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에 새긴 금강산

홍익대 학생들의 금강산 여행기

검토 완료

권윤영(hooko)등록 2003.12.16 11:46

홍익대 학생들이 금강산을 찾았다. ⓒ happyin

“휴전선을 건널 때의 그 기쁨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출발 당일, 처음 금강산에 간다는 기대감에 모두들 들떠 있었다. 휴전선을 지날 때에는 버스 안 곳곳에서 탄성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도착한 꿈에 그리던 금강산. 그동안 걸을 수 없었던 길을 교통수단도 아닌 자신들의 발로 밟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동과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홍익대 학생들이 금강산을 화폭에 담았다. 그리고 금강산의 절경과 감동은 눈과 가슴에 깊게 새겼다. 홍익대 스케치 단 50여명과 학생회 간부, 각 학과에서 선발한 일반 학생들, 교직원 7명 등 총 200여명은 2박 3일 일정으로 금강산을 찾았다.

미대 스케치 여행은 지난해부터 논의가 있었지만 북핵 문제로 올 하반기에서야 추진됐고, 이와 함께 간부수련회 역시 금강산으로 가자는 논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두들 처음 제안이 나왔을 때만해도 과연 이 일이 성사 될 수 있을까 하는 분위기가 태반이었다. 생각 외로 학교측과 이야기가 잘 풀려 육로 관광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금강산 도착 후, 학생들은 이리 저리 사진을 찍고 미대 학생들은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절경에 다들 넋이 나간 듯 그림을 그렸다. 특히 동양학과 학생들은 어디든지 주저앉아서 붓을 꺼내들고 그림을 그려 북한 안내원들도 젊은이들의 이런 모습에 많은 관심을 보였을 정도.

“금강산은 말로만 듣던 것보다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 절경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듭니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들 하며 환경보존이 정말 잘 돼 있어서 수심이 6m라는 옥류담은 바닥까지 훤히 보일 정도였죠.”

숙소에서 본 금강산. 오른쪽에 주체라고 써 있는데 오직 정으로만 글씨를 썼다고 한다. ⓒ happyin

상팔대에서 본 금강산. ⓒ happyin

금강산은 너무 아름다웠지만 북한 주민과 접촉하거나 마을들을 방문하지 못했고, 숙소 내에서 만의 제한 된 생활로 인해 북한에 대한 정취는 많이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을 학생들은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깐이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윤경회씨의 “그런 감흥이 없어도 우리가 북한 땅을 밟고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통일이 가까이 왔다는 증거”라는 말에 모두들 숙연해졌다.

금강산의 특이할 만 한 점은 곳곳의 바위에 쓰여 진 글귀였다. 우리나라 관광명소에 적혀있는 낙서들과는 사뭇 달랐다. 김일성 전 주석이 금강산에 대해 한 말들이며 머무른 곳 등이 너무나도 상세하게 기록돼 있었고, 그 문구들은 신성시되어 손으로 만지거나 손가락으로 가리켜서도 안 된다고 했다.

비룡폭포. 바로 이곳이 선녀와 나무꾼이 만난 그 장소다. ⓒ happyin

옥류담은 수심이 6m지만 물이 너무 맑아서 바닥까지 보였다. ⓒ happyin

교육학 전공 윤희윤씨는 “북한 사람들은 남한 학생들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금강산 곳곳에 안내원이라고 불리는 산림감사원들이 서 있었는데 머리를 염색한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대답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라며 “왜 우리민족의 고유한 검은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는지 모르겠다면서 강한 민족성을 나타낸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관광객에 대한 규제가 심하다는 것과 볼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지만 시간제한 때문에 마음껏 금강산을 누릴 수 없었다는 것을 너무나 아쉬워하는 홍익대 학생들. 하지만 이내 “눈과 마음과 사진에 담은 금강산의 영상과 다시금 되새겨본 통일의 의미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 하네요”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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