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 했으면"- 김두수의 자유혼

나의승의 음악 이야기 44

검토 완료

나의승(foreplay)등록 2004.02.04 11:37

<나비>라는 제목의 노래다. 꽃도 아닌데 꽃인 줄 알고 날아와 앉은 '피리', 피리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되기 어려운 객체가 되고 말았다. 노랫말이 그렇듯이 나비는 피리 부는 사람에게 측은한 마음을 일게 하는 산 속의 작고 초라한 생명이다. 거기에 나는 '오죽 했으면'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호남의 문화를 말해 보고 싶다. 요즘 나는 서양달력으로 2004년을 넘어 서면서 사람들에게서 "광주 전남의 문화수도 원년"이라는 말을 간혹 듣는다. 그런데 거기에도 '오죽했으면'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데, 혹시 그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호남은 농산물이 풍족하고 기후가 좋아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인지 한국의 전통 문화가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때문에 호남의 문화는 쉽게 말해서 '먹고 살기 위한'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생존 생산의 한계를 넘어, 생산을 위한 생산의 순수한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의미의 생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국 최고의 음식 문화, 판소리와 전통 국악의 문화, 한국화의 문화, 전통의 녹차 문화, 전통의 사군자 중에 대나무와 춘란의 가장 완벽한 원형을 보고 만질 수 있는 환경 등. 그것은 가장 확실한 호남정신의 일부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문화의 핵심 세력이며, 문화에 대한 최고의 소비자이자 온실이라 할 수 있는, 두텁고 튼튼한 다수의 중산층의 보통사람이며, 서민인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아직도 넘치게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나는 전라도 출신의 사람이며, 고향이 전라도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체감하기 어렵다.

분명 문화의 주역이 되어야 할 다수의 호남의 중산층들은 지금 참여할 용기도 없으며 힘없고 눈치보며 감히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외롭기까지 하다. 외롭다는 측면에서 심지어 '전라도'의 '도'라는 글자는 '섬도'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 전라도에 살고 친근한 사람들이 대개 이곳에 있다. 나의 아끼는 지기중 한 사람 양 모씨는 '나의 첫째 행복은 울 아버지 아들인 것이요, 나의 둘째 행복은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게 된 것이요, 나의 셋째 행복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좋은 사람이지만, 힘도 없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가난하다. 그의 모습은 어쩌면 이 시대 호남 예술인 또는 문화인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호남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나는 감히 해방 이후 최고의 악습인 '호남 차별화 정책'이 거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는 5.18이 이미 말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전라도의 저 힘없는 보통사람들을 안방에서부터 밖으로 나오게 하고, 참여하게 해야하는 시대에 와있다.

그러나 역사에는 시간의 순서라는 것이 있어서, 단숨에 그들을 참여하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각자의 부모가 참여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가 참여한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밖에 나가서 목소리 높여 할 말을 다 했다가는 큰일이 날 것으로 생각하는 소극적인 보통의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는 한,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더욱 시간이 필요하다. 2004년 1월 현재, 외제차가 가장 많이 존재하는 서울 강남에서 제일 먼 땅은 제주도가 아니다. 전라도일 뿐이다.

대선에서 심지어 95%의 지지율을 보여 놓고 참여가 없다고? 라고 말할 수도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 한번 감히, '오죽 했으면' 그랬겠는가 라는 말로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참여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단지 그동안 고프고 아팠던 세월을 보낸 만큼, 세상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실천해 보는 작은 참여를 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근대의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생각해 본 사람은 '오죽 했으면'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2004년 갑신년, 여전히 시간과 여유를 갖지 못한 전라도에 사람들은 또 한번 큰 부담 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다. 총선이 그것일 수 있고, 문화 수도가 그것이다. 120년 전의 갑신년, 개화세력의 서재필 김옥균 박영효 등의 큰일은 실패했다. 그리고 120년 뒤의 갑신년인 지금, 악습을 버리고 새롭게 나아가자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힘들어 왔던 전라도에 팔도의 어느 지역에도 없는 기대를 하고만 있다. 뒷날 사람들은 또 한번의 '갑신정변'이라고 역사에 기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배고프고 힘들지만, 견뎌온 전라도에, 그래도 구걸하거나 사정한번 하지 않았던 전라도에, 그때도 호남이 없었다면 한국의 개혁이 불가능했다라고 기록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궁금하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이 시대의 문화를 국가 혹은 주 정부가 지원하고 선도해 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한국은 그들처럼 해야 하는 시기에 와 있는 것 같다. '문화수도 이야기'는 결국 정부 주도형의 내용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호남의 시민사회는 현재 강력하거나 두텁지 못하다. '문화수도'의 모습을 갖춰갈 만큼의 저력이 부족한 셈이다.

그렇다고 한번 결정된 일을 그만 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길게, 그리고 멀리 보고 실천할 수 있는 문화 사업이 없는가? 의 고민을 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우리 시대에 꽃피우기 어려운 일이 있다면, 우리가 거름되고 씨 뿌리는 실천을 해야 옳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들 다음의 어느 시대에라도 아름다운 꽃이 피고 향기가 전라도 땅과 한국 땅 어디에나 있는 때가 오기를 희망한다.

꽃인 줄 잘못 알고 날아가, 피리에 앉은 가여운 흰나비의 노래를 생각하던 끝에, 음악이나 좋아하는 주제에 감히 시대를 말하게 되어서 깊이 부끄럽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시대에는 흰나비에게 말하듯이 '오죽 했으면' 이라는 말을 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고 싶었고 유치한 나의 생각이 한 조각이나마 사람들의 생각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