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V, 유럽식 지지자들의 견해에 답한다

방식변경 주장자들의 견해에 대한 다섯개의 반론

검토 완료

신승렬(phlip)등록 2004.01.20 12:32
디지털 TV에 대한 논쟁이 자꾸만 본질을 벗어나 사회, 정치적 틀에서 논의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현행 미국식을 옹호하는 AV애호가의 입장에서 특히 유럽식 지지층에서 많이 드러나는 이러한 사회, 정치적 입장에서의 변경론을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해 그에 대해 제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그 다섯 개의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미국식DTV =차세대 전투기?
2. 미국식DTV = 가전업계의 로비에 넘어간 정통부의 음모?
2-1. 미국식 고수는 업계출신 장관의 아집?
3. 유럽식 = 대중용. 미국식 = 상류층 전용 ?
3-1. 고화질 TV가 1000만원이 넘는다는데...
3-2. 유럽식 표준화질 방송은 미국식 고화질 방송보다 저렴한가요?
4. 방송노조는 국민의 편?
4-1. 방식변경 후 방송국은 고화질(HD)방송을 할 것인가?
4-2. 이동수신은 국민의 권익에 도움이 되는가?
4-3. 방송측이 다채널과 이동수신에 집착하는 이유는?
5. 유럽식이 차후 매체 통합(convergence)에 맞는 미래지향적 방식이라는데?


이에 대해 하나씩 제 견해를 말씀드리지요.

1. 미국식DTV =차세대 전투기?

차세대 전투기사업 이후 '미국방식= 미국의 통상이익 압력에 굴복한 결과물' 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미국식 DTV는 전투기보다는 미국 이동통신 방식인 CDMA에 더 가깝습니다. 즉,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것은 거의 없고, 우리가 미국에서 벌어들이는 것이 훨씬 큰 흑자 표준이란 거죠. 혹시 백화점에서 미국산 TV나 셋톱박스 보신 적 있으신가요? 미국에선 한국산 TV와 셋톱, 흔하게 보입니다.

2. 미국식DTV = 가전업계의 로비에 넘어간 정통부의 음모?

미국식 택할 당시 삼성전자는 유럽식에 점수를 더 줬습니다. 라이벌인 LG가 기술특허를 상당수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반면 지금 반 미국식의 선봉에 선 MBC는 미국식에 더 높은 점수를 준 바 있습니다. 삼성이 LG보다 로비력이 처지는 것일까요? MBC는 LG와 함께 로비의 주체였던 걸까요? 이런 정보들은 모두 공개되어 있습니다. 결정과정은 밀실행정이 아니었습니다.

2-1. 미국식 고수는 업계출신 장관의 아집?

현재 미국식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그로 인해 방송 측으로부터 업계 이기주의로 매도되고 있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당시 삼성전자 사장이었습니다. 지금도 그가 자신이 속했던 회사를 생각한다면 라이벌인 LG전자가 더 이익을 볼 미국식을 왜 고집할까요?

3. 유럽식 = 대중용. 미국식 = 상류층 전용?

이런 논리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요. 자세한 것은 아래 3-1,3-2에서 밝히고, 유럽식과 미국식은 민주적 방송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보편성'이란 점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예전에야 유럽식이 산악지형이 많은 유럽에 맞추어 개발되어 수신율이 더 좋고 미국식 하면 난시청 지역은 지금처럼 케이블 봐야한다고 했지만 기술발전으로 미국식도 90%를 훨씬 넘는 수신율을 갖추었습니다. 이젠 MBC등 유럽식 측에서도 수신율 이야기는 변경의 근거로 내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3-1. 고화질 TV가 1000만원이 넘는다는데…

한국인의 80%가 유선 내지 위성방송을 봅니다. 이 유선방송에 나오는 홈쇼핑채널 틀어 보세요. 54인치 고화질수신가능 TV가 199만원에 팔립니다. 29인치 고화질(HD)급 TV는 60만원대도 있습니다. 여기에 30만원대 셋톱(수신장치)만 갖추면 현재의 4배 이상 선명한 고화질방송 수신 가능합니다. 참고로 제가 2003년 1월에 29인치로 고화질방송 수신에 들어간 돈이 200만원에 육박합니다. 가격이 1년 사이에 절반 가까이 떨어진거죠.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대량생산되면 가격하락은 더 빨라질 겁니다.

