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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와 파멸 사이! 파병정국과 한반도 위기
우리는 지금 이라크 파병과 한반도 문제를 두고, 평화를 바라보는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드디어 이라크에서 무고한 한국인 희생자가 났는데도 오히려 이걸 기화로 전투병 파병을 서둘러야한다는 주장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미군의 한강 이남으로의 재배치를 어떻게든 막기 위해서라면 미국의 다소 무리한 주장까지도 무조건 들어주어야 한다는 데 이 나라 국회의원들은 273명 중 무려 147명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지지했다고도 한다.
분명히 이 땅의 냉전적 보수우익들은 총궐기에 나섰다. 그들은 기회가 되는 곳들마다에서 다음과 같은 논리를 유포시킨다.
"지금 우리 안보상황은 어느 때보다 위기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남침 전쟁을 획책하고 있는데 한반도 안보의 최후보루라 할 수 있는 한미동맹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악화되어 있어서 한반도 유사시 미국은 이제 자동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잇단 반미시위에, 이라크 파병까지 흐지부지 하는 모습은 동맹국 미국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어차피 우리 나라의 안보는 미국의 보호 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미국을 자극하지 말고 이라크에 전투병 위주로 속히 파병하여 미국을 돕고, 자존심이 좀 상하고 주둔 비용이 좀 더 들더라도 미군이 지금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묶어두는 게 우리생존의 필수사항이다."
이와 같은 그들의 주장에 대해 한마디 논평을 한다면 이것이다. '지나간 데이터와 허구의 논리에 의존한 거짓된 불안심리 유포를 통해 그들의 기득권을 영구히 지속시키려는 속셈이다.' 우리 이제 문제들을 파헤쳐 보자.
1. 한반도는 정말 위기인가?
그렇다. 그러나 북한의 남침위협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을 하루아침에 붕괴시키려 함으로써 생겨나는 벼랑 끝에서의 선택이 일으킬 수 있는(북한이 벼랑 끝에서 죽기 살기로 덤빌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데서 오는) 불안이다.
북한은 정말 남침할 것인가?
단언컨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북한은 결코 전쟁을 자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통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들의 지상과제는 생존이다. 90년대 이후 계속된 경제실패와 자연재해에 따른 심각한 식량난에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혁명 1세대의 잇단 죽음으로 인한 지도력 약화 등으로 악재가 겹쳤다. 게다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인한 외교안보의 축이 무너져 남북한 사이의 격차는 이미 되돌이킬 수 없을 만큼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고립감은 남북한 주요상황 비교만 살펴보아도 금새 알 수 있다. 2002년 12월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 인구는 4,734만 명(남한):2,225만명(북한)으로 2배가 차이나며, 국민총소득은 4,213억 달러:157억 달러로 26.8배, 1인당 국민총소득은 8,900달러:706달러로 12.6배의 차이가 나며, 수출입을 합한 무역 총액은 2,915억 달러:22억 달러로 무려 128배의 차이가 나는 것을 비롯해 모든 지표에서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남한은 선진국 대접을 받는다는 OECD회원국이기도 하다.
그나마 버팀목으로 여겼던 재래식 군사전력마저 이미 기울어가고 있다. 병력과 무기수에 있어서 북한이 2배 이상 앞선다고 하지만 현대전에서 있어서 단순한 수량비교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미 몇 차례의 서해교전에서 나타났듯이 북한의 전력은 숫자만 많았지 노후 되고, 성능 면에서 남한의 것에 견줄만한 것이 못된다. 게다가 120만 명의 과도한 병력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너무 부담스럽고, 훈련을 위한 연료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전쟁수행능력을 총체적으로 따져볼 때 최소한 남침을 시도할만한 충분한 전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위협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들의 낙후된 재래전력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이른바 대량살상무기가 있다. 우선 남한을 충분히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생화학무기가 개발되어 있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핵무기를 상당부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량살상무기들을 목표지점까지 유효하게 타격할 수 있는 스커드, 노동, 대포동 등 위협적인 미사일이 실전 배치돼 있다.
