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2월호, "실미도는 한국 깎아 내려 돈 번 영화"

"강우석 감독의 상상력이 한국을 마피아보다 못한 집단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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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bangzza)등록 2004.01.29 14:46

월간조선 2월호 ⓒ 지면촬영

<월간조선>이 2월호 '실미도 반란의 진실'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실미도 전우회와 공군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실미도 부대 창설부터 난동에 이르는 과정을 소개했다. 이어 영화는 '사실 실미도'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영화 '실미도'를 '대한민국을 깎아 내려 돈을 번 영화'로 규정했다.

<월간조선>은 강우석 감독이 사고 관련자나 유가족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영화 제작 소식을 접한 실미도 전우회가 감독과 제작사 측에 시나리오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으나 아무 통보를 받지 못했고, 김순웅 교육대장(안성기 분)의 아들 역시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보여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답장이 없었다는 것이다.

<월간조선>은 강 감독의 흥행 욕심에서 원인을 찾는 듯하다. <월간조선>은 김순웅 대장 아들의 입을 빌어 "감독은 영화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이 아니라 흥행을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유가족을 두 번 죽인 셈이다. 허구를 관객들이 진실이라 믿어버리는 데 문제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영화 감독의 상상력이 대한민국을 마피아보다도 못한 의리 없는 집단으로 만든 셈이다. 대한민국은 요사이 이리저리 뜯어 먹히고 능욕되는 가운데 변호사도 구할 수 없는 지경이다. 대한민국을 깎아내리면 돈도 벌고 인기도 얻는 세태 속에서 '영화 실미도'를 '사실 실미도'라고 믿는 이들이 많아진다."

1월 1일, <월간조선> 조남준 부국장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과는 사뭇 다른 논지다. 작년 12월 26일 실미도를 관람했다는 조 부국장은 "특히 부대원들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갖고 있던 부대장의 권총 자살하는 장면과, 승객들을 다 내보내고 부대원 전원이 버스 속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이상하게 포장해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지 않는, 분명한 반공영화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청와대 행을 반대, 처음부터 난동에 참여하지 않은 대원들이 몇 명 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당시 이 사건 수사에 관여했던 공군 관계자들은 책임 있는 답변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많은 의혹과 베일에 쌓여 아직 그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실미도 사건은 결국 용기 있는 관계자의 답변만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영화 실미도'를 통해 진실 규명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소감이다. '국가를 까 내리며 돈벌이에 성공한 영화가 실미도의 진실까지 호도하고 있다'는 <월간조선>의 입장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강우석 감독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서 비롯됐을 공산이 크다.

강우석 감독 ⓒ 실미도

강 감독은 1월 9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작품 속에서는 국가의 역할과 명령을 대행하는 인물들이 여럿 나온다. 진정 국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사실 한국은 그 동안 국가가 아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왕이었고 우리는 왕정 시대를 살아왔다. 절대 권력자에게 충성을 해 온 것"이라고 답했다.

'심지어' 강 감독은 영화 실미도를 통해 "감독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 전달을 강요하면 안되겠지만 국가의 부도덕함과 비정함을 지적하고 싶었다. 실미도 관련 자료를 모으면서 '이런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화가 났다. 그릇된 목적의식을 통해 권력을 유지한 것이 뻔히 보였다"는 말도 했다.

'박정희는 왕이었다. 국가가 아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박정희 통치 시절의 한국은 부도덕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월간조선> 입장에서는 '괘씸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1월 15일 조갑제 편집장은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를 보고 우리 영화 실미도와 황산벌을 생각했다. 실미도는, 국가를, 쓸모 없게 된 북파공작원을 사살 해 버려라는 명령을 내리는 마피아보다도 못한 집단으로 그리고 있다. 황산벌은 우리 민족사의 가장 장엄한 장면인 황산벌의 결전을, 저질 웃음거리로 만들어놓았다. 민족과 국가를 깎아 내리고 돈을 벌고 있는 격이다."

조갑제 편집장의 주장은 우종창 기자가 작성한 <월간조선> 2월호 기사의 논지와 거의 흡사하다. 따라서 <월간조선>이 영화 실미도에서 가장 문제 삼은 부분 역시 중앙정보부에서 훈련생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냐는 점이다. 정말 국가가 그랬냐는 것이다.

<월간조선>은 '아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근거로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김두만씨와 실미도 전우회 회장 김방일씨, 실미도 부대 태권도 교관이었던 양동수씨의 증언을 내세우고 있다. 그들은 각각 "죽여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도 없었다"(김두만), "내가 알기로는 없었다. 소대장들은 몰랐고, 그런 지시를 들은 적도 없었다"(김방일), "전혀 없었다"(양동수)고 답하고 있다.

