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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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anar)등록 2003.11.2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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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인 기다림은 아름답다. 수동적인 기다림은 망부석으로 굳어가지만 능동적인 기다림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감한다. 패배했다고 해서 저항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땅 속으로 몰래 숨어들 수밖에 없을지라도 두더지의 굴파기는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 날 굴로 숨어든 망각된 자들, 배제된 자들이 유령처럼 돌출하고 돌파구를 낸다. 두더지는 항상 움직인다. "느린 성급함으로, 조급한 끈질김으로"(241쪽)

벤사이드의 '두더지학taupologie'은 셰익스피어Shakespeare와 맑스Karl Marx에서 두더지의 의미를 끌어낸다. 맑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 나오는 늙은 두더지는 연극 <햄릿>에 나오는 암살된 왕의 배회하는 유령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이 항상 '눈에 보이지 않는 파들어 감'의 역사이다. 지하의 역사이며 되돌아오는 자들의 역사, 진군과 이행의 역사이다. '혁명은 자신의 길을 낸다. 혁명은 여전히 시련을 거쳐가고 있다.' 혁명은 근본적으로, 그리고 깊숙이 뿌리까지 긁어내고 침식해 들어간다"(215쪽).

글쓴이/옮긴이 소개

글쓴이)다니엘 벤사이드Daniel Bensaid(1946~):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 당시 트로츠키주의자로서 낭테르 대학의 학생운동을 이끌었으며, 지금은 프랑스 좌파를 대표하는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다. 현재 파리 8대학(생-드니) 철학 교수이며, 제4차 인터내셔널의 프랑스 지부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LCR)의 핵심 활동가이기도하다. 프리드리히 니체, 발터 벤야민, 그리고 프랑스의 시인 샤를 페기에게 영향을 받았고, 주로 역사철학에 관심을 두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발터 벤야민, 메시아의 초병Walter Benjamin, sentinelle messianique>(1990), <때맞지 않은 맑스Marx l'intempestif>(1997) 등이 있으며, 최근 저서로는 <유령의 미소Le sourire du spectre>(2000), <불굴Les lrr ductibles>(2001) 등이 있다.
옮긴이) 김은주: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에서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스피노자의 무한성 개념과 그 존재론적 의미'가 있다.


이런 혁명은 '사건'을 통해 도래한다. 사건은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사건은 가능성의 장 속에 있는 어떤 비개연적 가능성이 부화됨으로써 불시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47쪽). 그렇기에 사건은 항상 불확실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혁명은 다시(re) 시작하고 새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발성의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건은 시간을 거스르고 흐름을 바꾼다. "사건은 늘 너무 조숙하게, 때맞지 않게 시간을 거슬러서 출현한다. 사건의 힘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사건은 '자신의 미래에서,' 자신이 창시하는 새로운 가능성에서 의미 있게 된다. 사건은 '자신에 대한 이해의 조건'을 자신 안으로 운반해 온다. 사건의 후예만이 이런 새로움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건은 가능한 것들의 뿌리에서 올라오기 때문이다. 사건은 가능한 것들이 놓인 지평을 바꾸고 '시간의 혁명'을 선언한다"(220쪽).

벤사이드는 능동적인 기다림을 위해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에게서 '불확정적 마주침'을,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에게서 '기적적인 사건'을,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에게서 '메시아 없는 메시아주의'를 끌어낸다. 알튀세르의 마주침은 세계의 우발성을 받아들이고 "역사의 현실만이 아니라 정치의 현실을 사유하는 데, 그리고 투쟁 속에서 이 양자의 절합을 사유하는 데 도움을" 주고 "정치와 역사의 관계를 반전시키는 길"(135쪽)을 제시한다. 바디우는 이 절합이 "마주침의 질서"에 속하는 사건 속에서 사유될 수 있음을 주장하지만 어느 순간 사건이 무르익을지를 얘기하지 않는다. 바디우의 사건은 "후기 알튀세르가 보여준 절대적으로 불확정적인 마주침 개념과 너무나도 흡사하게, 기적에 가까워져 버린다. 그리고 정치없는 정치는 부정 신학에 가까워진다"(158쪽). 여기서 벤사이드는 데리다를 끌어들인다. 데리다의 메시아는 "미래의 위협 앞에서 체념하고 마는 수동성을 의미하지도, 결코 상실된 과거에의 향수에도 속하지 않는다"(173쪽). 메시아는 다른 공간에서 도래하는 구원이 아니다. 오히려 메시아는 "살아 있는 과거의 사람을 나타내는지, 살아 있는 미래의 사람을 나타내는지"(175쪽) 알 수 없는 유령과 은밀한 공모를 맺는다. 이로써 "현재가 더 이상 과거에 의해 규정되지도, 미리 설정된 목표를 향한 방향성을 갖지도 않는 정치적 시간성이 출현하는 것이다. 가능성의 생성과 소멸은 바로 이 정치적 시간성이 전략적으로 분기되는 과정에서 매순간마다 결정된다"(78쪽).

