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고백성사를 아느냐?"

국회의원들의 양심선언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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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현(hhpaik)등록 2004.01.23 14:29
생산력의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던 17-19c 이래의 새로운 생산양식을 일러 '자본주의(capitalism)'라고 한다. 이로써 근대 이후의 인간들은 삶의 허기와 남루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 후 200여 년의 시간이 경과한 오늘날에는 자본주의란 용어가 현대인의 보편적인 문화양식으로도 인식되고도 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일상적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이 용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가 물질적인 풍요를 실현시킨 반면, 정신적인 빈곤 또한 야기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현대인은 자본주의를 통해 물신숭배, 인간의 소외, 그리고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 비인간화(dehumanization)를 자랑스럽게(?) 성취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그 삶을 존속할 수 있는 한 조건인 물질이란 것이 인간을 지배하고 급기야는 노예로 예속시키고 만 것이다.

얼씨구 씨구씨구 들어 봤소, 저∼절씨구 씨구씨구 들어 봤소,
돈 타령 부정 귀신 들어 봤소, 거짓 타령 부패 귀신 들어 봤소.…'
신판 돈타령' 서두 부분.

오늘 하루도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평화로 이끄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는 저녁기도를 드리고는 하루를 접기 전, 하루의 마감뉴스를 시청한다. 그런데 아니, 이게 뭔가! "오늘 뉴스의 처음부터 끝까지 돈과 관련된 우리 시대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란 아나운서의 멘트를 어제와 같이 오늘도 듣게 되어 마음의 평화를 간직하기 어렵게만 된다.

그 중, 근래에는 정치권의 정치자금과 관련된 부정 부패와 자본권의 비자금 형성과 뇌물 공여 등 금권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뉴스가 우리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모순에 바탕하여 부정 부패의 죄의식으로 번민하지도 않으면서 쉽게 이와 영합할 수 있는 세태이거늘! 최근 깨어 있는 시민들은 '이의 진상을 밝혀서 다시는 부정부패에 허덕거리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하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이러한 국민들의 비판과 여망을 의식하여서인지, 정치권과 자본권의 유력자들은 "이와 관련된 모든 사실을 고백성사 하듯 밝히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하지만 스스로 밝힌 것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검찰의 조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아 부정부패의 실체에 대한 인식과 그 행위에 대한 반성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국민이 기대하는 미래의 새로운 사회에 대한 꿈은 그 나래를 접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 얼마나 답답하고도 부끄러운 일이란 말인가!

고백성사는 성세성사로써 받은 하느님의 생명을 죄로 말미암아 잃었을 때 인간의 회심과 하느님의 용서로써 생명을 회복시켜 주는 성사로, 하느님과 나와의 화해예식이며 교회공동체와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다시 결합하기 위한 성사이다. 가톨릭 신앙의 세계에서 행해지는 고백성사는 반성, 통회, 결심, 고백, 용서, 보속의 절차를 통하여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는 의식이다.

"나의 범한 모든 죄를 전능하신 천주와 신부에게 고백하오니…"라 시작되는 고백문에서 알 수 있듯, 유한, 순간, 상대의 존재인 인간이 무한, 영원, 절대의 존재인 하느님께 자신의 죄를 밝히고 용서를 청하는 예식인 셈이다. 따라서 먼저 자신의 삶에 대한 묵상을 통하여 발견한 죄의 고백에 대한 양심의 철저함이 전제되어야만 할 것이다.

만약 죄의 숨김이나 뉘우침과 결심이 없이 행하는 고백성사는 모고백(冒告白-성사를 모독함)에 해당된다. 죄인을 살리기 위해 세워놓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죄에 대한 고백이 없이는 용서란 기대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한 것!

소위 정치자금이란 '검은 돈'과 관련된 훌륭하신(?) 분들께서 스스로 그 실상을 '고백성사' 하듯 밝히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백행위의 선언과는 달리 고백되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실정이라 부질없는 혓바닥의 무용만 바라본 셈이다.

또한 우리 사회는 이번 사건에 앞선 한국현대사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그분들께서 고백을 통하여 맑은 마음의 상태를 지니려 하리라고도 믿지 않는다. 하여 들려오는 신탁(神託), "너희가 고백성사를 아느냐?"

북극(北極)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습니다. 당대의 가장 첨예한 모순을 향하여 서슬 푸르게 깨어 있는 정신, 일몰(日沒)에서 일출(日出)을 읽을 수 있는 정신이 지성(知性)입니다. -쇠귀 신영복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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