바로 이 지점에 한미 연합방위전력의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취약점을 상쇄할 수 있는 정보, 통신, 그리고 막강한 첨단무기의 화력을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다(주한미군 전력은 한미 연합방위전력의 약 30%를 차지). 무엇보다 유사시 한미방위조약을 근거로 자동개입 하여 본격적인 미 지상군의 개입이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현실적으로 분명 중요하다. 냉전성립과 유지과정에서의 미국의 책임은 둘째 치고라도 현실적인 위협을 억제하는데는 분명 미국의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남북한이 서로 전쟁을 일으킬 만큼의 위협이 상당부분 무력화될 때까지는 주한미군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남북한은 군축협상에 나서야 한다. 우리의 안보를 정말로 걱정한다면 언제까지나 미국이 우리 땅에 군대를 주둔하거나 한편이 쓰러질 때까지 무한 군비경쟁을 하려고 할 일이 아니라 서로 침공을 자신할 만큼의 전력이 되지 못하도록 줄여나감으로 성취하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간 위기구조를 온존시키면서 미군에 기대려는 미련함은 이제 끝내고, 그럼으로써 미군의 역할을 줄여가려는 노력이 지금부터 필요하다. 북한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대립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빈약한 국가예산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거의 파산상태의) 군비압박을 받고 있어 우리보다 더 군축을 원하고 있다. 북한의 살인적인 기아상태를 정말 끝내고 싶은 진심이 있다면 북녘 형제들을 위해서도 군축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란 그저 군사전력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만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전쟁을 일으키는 쪽에서는 전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분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북한이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가장 우선적인 질문. 전쟁에 이길 수 있는가? 앞서 말한 대로 반드시 보장하지 못한다. 50년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은 남한에 비해 압도적인 화력을 갖고서도 결국 엄청난 사상자만 낸 채 승리하지 못했다. 하물며 재래식 전력에서 결코 남한을 압도하지 못하고 미국의 첨단무기가 배치돼 있는 상태에서 북한이 제 정신을 갖고 남침한다는 건 생각하기 힘들다.
그러나 만약 북한이 군사적 승리를 자신한다고 할지라도 한반도에서 효과적인 생존이 가능할까? 그나마 한반도 전체를 책임져야 할 남한의 경제기반이 온통 잿더미로 변했을 때 그렇게 만들어진 통일한반도는 최빈국의 기아와 난민의 지경을 면치 못할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도 그나마 남한 경제가 뒷받침 될 때에만 그들도 살아날 수 있다(만약 전쟁을 통해 적화통일을 한다면 그런 통일한국의 회생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어느 서방국가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북한 지도부도 알고 있다. 세상에 아무리 아둔한 지도자도 승산도 별로 없고 승패여하에 관계없이 민족 공멸을 부를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이와 같은 근거로 나는 북한이 스스로 전쟁을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가능성일 뿐 사람은 그 누구도 100%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객관적인 가능성이 아무리 희박해도 전쟁은 충분히 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발생하는 전쟁은 한국군 전력이 아무리 증강되고 한미 연합방위력이 탄탄해도 막아낼 수 없다. 특히 북한의 위협만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북한군의 전진배치, 핵과 미사일의 위협은 말하면서 왜 우리의 전력증강과 미사일방어 체제로의 진입 시도 등은 북한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려 하는가?
처음의 질문을 다시 해보자.
지금 한반도는 위기인가? 분명히 그렇다.
그러나 그 위기의 근원은 북한의 남침 위협 때문이라기 보다는 북한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 붕괴시키려는 한국과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으로 덤비는 북한 강경파들 사이의 한반도 운명을 놓고 벌이는 칼부림으로 생기는 위기다.
2. 북핵이 정말 문제인가?
그렇다. 분명히 북핵은 문제다.
* 첫째, 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군사적 승리를 목적으로가 아니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또는 충동적인 실수로도 핵은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럴 경우 한반도는 되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잿더미로 변할 것이다.
