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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당의 총선 공천 작업이 한창이다. 시민단체는 연이어 낙천 혹은 당선 운동 대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정치권으로 가기 위한 후보들이 공직들을 사퇴한다. 이제 바야흐로 총선의 계절이다. 지난 대선을 유례없이 드라마틱하게 치루어 낸 우리 국민 앞에 앞으로 또 얼마나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질 지 기대를 가지고 지금의 국면을 읽는다.
인터넷과 진보 진영의 십자포화를 외면하며 한나라당의 공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문열은 시민단체의 낙천 후보 명단을 역참조 하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그럴만도 하다. 김성호 의원은 당이 시범적으로 운용한 경선에서 탈락하고 또 이를 받아들여 많은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현역의원은 현재의 판세를 따라 유불리를 따지겠지만 정치 신인의 등장이 제도적으로 용이하지 않은 현행법 하에서 공천은 가장 유리한 의회 진출의 방법이다. 그래서 당에 후원금을 바치고 전국구 의원이 되거나 혹은 지역구 공천을 받았다는 우리의 역사는 군사독재 시절이나 문민정권 시절까지 아니 2000년 총선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 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잘못된 관행이었다. 어느 당이 당선 안정 지역이나 전국구 의원으로 당비를 보충하고 있을 때 그를 비판하고 극복해야 했을 반대 당도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선거가 임박했을 때마다 각 당은 공천 혁명을 얘기한다. 민주적으로 또 투명하게 공천하여 총선을 정치 혁명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공표한다. 또 속는 줄 알면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던 국민들은 막상 선거일이 되면 도토리 키재기인 후보자 포스터 앞에서 투표장으로 가는 발길을 돌려 각자의 길로 떠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선진국일수록 현실 투표에 대한 참여율이 높지 않다는 통계를 믿으며 위안을 삼아도 될 만큼 우린 안정된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일까?
더 이상 밀실공천은 없다는 발표는 모든 정당이 다 부르짖는 자랑이다. 그러면서도 공천 심사 위원회를 꾸리고 후보자에 대한 점수를 매기고 당선 가능성 혹은 낙선 가능성을 참조한 여론 조사의 잣대를 들이밀면서 결정된 단수 후보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어떠한 수를 쓰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야만 생존이 보장될 한나라당이나 지역적 헤게모니, 혹은 정서적 헤게모니를 관철시키기 위한 민주당의 고투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럴 지도 모르고 그 이상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편이 적합하니깐. 차라리 이문열의 최근 행적을 보고 있노라면 한 편으로 적잖이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되는 정당이 하나 있다. 바로 열린 우리당이다. 현 정부 정책에 대한 의회적 지원을 이끌어내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현 여당이 의도하는 원내 다수당 혹은 전국 정당화는 반드시 관철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재 진행되는 단수공천을 바라보는 시선은 계면쩍기 이를 데 없다. 정치권은 아직 지난 대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인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수 많은 네티즌들이 과연 그의 승리 가능성에 기대어 있지 않았음을 기억해야만 하는 국면은 아닐런지 물어보자. 지난 대선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가장 큰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떨며 나는 밤을 새며 흥분했었다. 우리의 정치사를 통틀어 자기 살을 내어주며 지켜낸 명분을 마지막까지 끌어안고 있었던 가장 표면적인 후보였기에 수 많은 지지자들이 스스로 자원하여 거리에서 생전 추지도 않던 춤까지 추어대며 차가운 12월의 새벽에서 밤까지를 뛰어다녔던 그 원동력은 분명히 노무현이 내재하고 있었던 당선에 대한 가능성이 아니라 그가 되어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 했다고 믿었던 내가 바보인가 싶다. 그의 승리는 명분의 승리였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아직 수 많은 국민들은 믿는다.
백 번 양보하며 이해하자. 이번에야 말로 수구세력의 음모를 몰아내야 한다고 총집결 하는 것이리라. 가장 안정적으로 당선의 가능성을 지닌 후보자가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시민단체에서 지탄 받지 않을 새로운 개혁적 면면의 후보자들이 새로운 지역에서 승리하고 상징성을 지닌 비례대표들이 포진하여 정당 지지도를 높여 궁극적으로 원내 일당이 된다거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다는 그림은 얼마나 환상적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지 말자. 국민들이 원하는 국회의원은 그들이 아니다. 공천권을 상실한 국민들에게 당의 결정을 따르라며 당의 간판을 걸어주면서 국민들은 그래도 저쪽 보다는 이쪽이 덜 나쁘니깐 찍어야 한다는 협박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믿는다. 기존 정치인 대부분이 썩어빠진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 구태 속에 파묻힌 정치인에게 정치 혁명을 기대한다는 것은 사기꾼에게 통장을 맡기는 것하고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새로운 인물에 투표하겠다는 거다.
그리고 누가 새로운 인물이어도 그 과정은 투명해야 한다. 최근의 정당 지지율 1위를 믿고 안이하게 대처한다면 분명히 열린 우리당의 총선은 패배하게 되어 있다. 거울처럼 투명하지 않더라도 전국의 가능한 모든 지역에서 경선을 통하여 후보자를 내게 된다면 국민들이 희망을 걸 커다란 이유 하나를 선점하는 것이 아닐까? 상징적으로 몇 개의 지역에서 몇 명의 경선 후보자를 추리고 나머지는 당선 가능성이나 지역 정서에 빌붙은 공천을 하게 된다면 그 사상누각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다.
어차피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는 지역 경선에서도 승리 하여야 한다. 지역 경선에서도 자신감이 없는 후보를 내세워 일반 국민들에게 어떻게 지지를 호소할 지 생각해 보았는가? 낙하산은 안 된다는 여론과 고작 300명으로 치루어진 경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견이 이미 온라인에서는 충돌하고 있다.
경선이라는 절차를 치루어 내지 않은 단수공천은 낙하산일 수 밖에 없다. 그가 지역에서 어느 정도의 지명도를 지니고 있건 아님 전국적인 지명도를 지니고 있건 낙하산은 낙하산이다. 이 낙하산에 개혁의 이름표를 붙여주는 공정이 바로 경선이다. 이 공정이 생략되어 생산된 제품의 리콜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가? 시간적으로 불충분하다고 한다. 그럴까?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여기 여기는 괜찮을거야 단정 짓고 준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바람에 편승하고 물갈이론에 편승하고 현실적 이해타산에 편승하고, 편승할 것은 다 편승하고 무슨 명분을 부르짖겠다는 것인지 고민하자.
열린 우리당은 기존의 단수공천자 명단 발표를 취소해야 옳은 것은 아닐까. 실리 때문에 명분 하나를 포기한다면 잃는 것은 열 아니 백이 될 수도 있다. 제 2, 제 3의 김성호가 나온다면 그 때마다 우리당의 지지율은 깨끗한 정치에로의 갈망을 모두 흡수하며 대세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적전분열이라고 몰아세우지 말자. 그래도 가지고 가자. 명분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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