3-2. 유럽식 표준화질 방송은 미국식 고화질 방송보다 저렴 한가요?

유럽식은 완전무료인양 잘못 아시는 경우가 많은데, 유럽식을 해도 결국 표준화질(SD)을 즐기려면 디지털TV와 셋톱박스를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디지털 TV만 있으면 수신이 안됩니다. 셋톱만 사신다면 현행방송과 동일한 화질입니다. (물론 둘 다 사셔도 현재보다 화질개선은 20%정도에 불과합니다!) SD급 29인치 디지털 TV는 현재 HD급 29인치 디지털 TV와 거의 가격차가 나지 않습니다. SD급 셋톱 역시 HD급 셋톱과 가격차이는 몇만원에 불과할 겁니다.

4. 방송노조는 국민의 편?

처음에는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에는 미국식에 수신율이라는 약점이 있었고, 보편적인 방송향유라는 점에서 유럽식에 장점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방송국이 노조를 지지하는 시점부터 상황은 바뀝니다. 3 에서 이야기했듯 수신율 차이는 소숫점의 차이로 줄어들고 있으며, 방송국은 유럽의 시범방송-SD급 다채널과 이동수신-에서 잠재적 수익의 엄청난 가능성을 보고 노조를 지지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거죠.

지금도 방송노조나 시민단체의 상당분들은 자신들이 매우 숭고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방송국 등의 이익집단의 밥그릇싸움에 희생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진실을 잘 모르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4-1. 방식변경 후 방송국은 고화질(HD)방송을 할 것인가?

현재의 공식적 입장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현재 유럽식을 지지하는 방송국 관계자 등의 문건에는 어김없이 SD급 방송을 하는 유럽의 장점과 이동수신의 국민에의 효용이 강조됩니다. 현재 기술로는 이동수신을 실시할 경우 HD급 방송송출이 불가능하므로, 적어도 당분간은 방송국들은 이동수신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SD급 다채널로 방송할 것입니다.

4-2. 이동수신은 국민의 권익에 도움이 되는가?

언뜻,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차량에 이동식 셋톱박스와 9인치 액정TV를 갖추고 가끔 끊기는 방송을 즐기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그 비용은 가정에서 29인치 화면으로 완벽하게 HD급 방송 즐기시는 것보다 좀 더 들 겁니다. 차량수신을 택하시면 HD화질 방송은 포기하고 집에서도 따로 돈 들여서 SD급 화면을 봐야 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전 집에서 4배 더 선명한 화면 볼 이가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일부러 DMB라 불리는 미국식에 덧붙여질 무료이동수신 방송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버스에 TV를 달아놓고 시청하는 것이 과연 즐거우시겠습니까? 집에서처럼 광고가 계속 나오면 돌릴 수도 없고, 보기 싫은 방송이라도 채널 돌릴 권리도 없습니다. 집에 오는 길이 피곤해 쉬고 싶은데 방송은 계속 나와서 수면을 방해하죠.
이게 권리인가요? 권리 침해가 더 크지 않을까요?

4-3. 방송측이 다채널과 이동수신에 집착하는 이유는?

방송국측의 논리는 유럽식 해도 여러 채널 프로그램 만드는 비용이 들어서 다채널 안 할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3대 공중파 방송은 모두 케이블 채널을 2-3개씩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것만 방영해도 4개 채널 채우기는 쉽죠. (불행하게도 그 여러 채널에서 우리는 쓸데없는 드라마 재방송, 흘러간 스포츠 경기, 흘러간 영화들을 실컷 보게 될 겁니다. 지금 공중파들이 케이블에서 방영하는 채널들이 다 이렇죠.)

