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보게 작공 !

억울하게 죽어 간 한 참새에게 보내는 弔辭

검토 완료

장생주(saengju)등록 2003.12.16 11:00

여보게 작공 ! 왠지 마음이 떨어질 것만 같으이. 안타깝고 서운하기 이를 데 없네. 서럽고 슬프기 사 어찌 내 아버지 돌아가실 때만 할손가 마는 죽음이란 게 애닯기는 매 한가지가 아니겠는가? 어쩌다가 내집에 와서 우리와 함께 살았으면서도 난 자네들에게 별로 관심조차 두지 않았었다네. 자네네 식솔이 몇인지. 무엇을 먹고사는 지 무엇을 하며 소일하는지 ? 그저 아침저녁이면 언뜻언뜻 눈에 어리는 자네네 식솔들. 늘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살겠거니 싶었다네. 그런데 어느날 정말 우연히 세수를 하다 말고 쳐다 본 우리집 연탄보일러 굴뚝 연통 속에 자네의 차디찬 주검이 보이지 않겠나 ? 이 추운 겨울에 얼마나 추웠으면 따뜻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굴뚝을 찾았겠는가 ? 그런데 그게 연탄가스가 나오는 굴뚝인 줄 어찌 자네가 알았을 것인가 ?

여보게 작공 ! 미안하이. 무관심하고 무정하고 인색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의 집에 둥지를 틀고 살던 자네의 믿음과 안도가 비명횡사로 무참히 끝나 버린 자네의 일생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겠는가 ? 용서하게. 들에 나는 풀 한 포기.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에게도 사랑을 쏟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어찌 내가 감히 헤아리기나 하겠는가 마는 오늘따라 왠지 내 비정함이 부끄럽기 그지없네.

여보게 작공 ! 이 무슨 날벼락인가 ?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 그렇잖아도 자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데 웬 중년 사내가 내집 대문간으로 공기총을 들고 들어 와선 감나무 밑에서 자네네 식솔 하나를 들고나가고 있네 그려. 그래 이 무슨 운명인가 ? 연탄가스에 죽고 총에 맞아 죽고…정말 불쌍한 자네들의 목숨일쎄.

여보게 작공 ! 용서하게.백주에 총으로 한 목숨을 쏴 죽이고도 죄의식조차 없이 희희낙낙했을 저 사냥 군을 용서하게. 요즈음은 사람들이 전에 없이 표독해졌다네. 자네들 이사 어찌 인신매매니 살인 강도니 그런 것을 상상이나 하겠나 ? 그런데 요즘 사람 사는 세상은 사람이 사람을 팔고 사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세상이 되었다네. 그러니 그 누가 자네들 목숨 귀한 걸 생각이나 하겠는가 ?

여보게 작공 ! 그 동안 내집에서 기르는 가금 마냥 함께 살면서 조석으로 불러 주던 그 노래 소리 고마우이. 그리고 때로는 감나무 가지에서 때로는 담위에서 지절대던 그 속삭임도 정겨웠네. 늘 한가하고 여유가 있던 자네들. 그 작고 깜직한 생김새가 귀엽기도 했었네. 고 작은 입이며 발가락이 아기들 것인 양 곱기도 했었네. 흔히 사람들은 자네들을 남의 것이나 훔쳐먹는 날강도로 알고 미워했었네. 실은 나도 한때는 자네들을 미워한 적이 있었지. 아마 내나이 일곱 여덟살때 쯤이었을 것일세. 나는 학교 수업만 마치면 논두렁에 나가 자네네 떼거리를 쫓느라 애를 먹었다네. 생각해 보게. 어느 누가 자기 논밭에서 낱 알 하나라도 그저 가져가는 걸 좋아 할 사람이 있겠는가 ? 그러나 자네 일족들은 참 뻔뻔스럽더군. 염치가 없어. 대관절 안하무인이었네.

글쎄 세상에 자기 것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 사람도 죽으면 결국 한 줌 흙이 되는 건 자네들이나 마찬가지. 자기 것이라고 목 지어 놓은 것도 따지고 보면 어디 그 게 자기 것이던가 ? 소유하는 모든 것은 결국 남의 것인 것을 …그래도 생전에 좀 더 많이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만 가는데 자네들이 그 사람들의 것을 훔치다니 어디 말이나 될말인가 ? 그래 자네들 이사 그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자네들 것이라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네 만…

아무려나 내 어렸을 적엔 자네들을 지키노라 애를 먹곤 했었다네. 자네들에겐 허수아비도 소용없었고 새끼줄에 매달린 깡통도 소용없었다네. 그리고 짚으로 처녀들 머리를 따듯 땋아서 만든 뙈기라는 걸 쳐서 딱 ! 소리를 내도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네. 그러니 그 무더운 날 뙤약볕에 앉아 자네들을 지키기란 정말 고역이었네. 그러나 참으로 다행한 일은 우리 논배미 이웃 논의 논두렁에는 예쁘장한 소녀가 나처럼 자네들을 보고 있었네. 얼굴도 이쁘고 얌전했었지. 어릴 적이었지만 난 그녀만 보면 기분이 좋았었지. 어쩌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녀가 좋아 난 그녀네 논두렁으로 가서 이런 저런 예기를 나누다가 심심하면 그녀의 치마꼬리며 손목을 잡곤 장난을 치다가 논두렁으로 함께 뒹굴기도 하며 깔깔거리기도 했었지.

또 자네들을 생각하면 어느 해 겨울 이야기도 잊을 수가 없다네. 겨울이면 또 고 얄밉던 자네들이 인가를 찾아 들었거든. 때로는 마당에도 마을앞 짚더미 틈바구니나 마을 뒷녁 보리밭에 쪼르르 몰려들곤 했었지. 그럼 우리들은 고무줄 총으로 자네들을 잡기도 하고 삼태기에다 막대기를 받쳐 치를 만들어 두고 선 숨어 지키곤 했었지. 또 밤이면 횃불을 밝히고 자네들 둥지를 뒤져 단잠에 취한 자네들을 잡아선 어느집 사랑방 화롯불을 찾곤 했었다네.

그러고 보면 나 또한 자네들 못 할 일을 많이 한 사람일세. 나 역시 총으로 자네 식솔을 쏴 죽인 저 사냥꾼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

여보게 작공 ! 용서하게. 너무도 이기적이고 인색하고 무정하고 간악한 이 사람을 용서하게.

여보게 작공 ! 내 어릴 때의 추억과 향수가 얽힌 자네와의 정분. 결코 잊지 않겠네. 자. 이제 잘 가게나. 여기 내집 정원 한 구석의 꽁꽁 언 땅을 헤집고 고이 묻어 두고, 완도의 바닷가에서 가져온 갯돌을 비석 삼아 세워 두었으니 이제 모든 것 다 잊고 고이 잠들게나.

그 동안 내집에서 기르는 가금 마냥 아침저녁으로 노래를 불러 대며 평화를 구가하던 그 아름다운 목소리 ! 언제 다시 들을 수 있겠는가 ? 뭔가 사라져가는 것은 더욱 더 그리워지는 것인가? 내집에서 죽어 간 자네의 그 마지막이 왠지 안쓰럽고 측은해서 애꿎은 감나무만 쳐다보는데 감나무 가지엔 오늘따라 더욱 더 찬바람만 세차게 불고 있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게 삶이런가 ! 여보게 작공 ! 잘 가게나. 부디.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