"세계 2차 대전을 종식시킨 미국의 원자폭탄을 리틀보이라고 부르는데 원자탄의 위력은 12.5kt(1kt=TNT 1,000t)였다. 히로시마에 투하한 후 승무원에게 목격된 모습은 높이 3km가 넘는 거대한 버섯구름이 솟아오르더니 도시 전역이 불바다로 바뀌면서 온 천지가 들끓는 듯한 구름으로 뒤덮였다. 몇 분 후 버섯구름은 10km가 넘는 높이로 치솟았고 지상의 모든 것은 구름과 불꽃으로 뒤덮어 버렸다. 히로시마의 폭발지점과 가까운 거리의 건물들은 아예 없어졌고 사람의 시체는 흔적도 남지 않았다. 히로시마에서는 7만여명이 죽고 13만명이 부상했다. 나가사키에서는 2만명이 사망하고 5만명이 다쳤다."(www.nowworld.net 인용)
그러나 이젠 이러한 핵무기는 고전적일 뿐이다. "전략 핵무기는 사정거리 5,500km 이상에 파괴력은 1Mt의 핵무기를 말한다. 또 전술 핵무기는 보통 사정거리 500km 이내, 파괴력 0.5mt(500kt)까지의 것을 말하는데 이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가 12.5kt인 것을 감안하면 그보다 40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폭발력으로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앞과 같음)
* 둘째, 군사적으로 사용되지 않을지라도 한반도에서 한 나라가 핵을 보유하게 되면 필연코 주변 나라들을 자극하여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의 도화선이 될 것이고, 그것은 한반도 주변국들의 군사력 증강과 급속도의 긴장상태로 몰아 넣을 것이다. 특히 지금 일본은 북한 핵을 빌미로 헌법을 개정하고 엄청난 군비증강에 나서고 있다.
* 셋째, 위와 같은 의미에서 핵은 하나님을 뜻과 인륜을 반하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로든 이러한 막대한 인명을 한순간 살상하는 핵무기는 인류의 이름으로 용납할 수 없다. 특히 핵무기는 전쟁에 직접 동원된 군인들뿐만 아니라 수없는 민간인들을 가리지 않고 도시전체를 파괴하므로 사용하는 것도, 그것으로 위협하는 것도 결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며 반인륜적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북한핵을 반대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오직 북한 핵만을 문제 삼는 것은 옳지도 않고, 그럴수록 북핵을 제거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사실 북한의 핵을 제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북한에 대한 체제붕괴의 위협을 중단하면 실마리가 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가 이토록 어려운 진통을 겪는 것은 미국과 한국의 대북 강경파들이 한사코 북한에 대한 체제붕괴를 포기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은 북한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군비를 증강하는 것이 아니라, 한미 강경파들이 제한적인 무력사용을 포함한 북한에 대한 붕괴정책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의 군사정책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정말 핵을 포함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핵, 생화학무기, 미사일 등) 문제를 해결하기 원한다면 북한 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모든 당사국들이 한반도에 핵 및 무력사용을 금지하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상호불가침 조약과 한반도 비핵지대화). 생각해 보라. 네가 가진 핵은 위험하니 안되고, 내 핵은 사용할 수 있다면 북한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토록 북핵 반대를 외치는 이 땅의 보수냉전주의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은 위선적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북핵 만이 문제라고 북한을 압박하는 한 역설적으로 북핵 갈등과 한반도 문제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정말 한반도의 운명을 걸고 벌이는 대북말살정책을 이제는 제발 포기하라.
3.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문제
3-1)한미동맹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지금 많은 국민들이 전통적인 한미동맹관계가 흔들리고 있다면 걱정하고 있다. 심지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한미공조를 위해서라도 이라크에 미국이 원하는 만큼 전투병을 보내기까지 해야한다는 생각도 적지 않다. 한미동맹? 그것을 지키는 것이 정말 중요한가? 그렇다. 앞서도 말했지만 아직까지 미국의 존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 특히 동북아에서 주한미군의 완충력은 분명하다. 문제는 어떻게 한미동맹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다.
그런데 많은 우리 국민들, 특히 좀 배웠다는 언론인,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거의 한결같이 한미동맹은 일방적으로 우리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만 지켜진다고 믿는 것 같다. 미국이 한미동맹을 지키기 위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은 없다. 그저 한미동맹, 공조를 따라야 할 책임과 의무는 오직 우리나라에게만 있는 것처럼 말한다. 체질적 사대주의, 운명적 숭미주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일수록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국내 인권문제로 미국과 마찰을 빚을 때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내정간섭"이라고 흥분했던 사람들이 많다. 많은 지식인들과 국민들은 한미동맹만이 우리의 생존을 지켜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그러한 굳은 한미동맹이라는 신화는 이미 미국에는 없다. 90년대 냉전구도가 깨진 이후 미국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우방국에게 오직 한 가지, 미국의 국익과 경제논리만을 앞세워 몰아붙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인식과 태도가 이미 변했는데, 그래도 우리 스스로만 신의를 지켜야 한다고 우리의 태도만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들은 한미간의 이견이 있으면 당연히 한국정부를 나무란다. 제나라 대통령이 무조건 미국을 따라야만 한다고 꾸짖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우상이다. 이 시대의 하나님이다.