이어 <월간조선>은 강우석 감독에게도 '국가가 실미도 훈련생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 사실에 입각한 것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훈련생들을 죽이라는 명령은 시나리오 작가의 상상력에 따른 것"이라고 강 감독이 밝히자, 곧바로 <월간조선>은 "영화 감독의 상상력이 대한민국을 마피아보다도 못한 의리 없는 집단으로 만든 셈"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러나 <월간조선>의 이같은 결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선 스스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월간조선>은 강 감독에게 영화 속의 '사살 명령'과 '적기가'에 대해서만 질문했다. 영화 감독의 상상력을 문제 삼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질문 숫자다. 또한 각 언론에 실린 강 감독 인터뷰 기사를 조금만 살펴보더라도, 감독의 의도를 쉽게 단정 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금방 알 수 있다.

강 감독은 지난 12월 기자 시사회 인터뷰에서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1월 15일자 <뉴스메이커>는 "강 감독이 참고한 자료는 소설 실미도의 원작자인 백동호씨 증언,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993년 신동아에 실미도 지휘관이 기고한 내용, 당시 소대장 김방일씨의 증언 등"이라고 보도했다.

정부가 사건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적은 양의 자료라고만은 볼 수 없다. 언론의 실미도 보도 또한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참고로 공소장, 판결문 등 1000여 쪽에 이르는 실미도 사건 수사기록은 공군이 대외비로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월간조선>은 대한민국을 마피아보다도 못한 의리 없는 집단으로 만든 상상력의 소유자로 강우석 감독을 지목하고 있다. 졸지에 '영화 실미도' 관객들은 대한민국을 깎아 내려 돈도 벌고 인기도 얻기 위한 수작에 놀아 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물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가'를 드러내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소임이다. <월간조선>의 보도 또한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실미도의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 실미도'를 '사실 실미도'로 믿는 이들이 많아지는 원인을 감독과 세태에 돌리는 논지는 무책임하다.

이와 같은 현상이 실재한다면, 1차적인 책임은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 실미도 진실 규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언론에게 있다. '영화 실미도'가 나오기 전까지, <월간조선>은 과연 '사실 실미도'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왜 <월간조선>은 '사실 실미도'에 대한 책임을 '영화 실미도'에 돌리는가. 강우석 감독의 '괘씸한 인터뷰'때문인가.

조남준 부국장의 말을 빌린다면, <월간조선>은 수많은 의혹과 베일에 쌓여 있는 실미도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기 위해 용기 있는 관계자를 찾아 답변을 끌어내야 한다. 정부에 사건 기록 공개를 요구해야 한다. '영화 실미도' 관객 700만명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월간조선>, 강우석 감독에게도 색깔론?

▲ 영화에서 강인찬(설경구 분)은 북으로 넘어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뒷골목을 전전하다 사형수로 전락한다
ⓒ실미도
<월간조선>은 강우석 감독의 '색깔'을 의심하는 듯한 인상도 풍긴다. <월간조선>이 문제 삼은 부분은 영화 실미도에 나오는 '적기가(赤旗歌)'. <월간조선>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적기가를 설명한다.

영화 실미도에는 적기가가 두 번에 걸쳐 나온다. 적기가는 김일성이 무장투쟁 중 작사해서 보급한 군가라고 한다. 어떤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혁명의 붉은 깃발을 사수한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는 대전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비전향 빨치산들을 통해 서서히 대학 운동권에 퍼졌고, 극좌적인 주장을 편 제헌의회 그룹(CA그룹)이 모임에서 즐겨 부르면서 널리 퍼졌다고 한다.

그리고 <월간조선>은 "적기가를 가르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며 저 노래가 왜 들어갔는지 의아했다. 김일성 장군 노래를 들려줄 수 없으니까 대신할 노래로 썼나 보다 생각했지만, 가사도 그렇고 그 노래가 들어간 점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실미도 전우회 김방일 회장의 의견을 전한다. 또한 전우회 이준영 사무국장의 "영화를 통해 좌익 가요를 퍼뜨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는 영화 감상 소감도 함께 싣고 있다.

'훈련생들이 정말 적기가를 불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강 감독은 <월간조선>을 통해 "김일성 장군 노래를 사용하려고 했으나, 영화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적기가를 차용해서 선택했다"고 해명했다.

한편으로 80년대 NL그룹(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과 함께 학생 운동의 양대 산맥이었던 CA그룹을 '극좌'로 단순화시킨다면, 박종운씨나 김문수 의원은 <월간조선>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끝까지 행방을 대지 않았던 박종운씨(한나라당 부천시 오정구 지구당위원장)는 당시 제헌의회 그룹 사건으로 수배 중이었고, 김문수 의원(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은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민중당 노동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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