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해요 새끼 여우를 놓아주었어요!"

'검은 여우' 를 읽고

검토 완료

김영(miso00)등록 2003.12.29 10:28
<검은 여우>는 베치 바이어스가 1968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자신이 가장 아끼는 책이라 고백한 바 있다. 그는 웨스트버지니아의 시골집에 갔다가 실제로 만난 여우를 보고 난 후의 놀라움과 흥분이 모티프가 되어 이 작품을 쓰게 됐다고 소개했다. 잔잔하고 유연한 문체로 톰과 검은 여우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가? 바람까지 불고 천둥 번개가 치는 날 창문을 타고 내려가 누군가를 구할 용기가 있는가? <검은 여우> 를 읽으면서 톰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마음에 내내 포근했다.

이 책은 방학을 맞아 엄마 아빠가 여행을 떠난 2달 동안, 시골 이모네 농장에서 지내는 동안 그 곳에서 만난 검은 여우와 톰의 이야기다.

전형적인 도시 아이인 톰은 시골로 떠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텔레비전도 없고, 조립 장난감과 친한 친구 피티도 없는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끔찍하지만, 부모님은 떠나고 톰은 이모네 농장에 맡겨진다.

농장에는 지나치게 다정한 이모와 사냥을 즐기고 숲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이모부가 있고, 뚱뚱하고 낙천적인 누나가 있다. 그들은 톰과는 무관해 보인다. 적어도 검은 여우 사냥을 떠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도시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날은 짧게 끝났다. 친구 피티의 우편물을 받는 날은 설레었지만 톰은 검은 여우를 만나기 전 사흘 동안만 지루했을 뿐이다.

검은 여우를 처음 본 날 톰은 말한다. '그렇게 가슴 떨리는 광경은 처음이다'라고. 동물원에서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여우인데 숲 속 농장에서 본 검은 여우는 굉장한 느낌으로 톰을 잡아 세운다. 경외감까지 간직한다. 검은 여우에 대한 온갖 기대감으로 흥분하고 활기에 넘친다.

그러나 검은 여우가 이모네 칠면조를 잡아가면서 정적은 깨진다. 칠면조 알을 숨겨둔 구덩이에서 검은 여우를 잡아 끝장내겠다는 이모부의 말은 톰에게 두려움 그 자체다.

검은 여우를 구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이모부를 따라 나서지만, 이모부에게 여우는 칠면조와 닭을 훔쳐 가는 도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끝장낼 수 있는 사람은 이모부인 것도 안다. 영리한 여우는 굴을 파면, 파낸 흙으로 한쪽 구멍을 꽁꽁 막고 나머지 한 구멍으로 드나들기도 한다고 한다.

새끼 여우를 자루에 넣는 이모부는 톰의 아픔과는 무관해 보인다. 죽은 척하는 어린 새끼를 보면서 100년을 산다 해도 그렇게 가슴 아픈 광경은 없을 거라고 자책한다. 괴로워하는 톰에서 누나는 늙어서 죽는 야생 동물은 없다고 한다. 처절하게 살아가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위로한다. 그것이 곧 자연의 섭리라고 한다.

새끼 여우는 토끼장에 갇혀 어미 여우를 유인하는 미끼가 되고 처절한 울음으로 엄마 여우를 찾는다. 어미 여우의 울음도 들려온다. 천둥 번개와 함께 폭풍우가 치던 밤 톰은 새끼 여우를 풀어 주려고 창 바깥 나뭇가지를 타고 내려간다. 어두움처럼 철창에 갇힌 새끼여우에게 주려고 죽은 개구리를 가져다 놓은 어미 여우는 모성애의 전형이다.

새끼 여우를 꺼내자 '캉캉'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기다리고 있던 검은 여우는 '캥' 짖으며 과수원 밖을 달려나간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여우를 알고 있기에 이곳으로 다시는 오지 않을 이별에도 담담하다. 용감해진 톰은 나무를 타고 들어가지 않는다. 새벽 2시에 현관문을 열어 당당하게 새끼 여우를 놓아주었다고 말한다. 숫기 많고 겁이 많은 톰에게 엄청난 내공이 솟아나 보인다.

드디어 부모님이 돌아오고 이모부와 작별하는 날 톰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말을 해 주고 싶어한다. 두 번 다시 그 일을 언급하지 않은 넉넉함에 대한 감사를 하고 싶어한다. 검은 여우를 놓아주고 나서야 그 분들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톰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농장에 대한 기억을 잊어간다. 이모부가 돼지 품평회에서 상을 받은 특별한 돼지 이름도 수천 번이나 들었지만 생각해 낼 수 없다.

그런데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면 그 해 여름이 생생하게 다가오고, 새끼 여우를 구하기 위해 타고 내려갔던 나무 아래서 찬비를 맞고 있는 자신이 도드라진다. 여우 울음소리는 숱한 시간을 뛰어 넘어도 변하지 않을 그림처럼 남는다. 한밤 중에 새끼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이라는 근사한 제목을 달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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