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이 뭐야! 그건 노동자가 권력 먹갔다는 거야!'

백기완 선생의 기사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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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진(ohngbear)등록 2004.02.27 15:04
시대가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빨갱이 중에서도 골수 빨갱이 백기완 선생이 요즘은 tv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온다. 가끔은 '꼴통 우익신문'이라는 조 중 동에서도 백 선생 이름이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그것도 '구시대적 색깔론'의 대상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대륙적 풍모를 지닌 사상가로... 혹은 민족운동가로... 또 가끔은 요즘 찾아 보기 힘든 '협객'풍의 웅변가로 등장하니... 세상 바뀌었다는 생각이 어찌 안들겠나?

재작년엔, 월드컵 감독 히딩크가 백 선생을 불러, 대표선수들 정신교육을 시켰다고도 하고, 또 히딩크하고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낸다고 하니.... 시대만 변한게 아니라, 백선생께선 출세(!)도 하신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백 선생이 '보수꼴통' 신문에 출현을 하셨다. 물론, 백선생을 직접다룬건 아니지만, 백 선생이 옛적에 민중후보 하신다고 힘들게 다니실 때, 경호대장하셨던 노 협객 이야기를 실으면서, 그 호탕한 웃음 소리도 함께 실렸다.

내가 백 선생을 자주... 혹은 곁에서 뵌 적은 없지만, 그 분은 참 가식이 없는 분 같았다. 좋으면 웃고, 싫으면 찡그리고, 남을 괴롭히는 놈이나 째째한 놈에게는 불 같이 화를 내시는 분이신 것 같았다.
그러고도 뒤끝이 없고 그것으로 끝이신... 그런 분 같았다.

나는... 아니 우리는 그러지 못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그 분의 직설적인 웃음과 활활타는 성품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백 선생 이야기를 꺼내고 보니... 생각나는 것들이 참 많다.
87년... 난 그때 고등학생이었다. 지금도 그때 타던 불길을 다 끄고 살진 못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온통 불길 속에 살았다.
뭘 알았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용솟음치던 87년 6월 항쟁의 에너지는 충격 그 자체였고, 군사독재의 교과서에는 가르쳐 주지 않았던 혁명과 민주주의를 배웠던 것 같다.

여하튼, 그때 처음 백 기완이라는 양반을 알게 됐다. 그것도 tv 연설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메끄러운 말로 국민을 현혹하려는 사람들에 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당신이 무얼 할 것인지 당당하게...(아니.. 누가 뭐라든) 큰 소리로 외치던 그 양반이 정말 멋있게 보였다.

그러나, 내가 백 기완이라는 양반에게 폭 빠지게 된 건.... 91년이었다
대학 1학년... 강경대가 죽고 박승희가 죽고.... 천세용도 죽었던.... 그때..
나는 백 선생을 연세대에서 뵈었다.
노동절 행사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저런 연설이 이어지고, 백선생 차례가 왔을 때, 그 분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노동해방이 뭐야?! 여러분 노동해방이 뭐냐고!!'

그러더니 갑자리 뒤를 돌아 보더니, 권영길 당시 언노련 의장과 단병호 전노협 의장에게 다그쳤다 '단병호 위원장! 노동해방이 뭐냐고?'

아마 단병호 위원장과 권영길 의장이 뭐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백 선생을 다시 청중을 보고 외쳐댔다.

'노동해방은 노동자들이 권력을 먹갔다는 거야!'
'째째하게 돈 몇 푼가지고 쌈질하자는 것이 아니고, 권력을 차지하자는 거야!'
'그리고 노동운동이란 건...노동자 두놈 세놈만 모여도, 권력 먹자고 궁리하는 게 바로 노동운동이야!'

그렇게 통쾌한 연설을 어디서 들어봤을까!
청중들은 한 동안 말을 잊었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나는 눈물까지 찔금 흘렸던 것 같다.
벌써 15년이나 흘렀지만, 그 때 그 기억은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다.


선거철이다.
노동자들이 권력을 '먹는 게' 노동해방이라고 고함쳤던, 그 양반은 이제 노쇠해 보이기도 한다. 이곳 저곳에 편찮으셔서 병원신세도 지신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지금도 다시 가서 조언을 구한다면 '권력을 먹으라'고 호통을 치실 것 같은 그 분의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도는 건 어찌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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