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의 반란

네 번째 전시회를 준비하는 주부들

검토 완료

마동욱(madw)등록 2003.11.22 10:46

2003년 11월 김상현 팝콘 스케치 주부회원의 "귀가" ⓒ 마동욱


전남 장흥군 장흥 공공도서관에서는 매년 11월이 되면 주부들의 전시회가 열린다.
금년에는 11월27일(오후 2시 초청)부터 30일까지 4일 동안 장흥에서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주부들의 모임인 팝콘 스케치와 연문회가 공동으로 작은 전시회를 준비하였다.

그림을 그리는 주부들 팝콘 스케치 전시회

팝콘 스케치가 장흥 공공도서관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00년부터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뉘어 두 번에 거쳐 마련한 다양한 문화강좌가 계기가 되었다.
처음 뎃생 스케치반을 운영하면서 장흥 회덕 중학교 미술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전상보 선생(현재는 목포 제일고)을 초청하여 3개월 동안 미술 강좌를 진행하였고 3개월의 강습기간이 끝나고 강의를 들었던 20여명의 주부들이 팝콘스케치라는 모임을 만들면서 전상보 선생의 약 일년간의 지도가 이어지게 되었다.

전상보선생이 목포로 전근을 하면서 2001년부터는 전상보선생의 추천으로 장흥읍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위명온선생이 바통을 이어받아 장흥 공공 도서관에서 미술 강좌를 시작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명온 선생 역시 3개월간의 강습을 받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2001년도부터 매주 수요일 그림지도를 계속하면서 매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2003년 11월 석성자회원의 작품 ⓒ 마동욱


2003년 현재 이사를 가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빠져나간 주부들을 제외하고 2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팝콘 스케치 회장을 맡고 있다는 정자영(41)주부는 2000년도 상반기 문화강좌가 처음 시작 될 때 친구의 소개로 참여하게 되었다.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그림반에 나가 친구들과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도 했었는데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 뒷바라지 하며 살다 보니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게 세월만 훌쩍 갔다. 뒤늦게 꿈에 그리든 그림을 다시 배우고 직접 그리면서 전시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보람되고 잃었던 자신을 찾게 된 것 같다고 한다.

“남편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나 보다 오히려 좋아하며 미술 재료들을 준비해주고 뒷바라지를 잘 해준다. 심지어 집에 화실까지 마련해주겠다며 나서는 통에 사실 고마우면서도 아직 능숙한 솜씨가 아니라 부끄러움이 앞선다.

아이들까지 엄마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친구들에게 엄마를 자랑하고 친구들을 집까지 데리고 와서 내 그림을 보여줄 때 한편으로 가슴이 뿌듯하며 그림을 시작했던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 하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만자(39) 주부는 결혼하고 오직 집안일에 파묻혀 살다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여 준다는 아이들의 이야길 듣고 도서관에 나갔다가 뎃생 스케치를 무료로 가르친다는 포스터를 보게 되었는데 “어찌나 가슴이 떨리던지 어릴 시절 그토록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생각이 나 당장 접수를 했다.

2003년 김옥금회원의 "어느 노모의 오후 " 천관산 아래마을에 집나간 며느리가 남겨 놓은 손주와 단둘이 살고 있다고 한다. ⓒ 마동욱


그림을 배우기 위해 매주 수요일이 다가오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즐거워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2000년도에 첫 전시회에 참여하고 내가 직접 그렸던 그림이 액자에 넣어져 걸어지는 걸 보니 너무 좋아 식구들을 다 초청하여 그림을 보여주었다.
전시회에 왔던 남편과 아이들이 나보다 더 좋아했다.“거들었다.