3-2)우리가 미국을 섭섭하게 하면 주한미군은 철수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변하고 있는 이 땅의 보수냉전주의자들이야말로 정말 국제정치의 ABC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금 한국이 민족을 내세워 북한과의 협상을 앞세우고, 이라크 파병에 머뭇거리다가 미국을 실망시켜서 미군철수와 재배치의 위기가 발생했다고들 난리다.
국제정치, 그리고 미국의 동북아 정책을 무슨 뒷골목 어린아이들의 자존심 싸움정도로 아는가?(그들이야말로 미국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다) 그 정도로 철수될 미군이라면 전 세계 곳곳의 주둔 미군은 지금쯤 한 곳도 남아 있는 곳이 없을 것이다. 지금 이라크만 해도 그 나라가 친미적이어서 한사코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가? 어떤 이들은 우리 나라가 한국전쟁 등 미국에게 특별한 도움을 받은 관계이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미국에게 받은 특별한 도움은 우리만의 기억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서유럽 국가들의 나치독일로부터의 해방은 미국의 결정적인 도움 덕분이다. 미국은 전쟁 후에도 마샬플랜을 통해 무너졌던 유럽재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그런 서유럽 국가들이 미국을 앞장서서 배척하는 요즘에도 여전히 미국은 나토를 유지하고 있고, 독일 등의 주둔군을 철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유럽을 지키는 것, 아니 좀더 정확히는 유럽을 여전히 미국의 영향권 아래 두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사활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로 돌아오자. 미국에게 한반도는 무엇인가?
흔히 말하듯이 21세기는 태평양시대다. 그리고 태평양의 가장 중요한 발판은 동북아시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은 동북아 국가가 아닌데, 미국과 여전히 잠재적 패권을 다투는 중국과 러시아는 모두 동북아 국가다. 미국으로서는 동북아를 지배해야만 세계패권을 지킬 수 있고 그 정점에 한반도가 있다. 미국에게 있어 한반도가 미국의 적대국가 또는 패권국가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곧 일본과 동북아, 나아가 태평양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미국에게 있어 한반도는 전세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자신들의 사활지역이다.
이런 간단한 논리를 모르고 우리가 환대한다고 우리를 지키고, 조금 섭섭하게 했다고 그날 당장 떠나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미국을 모르고, 국제정치에 대해 문외한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은 그들 자신의 이익 때문에 남아있는 것이다. 반대로 한반도에서의 미군주둔을 미국 스스로 원치 않으면 미국은 우리가 아무리 붙잡아도 결국 떠나고야 말 것이다(70년대 초 몇 번의 철군 시도도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남북간의 협상을 서둘러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3-3)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는 정말 재앙인가?
지금 우리의 관심은 주한미군의 감축과 한강 이남으로의 재배치에 온통 쏠려 있다. 많은 지식인들과 보수 언론에 이어 깜짝 놀란 우리 국회의원들마저 무려 147명이나 "미군의 잔류터 면적을 애초 한미 합의안인 17만평이 아닌 미국의 요구대로 용산 땅 28만평을 주어야 한다"고 미국을 거들고 나섰다. 정말 미군이 한강 이남을 떠나고 전력의 변화를 보이는 것은 두렵기만 한 일일까?
