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죽이는 거대 권력에 침을 뱉으마!

극단으로 치닫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제언

검토 완료

서정순(yoana)등록 2004.01.07 18:45
'행정효율성 만능주의'를 실천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교육부의 NEIS 강행방침은 전교조와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다가 최근에 와서야 교육부가 전교조 입장을 대폭 수용한 방안을 내놓았고, 전교조는 이에 환영하는 의사를 보여, 지리멸렬하게 끌어온 NEIS 논란은 이로써 사실상 종결되었다.

한편, 공교육의 전망부재를 확신하면서 여전히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과외시킨답시고 몇 백만원 하는 과외비를 껌 값으로 날리는 부모들이 있고 더 절망스러운 것은 영혼의 안식처가 될 교회에, 신도와 불륜을 저지르는 목사와 공금을 횡령하는 목사가 버젓이 최고 전도사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는 속담처럼 일부 양식 없는 사람들이 이 절망스러운 사태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이나 불미스러운 이런 사태가 부조리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는 한없이 혼란스럽고 불합리하게 보인다. 우스꽝스러운 미담 기사라도 기자들이 창조적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라고 싶을 정도로 그렇다. 분노하는 영혼의 사람, 노동자는 생존하기 위해 죽었고 농민도 생존을 위해 지금 국회 앞에서 싸우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독설가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다. 그는 소설과 희곡을 썼고 시도 썼다. 그는 명예로운 많은 상을 수상했지만 소감을 말하기를 "상을 주는 일은 작가의 머리에 똥을 퍼붓는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문화제도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의 눈에는 국가와 국가의 산하 기관들, 그리고 종교가 모두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그는 눈하나 깜짝 안 하고 이 거대 권력과 그 새끼 권력들을 씹고 저주했다. 그는 그의 모든 저작에서 이 시니컬한 비판정신의 칼을 세웠고 '원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인'에서 그는 먼저 "그들이 한 일이 있다면 이 새로운 인간을 생각 없고 책임감 없는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것뿐이다. 이로써 자신들이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 부모란 도대체 없다. 단지 새로운 인간을 양육하는 범죄자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 부모라는 존재가 갖는 상식적인 개념을 완전히 뒤엎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갖는 윤리적, 미학적 관념을 완전히 폐기하고 '부모'를 쓰레기로 만듦으로써 기존 관념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4인용 식탁'을 만든 이수연 감독은 어린 생명을 베란다 밑으로 떨어뜨린 비정한 어머니를 영화 속에 그리면서 "어머니도 그냥 생명을 가진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누구 한 사람을 신화화하거나 신격화하면 모든 문제가 그 사람만의 책임이나 비윤리로 돼버린다. 현실을 정확히 봐야 답이 나온다"라고 말한 바 있다. 베른하르트 역시, 부모라는 존재가 갖는 거대한 신화성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는 "그 모든 최악의 파괴자 중의 하나인 교회 즉 종교가 이 새로운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일을 떠맡게 되고 학교는 이 세상 모든 국가의 정부가 내리는 위탁과 명령을 받아 이 새로운 어린 인간에게 정신의 살해를 가하기 시작한다"라고 말한다.

이 냉소적인 독설가는 서슴없이 교육당국과 종교에 침을 뱉는데, 설령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광이 소리를 들을지라도 이 소름끼치는 짓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마치 과장된 익살로, 상아탑에 갇혀있는 지식인들에게 진실을 말할 것을 촉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 번째로 그는 "내가 보기에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이라고는 날마다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악취나는 역사의 오물을 소위 고등학문이라는 이름 하에 계속해서 거대한 통처럼 내 머리 위에 쏟아 붇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 그들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완전히 기계적으로, 그렇다 저 유명한 선생다운 태도와 저 유명한 선생다운 우둔함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로 자신들에게 맡겨진 학생들인 어린 사람들을 파멸시켰다. 그들의 교리란 국가 상급기관에서 명령한 분쇄와 파괴, 그리고 그것의 악랄한 결과인 파멸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작가는 부패한 교육자의 모습을 특유의 냉소로 그려 보이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 교육자의 담임수첩을 보면서 나는 이 냉소주의자의 묵시론적 발언이 괜한 말에 지나지 않음을 재확인해야만 했다.

작가는 모든 신성시된 관념을 보기 좋게 뒤엎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결코 여기에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급기야 "소위 이 고등학교들, 김나지움들, 대학진학을 위한 상급학교들이 철폐되고 초등학교와 대학에만 교육이 집중된다면 세상은 한결 나아질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사회가 변화하길 원한다면 수업체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하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말을 우리의 교육당국은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책에서 시종일관 분노를 표출하고 마치 열병에 걸린 듯이 직설적인 말투를 사용하지만 그 비판의 본질에 있어서는 옳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는 오스트리아 인이고 또 작고했지만 그가 비판하는 모든 담론들이 작금의 우리 시대에 거의 들어맞는 것은 인상깊고, 또 우리 시대 사람들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사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아 있는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 비판정신의 강철다운 면모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극단적인 묘사가 갖는 진실의 모습을 그는 방법론적으로 노린 게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 독설가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미치광이가 분에 겨워 아무렇게나 지껄인다고 무시할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작가가 지키고자 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한번 숙고해보는, 진지성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점잖은 모습으로, 신문을 읽으면서 시대의 부조리를 한탄하는 지식인들에게 고하고 싶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처럼 분노하는 정신을 날것으로 표출하라고! 점잔 빼는 짓은 관두고 부조리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문제에 대해 큰소리로 발언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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