20여명의 주부들 모두가 평소 집안일에 묻혀 자신의 꿈을 펼치거나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식구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가 뒤늦게 시작한 그림공부를 하면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3년 가까이 그림공부를 지도해주고 있는 위명온 선생은 주부들이 그림을 배우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집안일에만 묻혀있던 주부들이 새로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견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팝콘 스케치가 날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장흥 공공 도서관에서 장소와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이젤이나 석고등을 제공해주고 그림을 마음 놓고 그릴 수 있도록 많은 부분에 배려를 아끼지 않았기에 가정밖에 몰랐던 주부들이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특히 장흥 공공 도서관 송영임관장이 누구 보다 여성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을 해주어 벌써 네 번째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2003년 11월 이만자 회원 늘 바다를 보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고향을 담고 싶었는데 어느 날 카렌다에서 보았던 풍경이 생각나 자신의 마음을 담아 재현하여 보았다고 부끄럽게 말했다. ⓒ 마동욱


2003년 네 번째 전시회는 전시회 도록도 처음으로 20여명의 작품을 함께 실었다.
도록을 보면서 회원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 더욱 많은 주부들이 가정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함께 동참하여 숨겨진 재능을 찾고 삶의 활력소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위명온 원장은 말했다.

전시회 도록 첫 페이지에 회원들의 초청인사말이 주부들의 마음을 잘 전달해주고 있는 것 같다.
“바싹 마른 장작개비처럼 물기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나이테를 그을 이 가을!
씽그대 위에 둔 ‘바케트빵‘을 커피한잔과 함께
불혹의 점심을 먹기 위해 칼질합니다.

아, 갓 구었을 때의 향기롭고 부드럽던 것과는 사뭇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고 그 귀한 것 버릴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그 빵을 사려했던 때의 본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간절했던 맘이 퍼석이는 마른 빵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이처럼 시간이 흐르더니 우리네 가슴 속 가득한 열정이 사르러질 듯 합니다.
주체할 수 없이 넘치던 그 그리움과 열정 다 어디로 밀어냈는가 싶습니다.
언제 그랬냐 싶게 오간지 모르게 그리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미영 꽃 닮은 팝콘의 열정 벙글었습니다.
가만 가만 내밋 거리는 순한 향기 따라 가뿐한 발걸음 모두어 주시옵기를....“

2003년 11월 전시회 준비를 앞두고 손님맞을 준비를 위해 토론에 열중하는 연문회회원과 팝콘스케치 회원들 ⓒ 마동욱



글을 읽고 시를 쓰며 매주 한번씩 독후감을 쓰는 연문회 전시회

“연보라 깨꽃이 질 무렵 꽃은 마르고 쭉정이 만 남습니다.
꽃 대궁 털어 보면 깨알 같은 사연 쏟아집니다.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문 깨와 검불이 뒤섞인 것을 어머니가 그랬듯 까부르고 골라냅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좋은 그림 같은 풍경 등을 그려보려고 노력 할 뿐입니다.
늘 부끄러운 ‘마당’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소박한 꽃도 심어보고 익을 대로 익어진 가을별도 불러왔습니다.
물 한 번 부어주시고 흙도 한 줌 얹어 주세요.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길 일러주신 고마운 분들께 들꽃 한 다발 전합니다.“

연문회 회원들이 손님을 초청하기 위해 만든 초청의 글이다.

주부들이 자신이 쓴 글을 모아 네 번 째 작은 작품집을 내고 이쁜 그림과 함께 시어들을 정리하여 시화전을 꾸미게 된다.
두 번의 전시회는 장흥 공공 도서관에서 연문회와 팝콘 스케치가 날 자를 달리하여 작품 전시회를 시작해오다 지난 2002년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층을 나누워 함께 손님을 초청하여 작은 음악회를 열면서 손님맞이에 들어간다.

연문회가 처음 만들어지게 된 것은 지난 2000년도 하주자(39) 주부와 심정희(45) 주부등 장흥에 살고 있는 주부들이 광주까지 다니면서 독서강좌를 들으며 푸른새암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장흥의 주부들에게 독서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주부들은 장흥 공공 도서관에서 장소를 제공받고 매주 금요일 날 회원들 스스로 자비를 모아 직접 강사를 초빙하여 강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강의를 맡게 되는 함진원(시인) 선생도 주부들이 직접 초청했으며 함진원 선생은 강의를 시작하면서 주부들에게 독서지도사라는 것을 알려 주었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주부들에게 직접 도서를 선택하여 주며 도서를 읽고 토론을 하고 독후감을 써보게 했다.
처음엔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4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번 4시간씩 반복하여 단편소설을 읽고 서로 토론을 하며 독후감을 쓰다 보니 조금씩 말문도 트이고 자신들의 생각들도 말할 수 게 되었다고 한다.