여러 가지 정황을 놓고 볼 때 우리가 한미공조를 잘 하든 않든 머지 않은 장래에 주한미군의 전력과 체계는 분명히 변할 것이다. 왜 그런가? 미군 재배치 및 전력변화는 한국이 맘에 들고 안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군사정책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 한강 이남으로의 재배치: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은 미 지상군이 위험요소가 많은 휴전선과 서울에 집중 배치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대단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유사시 미군의 피해가 막대하다는 것이 미국 내에서도 비판되고 있고, 또 최근 알려진 바에 의하면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제한적 선제공격에도 큰 제약을 받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한미군은 한강이남으로 점차 철수할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에 의하면 북한의 남침시 수도권의 주한미군이 먼저 피해를 받음으로 미군이 자동개입 하게 된다는 '인계철선' 개념은 이미 구시대적 개념이라고 한다. 휴전선 부근에 미군이 배치돼 있든 아니든 북한의 공격시 미군의 개입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미 살펴본 바대로 미국은 결코 한반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의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가 오산, 평택으로 옮긴다고 해도 한강 이북의 미군이 전부 내려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차피 상당수의 미군은 여전히 한강 이북에 주둔하며 계속적인 합동전력을 유지하게 된다.
* 주한미군 감축: 그것도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다. 현대전은 과거와 같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지상군을 길게 늘여 뜨려 놓고 대치하는 개념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전쟁수행방식이 전차와 보병에 의지해서 백병전을 벌이는 식의 전쟁이 아니라 압도적인 첨단무기와 해 공군을 동원해 적진을 철저히 무력화시킨 후 비로소 지상군을 투입해 점령하는 식으로 이미 전환되었다. 90년대 이후 미국이 수행한 모든 전쟁(걸프전, 아프간 침공 등)이 그렇고 이번 이라크 전에서도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수많은 군장성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지상군이 아닌 해 공군 위주의 작전을 관철시켰다.
그러므로 주한미군도 현재의 지상군 위주의 전력배치를 재조정하여 지상군은 점차 줄이고, 대신 첨단무기로 무장된 기동타격대 및 해 공군 전력증강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런 조짐은 이미 현실화되어 기동타격 스트라이커 부대가 순환배치 되었고, 지금 미군 전력을 오산, 평택 기지로 통합하려는 시도 역시 그러한 맥락의 자연스런 결과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주한 미군이 지상군을 줄이고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려는 것은 우리가 두려워하듯이 미군철수를 말하는 것도, 전력약화를 가져오는 것도 결코 아니다.
* 미군 재배치 논란을 통해 얻으려는 미국의 또 다른 노림수:
다시 말하지만 지금의 주한미군 재편과 재배치는 미국 스스로의 이해 때문에 실시하는 정책으로 우리가 뜯어 말릴 일은 결코 아니다. 미국은 이것을 통해 미군운용의 효율성을 도모하려 하겠지만 이에 못지 않은 한국에서의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한다.
첫째, 한국(정부, 국민)을 긴장시켜 길들이려 하는 것이다. 한국은 평소 제아무리 떠들다가도 주한미군에 조그마한 변화만 보여도 그 당장 백기항복 하는 속성을 보여왔다. 지금도 미국은 주한미군 재배치의 논란을 벌임으로써 크게는 이라크를 비롯한 미국의 세계전략에 충실히 복종하고, 작게는 민족이니 뭐니 하며 미국의 대북정책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처음부터 차단하려는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여기에 충실히 반응하고 있다.
둘째, 주둔비용을 절감하려는 시도다. 국회의원 147명의 충실한 반응에서 이미 충분히 나타나듯이 미군기지의 이전 및 주둔 비용의 미국 측 부담을 줄이고, 차세대 무기협상 등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한미간 갈등을 탄식하는 듯 하면서도 한편 이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4)미국은 결코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점을 가장 두려워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그들의 세계전략의 일환으로서의 중요한 하나다. 다시 말하면 잠재적 라이벌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지역 패권화를 막고, 여전히 도전받지 않는 절대유일의 강자로 군림하려는 미국의 21세기 정책을 동아시아에서 실현하려는 속셈의 중요한 교두보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연습이 있을 수 없는 삶의 무대이며, 생존의 현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 미국과는 다를 수도 있는 한반도에서의 우리의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갈등할 수 있는 뚝심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이 땅에는 '미국=천사=영원한 우리의 형님'으로 믿고, 미국을 하나님처럼 섬기며 절대복종하는 것이 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이건 정말 망상이요, 관념주의다. 그들은 미국인들, 미국정치인들에게는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제 나라 대통령과 정부의 권위쯤은 장기판의 졸 정도로 여긴다. 나는 정말 그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묻고 싶다. 아니, 민족감정을 되뇌이기 전에 정말 미국이 천년 만년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현실에 대해 냉철해야 한다. 분명 미국은 적어도 반인권적 전제국가 소련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소련과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유일의 초일류국가가 된 지금 미국은 하나님의 자리를 스스로 차고앉아 전횡을 일삼고 있다. 지금의 미국은 분명 불의하다. 아니 갈수록 불의해져 가고 있다.