이 채널들이 다 케이블 채널보다 몇 배 높은 단가의 공중파 광고수입을 받는다면? 그야말로 황금알이죠.(비록 지금 공중파보다는 광고단가가 떨어져도 케이블보다는 여전히 훨씬 높죠)

이동수신의 수익성은 어떨까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버스에서 방영되는 공중파채널의 광고는 돌릴 방법도, 안 볼 수단도 없습니다. 거기다 지루하게 버스 타고 가느니 그런 광고라도 보는 편이 낫다고들 생각하겠죠. 그야말로 광고효과 만점입니다.

5. 유럽식이 차후 매체 통합(convergence)에 맞는 미래지향적 방식이라는데?

그 반대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이동하면서 TV를 볼 수 있는 유럽식에 이동통신, 무선인터넷 등을 접목할 수 있을 듯 싶으나, 이동통신이나 무선인터넷이 '쌍방향'과 '휴대성'을 강조하는 매체인 반면, 방송은 '일방향'이며 큰 수신장치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런 서비스와 융합될 가능성이 거의 전무합니다.

진정한 매체통합은 이동매체들이 아닌 가정의 매체 통합으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즉 집에서 보시는 모든 화면들이 하나로 통합된다는 거죠. 컴퓨터, TV, 게임기, DVD 등등... 그런데 이 모든 매체들은 현재 고화질급 화면(디스플레이)를 기본사양으로 합니다. 아마도 표준화질급의 TV를 보급하고 있는 유럽은 이런 매체통합에서 뒤쳐질 가능성이 큽니다. 표준화질급 화면은 컴퓨터 화면을 표시하거나 그래픽과 작은 문자가 섞인 화면을 보여주기엔 화질이 너무 쳐집니다.

6. 맺으며 - 유럽식 전환 후 DTV의 미래

만일 지금의 투쟁으로 전환에 성공한다면, 방송국은 이동수신 등의 이유를 들어 고화질 방송을 하지 않고, 다채널 방송으로 현행 케이블의 방송국소유채널들을 그대로 재송출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화질도 기존과 별 차이 없고 재탕만 하는 다채널 방송에 실망한 시청자들은 디지털TV 구입을 기피할 겁니다. 소수의 자동차 AV 매니아들만이 차량수신을 위한 장비를 갖추겠지요. (대만의 경우가 이렇습니다)

가전업계는 고화질 TV를 팔 국내시장을 잃어버려 제품개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중소업체가 다수인 셋톱박스 제작업체들도 내수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겁니다. PDP나 DLP 등 한국이 선도하고 있는 HD급 디스플레이도 개발이 뒤쳐질 것입니다. 보급의 부진은 가격하락의 속도를 떨어트립니다. 많이 사야 가격이 떨어질텐데, 안 팔리면 가격은 여전히 비싸지요.

이 경우 케이블 등으로 재전송 받는 지역을 줄이고 무료로 방송을 보게 하겠다는 원래의 DTV의 이념은 퇴색될 것입니다. 화질은 그게 그거인데다, 여러 채널이래봤자 재탕일색인 방송을 보려고 비싼 TV와 셋탑 등의 장비를 사느니 기존의 케이블 재전송을 보고 마는 것이 합리적인 시청자의 선택입니다.

이 시나리오대로 가지 않으려면 방송국은 엄청난 모험을 해야 합니다. 여러 채널을 충실하게 채우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거나, 아니면 HD방송을 하기 위해 대규모 장비투자를 하고, 그렇게 강조하던 이동수신은 할 수 없다고 시청자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방송국에게 묻습니다.

위의 시나리오대로 가지 않고 시청자의 이익이 최대가 되도록 이끌 자신이 있습니까? 저는 미안하지만 현재 방송국의 의지를 그리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 불신의 이유는 이 글에서 밝힌 대로입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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