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이는 원래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검토 완료

정일관(jasimmita)등록 2004.02.21 16:20
난 별로 쓸모도 없고, 어떤 생활을 하든 아무도 날 신경 쓸 사람 따윈 없을 거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땐 날 안타깝게 바라보시며 걱정으로 마음 졸이시는 부모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별 볼일 없이 시간가는 대로 흘러 버리면 그만이었다. 아빠, 엄마가 방황하는 날 찾아 밤거리를 헤매고 다녀도, 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부담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1년을 쉬게 되었다. 무의미한 날들이 계속 되었고, 어느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내 모습이 너무 슬퍼 보였다. 그런 나를 엄마, 아빠는 미용 학원에도 보내 보았지만 난 번번이 실망만 안겨드렸다. 어떻게 아셨는지, 부모님은 합천 적중이라는 시골에 자리잡은 원경고등학교에 나를 보내셨다. 나에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긴장과 함께 왠지 부모님이 날 포기한 것 같아 슬픈 마음도 일어났다.

그곳은 내가 있었던 환경과는 너무 달랐다. 학교 뒤엔 큰산이 버티고 있고, 주위에는 온통 논밭이고 벌판이라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왔다. 그리고 그 벌판을 굽어보며 우뚝 서 있는 5층 기숙사. 나는 꼼짝없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옛날엔 그렇게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는데 이상하게도 학교에 오니 집에 가고 싶어 졌다. 사람 마음이란 게 이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었을까? 난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고 더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곳에서 잘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곳에서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확신도 없었으니...

그런데 "원경고등학교" 정말 이상하고 신기한 곳이었다. 이곳이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어줄 곳일 줄 누가 알았을까? 난 그곳에서 잃고 싶지 않은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사랑을 배웠다. 첨엔 누구의 친절도 사랑도 받고 싶지 않아 발버둥치듯 그들을 외면했고, 내게 다가오는 친구, 선생님들도 다 이유 없이 귀찮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들이 내게 보여주는 사랑에 내 마음이 열렸는지 모른다.

그런 친구들, 선생님들이 날이 지날수록 좋아졌다. 기숙사 생활을 해가며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누군가를 알아가며 함께 지낸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우리들은 더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처럼 나를 잘 챙겨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선생님들은 내가 전에 알던 선생님들이 아니었다. 그전의 학교에서는 그런 모습은 찾기 힘들었는데 이곳에서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사랑을 베푸시고 따뜻하게 안아주시니 당황하기도 하고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내 속에 그런 따뜻함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지, 난 너무 행복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도 쌓여갔다. 학부모 학교라도 할 때면 혹시 올까? 하는 기대감에 차 있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번번이 부모님은 일과 4남매의 뒷바라지에 바쁘셨다. 안 와도 된다고 말은 하지만 난 혼자 외로웠다.

한번은 같은 방 쓰는 친구들 부모님은 다 오셨는데 우리 부모님만 오지 않아 굉장히 속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 날은 내가 부모님들 앞에서 발표하는 날이었는데 엄마 아빠 곁에 있는 애들이 너무 부러워 발표하는 동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너무 속상했다. 울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렇게 힘들게 발표를 하고 참았던 눈물이 흐를 때, 내가 엄마 아빠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은혜는 나를 들뜨게 했고, 두근거리게 했고, 활달하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원래 훌륭한 사람임을 배웠다. 내 못난 모습은 원래 못난 모습이 아니었다. 원래 훌륭한 사람이지만 못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못난 모습조차 긍정하게 되었다. 기뻤다.

그렇게 하나둘씩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가고 노력하고 싶어졌다. 대학도 가고 잘나온 성적표 받아보게 해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했다. 비록 이것 가지고는 여태 겪으셨던 고단함을 다 씻어 드릴 순 없었지만 차츰 나아져 가는 나를 보고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곧 원경고등학교에 오기 전엔 생각도 못했던 대학에 진학하여 세상과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것이다. 지금 나는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던가 하고 감동도 하고, 하고자 하고 노력만 하면 뭐든지 이룰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겨나 내가 진짜 사람이 되어 가는 걸 느낀다. 정말이지 이 고마운 학교에서 내가 지내온 시간들은 앞으로 내게 소중한 보물이 될 것 같다. 내게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를 일깨워 주었으니...

선생님들, 친구들, 후배님들. 원경에서 만난 추억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젠 졸업을 하게 되겠지만 내 삶에 있어 너무 중요한 걸 알게 해준 나의 학교, 원경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나 더 커서도 항상 소중함과 은혜 속에 마음 잘 써서 훌륭한 사람 될 거예요! 자랑스러운 원경인 되도록 열심히 살게요! 지현이는 원래 훌륭한 사람입니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