나는 주체사상 신봉자도, 반미주의자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분명히 반대한다. 그것은 지금의 미국이 세계평화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 자국의 판단만 의지해서 거의 견제 받지 않는 절대패권을 휘두르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위험하다. 갈수록 위험해져 가고 있다. 그것은 미국(체제, 정부, 국민) 자체가 본래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절대권력은 절대부패 한다"는 힘의 속성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 절대권력이 되려 하고 있다. 북한이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에 대한 숭배와 반인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라고 한다면, 미국은 갈수록 돈과 힘에 대한 절대숭배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그러한 미국의 돈과 힘의 질서를 전세계에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지도자들은 그러한 미국의 힘이 영원무궁토록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구약시대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반역하여 우상숭배에 물들고 사회정의가 실종된 죄악들이 쌓여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으로 신흥강국 앗수르의 침략을 받고 멸망했다. 하나 남은 남 유다 왕국도 또 다른 신흥강국 바벨론 앞에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쳐해 있을 때 많은 지도층들은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강대국을 의지하기로 했다. 어떤 이들은 바벨론을 막을 나라는 앗수르 밖에 없으니 그들 편을 들자고 했고, 또 다른 이들은 그래도 역시 전통적인 강국 애굽을 의지하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애굽으로 몰려갔다. 그 때 하나님은 여전히 죄를 뉘우치기보다는 강대국의 힘을 의지하여 사태를 적당히 무마해 보려는 유다에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 이렇게 경고하셨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 31:1, 3)
4. 이라크 파병해야 하는가?
나는 이라크에의 한국군 파병 자체를 반대한다. 그것은 남의 나라 문제에 우리가 희생할 필요가 없다는 이기적인 판단에서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명분과 의미를 상실한 정의롭지 못한 침략전쟁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스스로 이라크와의 전쟁명분으로 내세웠던 것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거론하며 반테러 및 중동평화를 위해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으나 전쟁이 끝난 지 반년이 다되도록 이라크 땅 전체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대량살상무기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더구나 미국은 100-2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친미국가 이스라엘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는 전혀 문제삼지 않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독재자 후세인의 축출을 내세우며 정당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독재자 후세인과 테러리스트 빈 라덴 조차도 이전 시기 미국의 후원아래 성장했음을 기억해야 하며, 또 미국은 전세계 모든 독재자 및 인권 탄압국들을 전쟁을 통해 축출할 권한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미국 행정부가 위기를 느껴 추진하고 있는 다국적군 파병요구도 원칙적으로 명분도, 실리도 없음을 지적한다. 특히 어떤 이들은 미국과의 동맹관계와 우호를 위해서라도 파병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미국이 대한민국이 어렵던 시기 여러 모로 도와주었던 기억을 분명히 감사한다. 그러나 그 감사가 잘못된 침략전쟁에 함께 빠져 들어가는 것과 동일시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국익을 위한 파병을 말하기도 하지만 실상 국익이라는 말이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일방적인 희망사항에 의존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미국정부도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라크 파병이 미국의 대북 정책에 우호적으로 작용하리라는 어떠한 보장도 없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와 전후 복구권을 따내기 위해서라도 파병을 지지한다고 말하나 그 이면에 대다수 아랍국가들의 엄청난 반발과 적대감을 고려한다면 경제적 이익의 논리도 일방적 희망사항임을 알 수 있다. 이미 한국인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지금 본격적인 파병이 이루어질 때 한국군은 또 다시 베트남에서와 같은 추악한 전쟁에서 불행한 용병으로서 희생되어야 할 게 불을 본 듯 뻔하다.
그런 면에서 이라크에서 전사하는 병사들이야말로 정말 불행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죽는 것도 아니다. 석유와 세계패권에 눈이 어두운 강대국과 그 강대국의 하수인이 된 숭미주의자들의 거짓에 속은 불행한 죽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 이라크 재건과 미국을 돕고 싶으면 섣부른 파병으로 미련이 생긴 미국을 점점 더 수렁에 빠뜨리지 말고 하루빨리 유엔에 실질적인 책임을 이양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아직 이 땅의 많은 정치인, 지식인들은 미국에 송구한 마음에만 사로잡혀 제 나라 군인의 생명의 소중함은 잊어버린 채, 선뜻 파병결정을 하지 못하던 정부를 "기회주의자"쯤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정말 한심한 일이다.
