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의 얼굴에서 미국의 오만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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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bangzza)등록 2003.12.15 10:41
미국의 '낭보'를 세계인이 함께 했다. 14일 미국은 CNN을 통해 후세인의 체포 소식을 지구촌 곳곳에 전파했다. TV 브라운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궁지에 몰린 범죄자만 있을 뿐이었다. 국가끼리 맞붙은 전쟁이었지만, 항복하며 조아리던 일본 천황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마치 맹수와 사육사 같았다. 미국인은 이라크 前대통령의 머리를 검사했고, 이빨을 살폈다. 미국 기자회견 현장에서는 환성도 터져 나왔다. CNN은 가장 무력한 후세인을 선택했다. 후세인 얼굴 대신 다른 인물들을 대입시켜 봤다. 이라크 국민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운 장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동시에 '세계 경찰'의 메시지도 전파했다. 까불지 말라, 미국의 말은 법이다.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지도자는 언제든 비참하게 전락할 수 있다. 약소국 지도자들을 겨냥한 일종의 경고 역할도 겸했던 셈이다.

후세인 '치아 검사'장면은 이라크 전쟁의 명분에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미국은 이라크 민중을 독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후세인을 테러단체의 수괴로 대접함으로써, 24년 동안 독재 치하에서 신음한 이라크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고 말았다. 독재에 대한 단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민족. 이라크 민중을 위한다는 미국의 판단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확실하게 뱉어준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호메이니 혁명으로 반미화된 이란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선택됐던 지도자 후세인. 미국은 후세인을 아랍 세력을 이끌만한 지도자로 추켜 세워주고, 이라크를 강력한 군사국가로 만들어줬다. 그러나 이란과의 10년 전쟁이 끝나고, 갑자기 이라크는 인권유린국가가 됐다. 미국으로 흥한 후세인, 미국으로 망했다.

아울러 CNN보도에서는 후세인 체포로 충만해진 미국의 자신감도 엿보인다. 만약 후세인이 이라크 민중에게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지도자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국민적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후세인을 훨씬 잘 대접(?)해줬을 것이 틀림없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체포보다 사살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어쨌든 후세인 충성파의 저항은 약화될 가능성이 높게 됐다. 하지만 이제 이라크의 저항은 질적으로 확연히 달라질 계기를 맞게 됐다. 후세인 재기라는 명분이 사라지고, 민족적 결집을 끌어낼 수 있는 '항미 성전'만 남게 됐다. 프랑스 외무장관은 "후세인 체포로 이라크 독재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게 됐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라크 저항 운동도 새로운 역사를 맞게 될 것이다.

끝으로 리영희 교수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 실린 1992년 3월 7일자 뉴욕 타임즈 기사를 소개한다. '1994-1999년 미국 군사계획 지침'은 오늘의 후세인과 미국을 이해하는 공식으로 충분한 활용 가치가 있다.

▲ 과거의 소련과 같은, 미국과 대등한 힘을 갖는 새로운 적대자의 출현을 허용하지 않는다. ▲소련의 후계자인 러시아 공화국 등의 현존 군사력을 조속히 무력화시킨다. ▲유럽에서는 통일된 독일, 아시아에서는 경제강국 일본의 강국화, 특히 핵 국가화를 사전 봉쇄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건 미국의 이익에 거추장스러운 국가나 세력은 '지금' 굴복시킨다. ▲지구표면상의 각 지역에 등장하려는 '지역적 강자'의 출현을 용납하지 않는다. ▲미국의 행동을 제약하던 소련이 사라진 이 기회에 각 지역 수준의 적대적 위험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조속히 처치한다.


외세의 힘을 빌어 권력을 장악했던 후세인의 치욕적 말로는 약소국 국민이 그들의 지도자를 어떤 기준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 주고 있다. 미국의 '국가이기주의'가 지속되는 한, 민족주의의 유효기간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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