연문회 1기생인 채동화(38)주부는 독서 강좌를 들으면서 “책을 선택하여 읽고 일주일에 한번 회원들이 만나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를 하고 독후감을 쓰면서 예전에 슬쩍 보고 넘겼던 책 페이지가 잘 넘겨지지 않는다.
단편 소설을 볼 때 해설가의 해설을 읽고 나면 자신의 생각이 묻혀 책을 읽을 때 결국 해설가의 잘 정리된 생각들을 벗어나지 못해 지금은 책을 읽기 전에 절대로 해설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회장을 맡고 있는 문창숙(38)주부는 아직 인터뷰를 하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많다면서 자꾸만 거절을 했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그래도 남이 보았을 때 참 좋은 글이라고 생각 되었을 때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부들이 모여 책을 읽고 자신이 쓴 글들을 모아 네 번째 시화전을 열면서 작품을 모아 한권의 작은 시집으로 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어렵게 허락을 받았다.

“그동안 오직 집안일에 묶여 하고 싶은 일도 못하면서 일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고 보낸 세월이 연문회에 참여하면서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이제 한달이면 최소한 여섯 권의 책을 보며 책을 읽고 서로 토론하고 독후감을 발표한다.”고 수줍게 밝혔다.

2003년 11월 27일 손님들 앞에서 부르게 될 노래를 연습중인 회원들 ⓒ 마동욱


장흥 장평이 고향이라는 문창숙(회장)주부는 “달맞이꽃 외등 달고” 연문회 제4회 글 모음집에 늘 친정집을 오가며 탐진 댐 건설로 없어지는 유치마을을 보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유치를 지나며

마을 이루었던 자리 평지되고
이방인들 둥지인양
현장 사무실 서 있다.

여기 저기 철근 콘크리트
천 년 만 년 누릴거라 으름장을 놓고
수몰선 지휘 아래
뿌리 깊은 당산나무도 무릎을 끓었다.

떠나지 않을거란
마을 사람들 맹세도
거대한 중장비에 헐리우고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자락에
바람이 혼자 울고 있다.

떠나 가는 이들에게
그리움은 강물이 되고
도로 옆 무궁화 꽃만
고향으로 열고 있다.“

주부들이 시골 마을에 살면서 문학에 심취되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젊은 날의 문학소녀들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2003년 11월 연문회 회원들의 작품집 ⓒ 마동욱


1기생인 채동화주부는 침묵 2라는 글에서 시간의 흘러감을 자신의 느낌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침묵 2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 갈
어제와 같이 배열되는 시간 속에서
세상을 떠나는 시간 속에서
침묵을 한다.
계절과 계절사이를
관계와 관계 사이를

청소를 끝내고 시간을 본다.
모래처럼 빠져나간 소리 있다
눈에 뜨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벗어날 수도 없어
시간의 그물에 갇힌다
시간에 눈먼다“

연문회의 시화전과 글 모음집을 관심 있게 보면서 주부들의 활동에 늘 찬사를 보내주고 있는 윤수옥 장흥 문화원 원장은 자기를 가꾸는 사람에게는 늘 상 희망이 있고 새롭게 모습을 바꾸는 성숙함이 있으며 주부들 각자가 따뜻한 마음으로 풀어낸 글들이 보배스럽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3년 동안 연문회를 지도하고 있는 함진원 선생은 광주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일주일에 한번씩 장흥을 오가며 주부들을 지도하고 있다.
“3년 째 주부들을 지도하면서 연문회를 주부들의 알찬 동아리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주부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엔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책을 많이 읽으면서 주부들의 내성이 강해져 아이들에게도 매우 유익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엄마들이 글을 많이 읽게 되면 그 영양분이 아이들의 성장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주부들의 글쓰기도 이제 제법 자리가 잡혀가고 있음이 이번 전시회를 통해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장흥 공공 도서관에서 장소를 제공하여 시작된 독서 강좌나 미술 강좌가 하나의 동아리로 엮어져 전시회를 열고 작품집을 만들어내면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강좌에 참여하고 있는 강사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주부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앞으로 더욱 많은 주부들이 참여하는 문화 동아리가 탄생되기를 바라며 이 가을 더욱 풍성한 주부들의 아름다운 반란을 기대해 본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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