5. 북한의 인권문제과 김정일 독재체제
북한은 반인권적 독재정권임에 틀림없다. 김일성 주석이 북한의 주장대로 아무리 빛나는 항일유격활동을 펼쳤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지난 반백년 동안의 반인간적 체제를 쌓아간 죄과를 결코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체제는 아들 김정일 정권에 의해서 크게 다르지 않게 연장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어설픈 북한 퍼주기(햇볕정책)로 인해 죽어 가는 악한 북한정권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야말로 정말 반통일이며, 북한독재체제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인권문제 물론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무엇이 정말 북녘백성들을 위하는 길인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보수강경론자들이 말하듯이 밖에서는 북한정권을 몰아 부쳐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고, 탈북자 문제를 국제화하여 대량난민을 일으키고, 안으로부터의 반란이 일어나도록 흔들어대면, 그래서 북한체제가 당장 붕괴되면 정말 북한백성들은 지금부터 행복해 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하기 힘들다. 일단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의 원조로 극단적인 기아상태에서는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중국을 비롯한 해외를 떠도는 탈북자들조차 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지경이 되면 예상컨대 2,200만 북녘백성 대부분이 집단 난민화 될 가능성이 크다. 더 좋은 조건과 생활을 위해 대거 남하하는 북한백성들을 누구라서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보다 더 문제는 그렇게 대거 남하한 북한백성들을 맞는 대한민국국민들의 인내심은 곧 바닥날 것이고, 눈앞에 드러난 하늘과 땅 차이의 경제적, 문화적 격차는 곧 더 빼앗으려는 집단과 어떻게든 지키려는 집단사이의 충돌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빈부격차, 생활의 차이, 온갖 차별과 우월감 등이 어우러져 해소할 여력이 없을 때 남북 사이에는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조차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극단적 시나리오를 제거해 버린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경제력과 사회통합능력으로는 남한은 북한사회를 끌어안기 힘들다. 남북이 함께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른 길을 찾아봐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북한사회의 변화를 전제한 북한의 갱생이다. 지금의 6자 회담을 통해 결국 북한이 생존보장을 대가로 핵무기 및 군사적 대치구조를 포기하면서 개혁개방 되도록 지원한다면 북한은 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 줌으로써 핵무기 뿐 아니라 모든 재래식 전력을 포함한 대규모 군축을 실시함으로써 모든 국가역량을 경제개발과 회생정책에 집중하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지원된 공적자금이 북한사회의 기초를 다시 놓고, 합작 및 합영회사 등을 통해 생산된 상품을 수출하며, 그들이 생산한 곡물들로 백성들의 생존이 다시 가능해 질 때 북한은 더 이상 전쟁에 의존할 수 없는 사회로 조금씩 바뀌어갈 것이다. 남북한의 정치적 통합이 이루어지기 전에 북한의 공장들이 다시 돌아가야 한다. 식량자립기반이 다시 확충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힘에 지나도록 지금부터 돕는 것이 비상사태시 쏟아 부어야할 통일비용보다 훨씬 가볍다. 북한을 고사시키고서는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는 결코 살아날 수 없다.
또한 북한체제에 대한 거부감의 강조는 분명히 그 백성들을 포함한 북한전체에 대한 냉소와 거부감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대다수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엔 이미 동포로서의 의미보다는 불쌍한, 그리고 가난하고 귀찮은, 어쩌면 우리 몫을 많이 떼어갈지 모르는 빈민집단으로서의 북한사람들에 대한 인상이 굳어져 가고 있다. 그것은 이제 2천여 명 남짓한 정착 탈북자들에 대한 시선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나는 북한정권의 반인륜적 실패에 대해 언젠가 책임을 묻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미 독이 오를 대로 올라있는 북한정권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또 카운터 파트인 남한의 책임도 규명되어야 하는 만큼 어차피 갈라진 어느 한쪽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할 수밖에 없는 지금은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논리처럼 남북정상의 만남을 논하기 전에 한국전쟁과 50년 공산독재에 대한 김일성의 책임을 규명하고 87년 KAL기 폭파사건 책임자 김정일을 국제테러집단 수괴로 재판해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일제청산을 포기하고 친일파들을 다시 재건하고 허무한 북진통일론만 외치다 대한민국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또 다른 전쟁 책임자 이승만과 40년 우익독재와 냉전적 기득권 층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검증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바퀴벌레와 살충제 장수"라는 비유를 들어 보라.
