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구휼(救恤)작전

보수 또는 진보의 이데올로기

검토 완료

백하현(hhpaik)등록 2004.01.26 13:52
오늘날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생산의 증대를 통해 그 국민의 의식주의 욕망을 충족시켜 그 공동선(共同善)을 실현하기 위해 다투어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을 취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물적 생산의 증대를 통하여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겠다는 원의와는 달리 자본주의의 발전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개인의 이기욕은 또 한편으로 물질에 대한 인간들의 대립과 갈등을 노정함으로써 사회를 혼란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사회는 그 구성원들간의 공존과 조화보다는 대립과 갈등의 진통을 겪게 되어 급기야는 계급이나 계층의 대립과 갈등의 격화로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에서 보완책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20C 등장한 것이 바로 수정 자본주의란 것으로 국민 전체의 사회 복지를 추구하고 있다.
지상의 모든 국가들이 추구하는 국가의 모습은 바로 복지국가(welfare state)이다. 국민 전체의 복지 증진과 확보 및 행복의 추구를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는 국가를 복지국가라 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절대 빈곤'의 상태였던 80년대까지는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정책이 실현된 반면, 90년대 이후 '상대 빈곤'을 체감하여 '분배'를 추구하는 정책들이 실현되었다. 예컨대 의료보험제, 국민연금제 등 사회보장제들을 도입하여 실현하는 등 복지국가의 이상 실현을 위한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생산량이 저하되고 실업이 증가하여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현상을 디플레이션(deflation)이라고 한다. 최근 우리의 국내 경기지수는 급격히 하락하여 국가에서는 경기부양책을 모색하고 있단다. 은행의 예금고가 감소하지만 그 역인 투자의 증가는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것은 생계를 지속하기 위한 소극적 소비로 소모됨을 뜻할 것이다. 즉, 이 시대 서민들의 아픔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여겨진다. 신용의 긴축에 의하여 물가가 하락하고 실업이 증가함으로써 불황(不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은행연합회의 보고에 의하면(2003.07.18) 신용불량자는 322만 명으로 전체 경제활동 인구 2291만 명의 13퍼센트를 상회하고 있으며 그 가족까지 고려한다면 족히 5∼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는 신용불량과 관련된 사람들의 동반자살이나 강력범죄의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용불량의 경우, 경기의 불황으로 인한 실직 또는 불성실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그 요인이든 간에 그들이 겪는 삶의 고통은 죽음보다 견디기 어려운 그 무엇인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는 이와 같은 상황의 원인이 국민 경제의 침체에 있다고 판단하고 소비의 증대를 통한 경기의 회복을 기하고자 IMF사태 당시 기업의 신용불량을 해소하기 위해 160조원을 지원하여 기업 금융의 위기를 처리한 바 있듯, 신용불량자의 구제 방안을 최근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용불량자의 생성요인을 무엇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그 해결의 구체적인 방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주림과 남루 그리고 신용불량의 요인을 그 개인의 나태와 무절제 등 도덕적 해이란 자발성의 결과로, 아니면 사회경제적으로 개인에게 강제된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에 준하여 그 대책이 수립될 것은 당연하다.
1994년 가을인가, 놀라운 글재주를 보인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외제차를 타고서 고급백화점을 들락거리는 호화사치족 5명을 납치, 살해, 소각, 암매장했던 엽기적 사건"을 벌인 '지존파'의 행각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는 사건이었다. 당시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깨달음을 가져다 주었는데, 즉 미시적 관점에서 그들의 부덕의 소치로 치부한다든지, 아니면 거시적 관점에서 우리 공동체가 함께 아픔을 나누어야 한다든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처럼 그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문제를 개별화하고 그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미시적 방법론이며, 문제를 집합적으로 보면서 전체적인 사회 차원에서 그 해결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거시적 방법론이다. 그런데 각기 방법론의 경우 그것은 분명 그것을 대하는 이의 특징적인 시각에 의한 것이며 또한 그 나름대로 철저히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이데올로기는 개인적 차원의 편견과 선입견이 특정 집단의 공통 이해 관계로 결집되고 확대되어 사회구조적인 원리로 자리잡게 된다. 그래서 해당 사회 구성원들이 맹목적으로 믿게 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의 경우, 미시적 관점은 보수적인 이해를, 거시적 관점은 진보적 이해를 대변한 것이라고 사회학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역사적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하는 세태에 비추어 볼 때 필연적으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의식임을 인식한다면 기존의 미시적 시각에 한정되지 않고 거시적 시각의 등장은 의식의 발전을 뜻한다 하겠다.
신용불량자들에 대한 시각과 인식 그리고 그 대책의 방법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닌 사회 세력들 간의 역동적인 단면이며 우리 사회가 살아 있다는 것을 뜻하며, 더 나아가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 된다. 아무튼 우리 사회가 가슴 아파하는 신용불량자 문제가 하루 빨리 해결되어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사회'가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지녀 본다. 우리는 분명 "함께 가는 길이다"란 것을 의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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