비판했다가 인사조치를 당한 경찰관을 다시 경비실무자로 불러들여 '어떻게 하면 물리적 충돌이 없이 집회시위 경비를 하느냐'를 연구하게 하고 이를 시행하게 하는 경찰조직입니다.

과거의 이미지를 덧씌워 투쟁의 수단으로 쓰기엔 결코 만만하지 않는 경찰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당당하게 할 수 있을만큼 증거도 확보하고 있는 경찰입니다. 100%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인권과 안전'에 최우선하고 '적법절차'를 먼저 지키려고 노력하는 경찰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물리적인 충돌로 뭔가를 얻어내겠다는 생각은 더이상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결사체로서 여론을 환기하는 능력도 가져야 하고, 복합적인 정치적 환경을 이용하여 정치권이나 정부를 압박하는 방법을 물리력이 아닌 이성적으로 찾아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귀를 찢는 소음에 외면하게 되는 외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국민들의 귀를 자연스럽게 기울이게 할 수 있는, 낮지만 알맹이 있는 메시지 전달이 더욱 효과적일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노동운동의 방향을 이끌어 내고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신사고의 노동지도자를 육성할 생각은 없으신지…. 너무 답답하고, 이런 현실이 한 경찰관에게도 고통으로 다가오기에 드리는 고언입니다.

단병호 위원장님! 더 이상 노동자끼리의 물리적 충돌없이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집회시위가 되도록 노력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경찰관도 열악한 근로조건과 임금속에 살아가는 근로자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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