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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14일 바다를 걸어본 소감을 올리면서 시작된 특별한 날의 숨길 수 없는 일들이 쭉 적혀있는 나만의 기사를 보고 있자니 폭풍을 몰고 오는 물결처럼 일렁입니다. 기록이 아니면 새까만 기억 저편으로 살아졌을 일들이 생생하게 살아가는 해의 마지막 시간을 붙잡고 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이란 큰 무대에서 등단이란 이름 아래 화려한 카메라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내 시가 활자화되어 세상에 나왔으며 원하지 않았지만 섣부른 동인지도 탄생시켰습니다.
월간지에 심심찮게 글이 실렸고, 라디오 생방송 프로에서 어설픈 말솜씨도 뽐내었습니다. 목월 문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며, 은평 백일장에서는 장원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가을 산사 북한산 법화사에서 선배 문우들과 시 낭송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비구니 스님의 법구경과 현무도를 추는 남정네, 어우동 복장으로 가야금을 타던 여인과의 특별한 만남이었습니다. 슬프고도 애잔한 몸놀림 (비구니의 바라춤) 을 보면서 다른 세상에서 무욕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절 마당에 방석을 깔고 앉은 관객들과 시인들이 모여서 가을 바람에 머리를 조아리던 순간에는 산다는 것이 황홀했습니다. 서서히 그늘이 내리는 산사에서 마시던 한 잔의 커피의 따스함도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 짝사랑했던 친구 동생을 지면으로 만나기도 했습니다. 부활절 달걀에 그림을 그려서 주었던 그 아이는 해외에서 문화 소식을 전하는 오마이뉴스 게릴라 기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재능 있는 청년이 되어 특별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오마이뉴스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기쁨 일들을 더 기억하려 애쓰는 것은 슬픈 일도 많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6년 8개월 동안 살던 집을 떠나올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 별의별 걱정을 하느라 힘들었고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 전학 절차를 밟고 운동장을 걸어나오다 혼자 울던 일도 있었습니다. 작은아이가 병원에 입원해서 걱정을 끼쳤으며 병원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새로 시작한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가 넘쳤습니다.
지인들에게 무심하기 이를 데 없어 "살아있냐?"라는 야유를 듣기가 십상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안부 인사를 제대로 드린 적도 없는데 어느 새 2003년은 몇 시간 남지 않은 시한부입니다. '언제나 열심히 살아가는 네가 참 멋지다.' 책을 받고 전화해 주신 은사님께 아직 답 글 한 줄도 보내지 못한 엉터리 제자가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크고 작은 일들이 기쁨이란 씨실과 슬픔이란 날실로 2003년을 편집한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욕심을 줄이고 싶습니다. 내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돌아보지 못한 주위 분들에게 따사로움을 전하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음의 먼지 못지 않게 창틀에 얹힌 보이는 먼지도 자주 털어 내며 상쾌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보다는 타인을 위한 시간을 더 써야한다는 야무진 각오로 새해를 맞이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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