바퀴벌레가 유난히 많이 나오는 집이 있었다. 잡아도 잡아도 바퀴벌레는 끊임없이 나온다. 주인은 하다 못해 살충제를 구입한다. 살충제를 뿌리면 한동안 바퀴벌레가 줄어든다. 그런데 그 때 뿐이다. 여전히 바퀴벌레는 박멸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집안 환경이 더럽기 때문이다. 그 집의 해묵은 쓰레기를 치우고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한 바퀴벌레는 결코 박멸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살충제 장수는 결코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퀴벌레가 있어야 살충제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사회가 병들었기 때문에 생긴다. 그 말을 바꾸면 사회가 건강하고 공의로워지면 공산주의가 발붙일 곳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회의 건강성에 대한 노력은 별로 기울이지 않으면서 공산주의자들만 때려잡겠다고 하는 것은 효과도 없을뿐더러 살충제 장수처럼 또 다른 속셈을 의심하게 한다. 남북엔 기득권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증오하고 적대하지만 또 한편 상대가 있기 때문에 자기의 입지도 굳어지는 것이다. "전쟁 나면 남한은 불바다 된다"고 협박하는 북의 강경파가 있기 때문에 "빨갱이는 새끼들도 용납할 수 없다"는 남의 강경파가 있는 것이고, 역시 남쪽의 기득권층들이 제 것은 조금이라도 희생할 수 없다고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북쪽에도 기득권층이 힘을 잃지 않는 것이다.
황장엽이라는 분이 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생애를 오직 북한 민주화와 민족통일이라는 대업에 바치기 위해 과감히 북한을 탈출한 분이다. 그는 * 한국-미국-일본의 동맹 강화로 중국-러시아-북한의 동맹을 와해시키고, * 반미·친북 세력은 민족의 적, 통일의 적이다 * 미국의 MD계획을 무조건 지지해야 하며, * 김정일 독재와 한국 민주주의, 김정일 정권과 북한주민은 양립할 수 없다 * 김정일의 도발을 저지하려면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는 등의 통일전략을 말했다(월간조선 2001년 9월호).
나는 적어도 그 분이 누구보다 북한정권 수뇌부의 사정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황장엽씨와 그의 입을 통해 냉전을 이어가려는 조선일보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적어도 남한의 지난 50년 역사와 현실을 그는 너무나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역사의 진실을 보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반쪽만의 진실일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남한도 그렇게 단순하고 만만한 사회는 아니다.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적어도 그들보다 나으니까, 아무 소리하지 말고 그저 우리 체제를 지지하라는 것은 옳지 않다. 어차피 민족통합의 주도권은 대한민국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북한과 재외동포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로 거듭나도록 더욱 개혁되어야 한다.
6. 마음을 열어놓고 시시비비를 가리자.
지금까지의 내 생각들이 다 옳다고 나는 결코 주장할 자신이 없다.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개혁을 말하고, 통일을 말할 수 있으려면 처음부터 반미, 반북, 친미, 친북을 말하기 주장하기 위해서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들을 의도적으로 감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대한민국과 미국의 잘못을 말하는 이른바 좌파들은 북한체제와 인권문제를 의도적으로 숨기려하고, 반대로 북한의 반인권적 체제모순을 말하려는 이른바 우익들은 우리체제만 선이고 미국은 영원한 수호신처럼 진실을 가리고 있다.
정말 민족을 사랑하고 백성들을 위한다면 우리는 거짓에 의존할 수 없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 어느 때보다 어려운 민족의 문제들을 놓고 세대와 세대가, 보수와 진보가 격돌하고 있지만 이러한 원칙만 분명히 한다면 못만 날 이유도 없다. 지금 마음을 열어놓고 우리민족과 세계평화 문제들의 시시비비를 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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