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드라마를 보다

놀이기구의 시간이 끝나면 그 기구에서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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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원(jwhan)등록 2003.12.25 16:11
밑거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밑거름. 정말 좋은 말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수록된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이야기도 그렇다.

강아지똥은 밑거름이 되었기에 민들레로 부활한 것이다.
강아지똥이 강아지똥으로 남았다면, 그냥 강아지똥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강아지똥이 강아지똥으로만 남을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세상사 모두 변하게 마련이고 강아지똥이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 부활하지 않았다면, 강아지똥은 코스모스가 됐을지, 강바람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민들레꽃 또한 진다. 민들레꽃은 또 무엇으로 피어났을까?
마른풀잎이나, 강아지똥이나, 장미꽃 한다발이나, 다 원래는 하나였다가 흩어졌다가 다시 합하나니, 세상은 그렇게 한몸으로, 두몸으로 살다가 다시 한몸으로 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한 몸 얻어, 이름 지어붙여 사는데, 그것에 매여서 죽지 않으려 하고, 영원한 영화를 누리려한다면, 강아지똥이 똥으로만 남으려하는 허망함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죽지 않으려해도 죽는 것은 자명한 일이요, 천대만대 이름만이 남아도 나라는 존재는 이미 다른 모습으로 부활했을 터, 똥이라는 이름이 남으면 또 무엇하겠는가?

결국은 부활할 몸인데, 죽지 못해 안달이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안타까운 일이려니와, 살려고 발버둥치며 눈물짓는 것도 허망한 일이다. 결국 죽으려하거나 살려하거나 그 생명은 각각의 목숨이 있다니, 살 목숨만치 살고 웃으며 가며 그뿐이라.

살려하는 자 죽고 죽으려하는 자 산다했으나, 살자는 죽으려든 살려하든 살 것이요, 죽을자는 살려해도 죽으려해도 죽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어찌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으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한길 사람속보다 모를 것은 앞으로 펼쳐질 내일이라.

그러므로 현재 펼쳐지는 드라마를 웃으면서 쳐다보며 즐기는 것 뿐이다. 한석규가 나오는 대형TV 선전이 있다. 한석규는 자신이 차에 동승한 듯 좌우로 흔들며 좌석에 앉아있는 듯하다가, 결국 그차는 벼랑 끝으로 떨어지지만 한석규는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는다는 드라마. 현실을 그만치 정확히 표현해낸 CF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 놀이기구는 각각의 시간이 있다. 놀이기구의 시간이 끝나면 그 기구에서 내려야 한다. 놀이를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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