이탈리아의 자율주의자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를 직접 언급하는 장은 하나이지만 사실 이 책이 겨냥하는 대상은 네그리인 것 같다. 책의 전체적인 구도와 핵심 키워드인 두더지라는 이미지가 그렇다. 이 책은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가 <제국>에서 주장한 "우리는 맑스의 늙은 두더지가 마침내 죽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제국으로의 현재의 이행에서 두더지의 구조화된 굴은 뱀의 무한한 파동으로 대체된 것처럼 생각된다.…단지 자신들의 고유한 역능을 집중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에너지를 팽팽하고 빽빽한 코일에 집중함으로써, 이런 뱀같은 투쟁들은 제국적 질서의 최고의 접합점들을 직접 타격한다. 제국은 표면적인 세계를 나타내며, 그 표면을 가로질러 우리는 어떤 지점에서도 그 세계의 가상적 중심에 직접 접근할 수 있다.…이러한 새로운 국면은 이러한 투쟁들이 수평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각 투쟁이 수직적으로, 직접적으로 제국의 가상적 중심으로 도약한다는 사실에 의해 규정된다"(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지음/윤수종 옮김, <제국>, 이학사, 2001)는 '탈두더지학'에 대한 반박이라고 할 수 있다.

벤사이드는 "제국이 배타적인 미국 중심의 것이 아니라 다극적이고 다중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전히 지배 질서의 위계와 국민국가들 간의 의존성을 조직화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205∼206쪽)고 주장한다.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론'은 제국을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로 해석함으로써 "최고 단계가 그 어떤 다른 출구도 없는 최종적 단계로 바뀌어 버리는 파국적 해석의 위험"(206쪽)을 안고 있다. 벤사이드는 그런 위험을 피하는 두더지의 '양면성'을 포착한다. 두더지는 "근대적인 동시에 탈근대적이다. 그는 자신의 '지하 리좀들' 속에서 눈에 띄지 않게 바삐 움직이기도 하며, 자신의 분화구에서 우레처럼 갑작스레 터져 나오기도 한다. 포스트모던의 철학적 담론들은 역사적인 거대 서사를 포기한다는 구실로 신비주의자와 비의 전수자 편에 선다. 더 이상 예언자가 없는 사회에 이제 점술가들이 있게 된다"(240쪽).

초월적인 존재나 법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속에 구멍을 파고 숨은 두더지가 변화의 사건을 기다리고 만든다. 이것은 "온통 저항과 거부로 이뤄진 능동적 기다림"(72쪽)이다. 두더지는 충실하고 참을성 있으면서도 성급하게, 느리면서도 완강하게, 지속적으로 활동한다. 이 저항은 "극단을 향해 직진하고 비타협적이라는 점에서는 절대적이지만, 주어진 상황에는 상대적이다. 이 때문에 저항은 아마도 '면밀한 계산가'라 할 수 있으리라. 그래도 역시 저항은 서투른 전술가이다. 시간이 되면, 상황이 긴박해지면, '저항은 막판 승부를 한다.' 그리하여 저항은 '미친 듯이 조급하게, 건너가야 할 공간을 튼다. 그리고는 틈새를 파내고 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친구 두더지와 저항이 맺는 혈족적 연관이다."(39쪽).

사파티스타의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얘기하듯이 두더지는 상대가 강한지, 약한지를 걱정하지 않고 "우직하게 자기 마음만을 늘 들여다본다"(마르코스 지음/박정훈 옮김,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 다빈치, 2001). 그래서 두더지는 자신의 '존엄'에 가해진 상처를 감내하지 않는다. 두더지는 능동적인 기다림으로 자신의 반란을 일으킨다. 그래서 저항은 항상 "저항할 수 없는 것에 저항하기"(37쪽)이다. 그런 저항만이 우리의 존엄과 존재를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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